광고 속에 '문화 국경' 있다
  • 김세원 (고려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6.11 14: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태평양 광고 컨퍼런스' 지상 중계

 
미국의 세계적인 마케팅 광고 관련 석학들이 지난 5월31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에 총집결했다. 미국광고학회(AAA: The American Academy of Advertising)와 한국광고학회(KAS)가 공동 주최해 고려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태평양 광고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광고·문화·사회’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최근 광고 트렌드는 물론 광고의 문화적 이슈, 아시아와 미국의 광고 연구 패러다임 비교, 글로벌 환경에서의 대안 매체, 쌍방향 광고와 홍보, 국가 브랜딩 등 논문 88편이 발표되었다. 
미국광고학회는 세계 광고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표적 광고·마케팅 관련 기관이다. 1957년 창설되어 2001년부터 격년으로 아시아태평양 광고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번 행사는 4회째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미국 타우슨 대학 김광미 교수와 캐서린 프리트 싱가포르 난양 공대 교수는 ‘글로벌 광고 읽기-문화 간 연구’라는 논문에서 에드워드 홀의 분류에 따라 고배경 문화(High-context culture) 국가인 한국과 저배경 문화(Low-context) 국가인 미국, 아시아 국가이지만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영국 식민지 경험이 있는 싱가포르를 비교했다. 김교수는 대학생들에게 물속의 거북이 사진과 의류, 핸드백 광고에 사용된 사진 등 세 종류의 사진을 보여주고 묘사하도록 했다. 문장의 복합성을 기준으로 단순 묘사를 1, 묘사와 개념을 결합한 경우를 2, 묘사·개념에 이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경우를 3으로 하여 분석한 결과 미국 학생은 1의 방식이 대부분이었고 한국 학생은 세밀하고 복합적인 3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아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싱가포르 학생은 그 중간이었다.
물속의 거북이 사진에 대해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나는 거북이 한 마리를 본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반면 한국 학생들은 “물속 산호 위에 외로운 거북이 한 마리가 짝을 찾고 있다”라는 식으로 감정 이입을 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남녀와 여자 어린이가 웃고 있는 캘빈클라인 광고의 경우, 한국 학생들은 행복한 가족 사진이라고 기술했으며 조사에 응한 26명 중 4명은 이 사진은 부부의 다른 자녀이자 여자 어린이의 오빠가 찍었을 것이라고 덧붙여 드러나지 않은 인물까지 묘사했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여자와 남자, 여자 어린이가 한 명 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묘사하거나 광고 사진이라고 답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싱가포르 학생들은 그 중간이었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한국인은 전통적 위계 질서 속에서 나이와 신분에 따라 권위와 힘의 우열이 분명해 구성원들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에 동조하는 것이 중요한 고배경 문화의 특징을 보인다. 이같은 경향이 이미지를 읽을 때도 대상 자체보다는 배경과 대상의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기 주관을 밝히고 표현 방식보다는 실제 내용의 사실 여부에 역점을 두는 저배경 문화의 특징을 보여 이미지 읽기도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대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분석했다.
한편 싱가포르 학생들이 중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원래 싱가포르의 문화는 한국처럼 강한 유교적 전통을 갖고 있으나 공용어가 영어이고 글로벌 환경에 많이 노출되면서 서구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교수는 따라서 미국·유럽 같은 저배경 문화권의 소비자들에게는 제품 자체의 기능과 성능을 강조하는 광고가 어필하는 반면, 아시아의 고배경 문화권 소비자들에게는 사랑, 인간 관계, 드라마 같은 로맨틱한 주제를 담은 모호한 광고 이미지가 좀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본의 스타 마케팅 차이도 분석


 
미국 몬타나 대학 리 펭루 교수팀은 최근 나이키·도요타·맥도날드 등 다국적 기업들의 광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방영·게재 금지 조처 사례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2004년 12월 중국 정부는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등장하는 나이키 텔레비전 광고에 대해 방영 중단 조처를 내렸다. 비디오 게임 형식으로 만들어진 나이키 광고 ‘공포의 방’은 제임스가 중국의 여신과 쿵후 고수 및 두 마리의 용들과 차례로 싸워 무찌른다는 내용인데 당시 중국 정부는 “이 광고가 모든 중국 내 광고는 국가 존엄과 이익을 지키고 본토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 및 국가의 관습과 문화를 모욕하는 내용을 담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해 중국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2003년 말에는 일본 도요차자동차가 SUV(스포츠용 다목적 자동차)인 랜드크루저 ‘프라도’ 광고를 자동차 전문 잡지에 실었다가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 중국의 30개 일간지에 사과 광고를 내보냈다. 문제가 된 도요타자동차의 광고는 도시를 배경으로 다리 난간에 서 있는 돌사자상이 프라도 자동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사진으로 ‘당신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실렸다.
2004년 9월에는 다국적 광고회사인 레오 버넷이 전통적인 중국의 정자 기둥에 조각된 황금빛 용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장면을 담은 니폰 페인트의 크리에이티브 광고를 광고 전문 잡지에 실었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항의를 받고 사과하기도 했다.
리교수는 “돌사자, 용, 쿵후 같은 중국의 민족 문화적 상징들에 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그릇된 시각과 광고주의 역사적 둔감성이 광고 금지 조처를 가져왔다. 나라마다 사회 통념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광고는 자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대학 리 웨이나 교수와 최세정 교수 등은 ‘스타 마케팅은 아시아적 광고 방식인가’라는 논문을 통해 2004년과 2005년 봄 1주일간 일본의 아사히TV, 후지TV, NTV, TBS와 한국의 MBC, SBS, KBS 2TV 방송의 상업 광고를 분석한 결과, 일본은 전체 2천7백30편의 광고 중 절반에 가까운 48%(1천3백10편), 한국은 9백11편 중 50%(4백58편)가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였다고 분석했다. 또 양국 모두 한 명의 유명인이 광고에 출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일본:86.8%, 한국:78.9%)이었으며 한 광고에 스타 두 명이 출연하는 경우는 일본 10%, 한국은 15%, 세 명 이상이 함께 출연하는 경우는 4% 미만이었다. 또 광고에 출연하는 스타들의 직업군은 양국 모두 배우와 탤런트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이 가수, 코미디언, 운동선수 순이었다. 양국 모두 스타 집중 현상이 두드러져 평균적으로 일본에서는 유명인 한 명이 2~6편의 각기 다른 제품 광고에, 한국에서는 유명인 한 명이 2~5편의 다른 제품 광고에 출연했다.
한·일 양국 모두 여성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가 더 많았으며 외국인 스타의 출연 비율이 매우 낮은 점(일본 1.6%, 한국 4%)도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스타 광고의 60%가 모델로 기용된 스타들이 광고 속에서도 스타로 등장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스타 광고의 51%가 스타를 평범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점이었다. 리교수는 “한류의 성공과 함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문화는 서구에 의해 대표되는 글로벌 문화와는 다른 범아시아 문화로 발전해가고 있다. 이같은 시각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진 스타 마케팅 광고에 대해 좀더 심화된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