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꽃·화장품 시장 ‘대변동’
  • 신정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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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어떤 영향 미치나/유럽산 자동차 가격에는 큰 변화 없을 듯

 

 
한·EU FTA 2차 협상이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생활과 산업계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2차 협상에서는 협정문 구조와 양허 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협상 원칙을 정하는 단계로 총론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가 흘러나오고 있다.
먼저 자동차 분야이다. 한·EU FTA가 체결되었다고 해서 독일산 벤츠 자동차 값에 국산 차 값을 조금 더 얹어주고 사서 몰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외제차의 이윤은 2004년 기준으로 평균 31.2%다. 이 가운데 딜러 마진·인건비·광고 판촉비·인증비·국내 운반비·보관비 등을 빼면 실제 떨어지는 마진은 10% 안팎이다. 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지금보다 10%쯤 싸게 차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반해 우리 자동차의 서유럽 시장점유율은 3%를 넘지 못한다. 그마저도 소형차에서만 경쟁력이 있을 뿐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FTA 체결로 늘어날 매출 신장세보다 3~4년 뒤 유럽 경기의 침체가 시작될 것을 더 걱정하고 있다. EU는 유럽 자동차제조업체협회를 통해 자동차 분야가 한국에 비교 우위가 있다는 등 EU가 한국 차에 대해 일방적으로 시장을 열면 유럽 차 업계의 경쟁력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외곽 두드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 아웃 소싱을 통한 부품 공급도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부품의 경우 특별소비세가 붙지 않고 10%의 관세가 없어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분석에서다. 이와 함께 배기가스 자가진단장치(OBD) 설치 의무화도 유예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비관세 장벽 철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의 벤츠 운전자가 엔진을 수리할 때 벤츠의 이란 공장인 코도르 디젤 사가 하청받아서 만든 엔진을 독일 현지 값보다 20%쯤 높여줄 수도 있다. 중국산 부품을 쓰는데 자동차 제조사들이 만든 순정 제품 값을 내야 하는 꼴이다.
포도주도 우리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품목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찾는 샤토 탈보는 보르도 와인 등급 기준 4등급 와인으로 프랑스 현지에서는 5만원쯤 한다. 그러나 국내 할인 마트에서는 그 두 배인 10만원대에 팔린다. 대중 음식점에서는 이보다 더 비싸게 팔려 20만~25만원선이다. FTA가 체결되면 이런 바가지 가격 때문에 샤토 탈보의 묵직한 맛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와인 소비량은 약 2천2백1만kg. 액수로 8천8백61만 달러에 이른다. EU는 이 와인에 ‘지리적 표시 보호제도(PGI)’와 ‘원산지 명칭 보호(PDO)’를 접목시켜 수출 확대를 노리고 있다. PGI는 탄생지에서만 지명을 상표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일반 명사처럼 통용되어온 ‘샴페인’ ‘코냑’ ‘스카치’ 등의 명칭을 국내 제품에 쓰는 데 제약이 따른다. PDO는 원료 생산과 제조 및 처리 공정 모두가 해당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 상표 등록 등 배타적 권리에 대해 보호하는 제도로 이를 쓰기 위해서는 로열티를 주어야 한다.
이에 양쪽이 합의할 경우 국내 농산품도 현지 등록 절차 없이 EU 시장에서 배타적 권리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2000년에 도입되어 지난 4월 등록된 우리 농산물 관련 건수는 ‘보성 녹차’ ‘한산 모시’ ‘태안 마늘’ 등 38건에 머무른다. 인지도 역시 낮은 편이다. 반면 EU는 5천여 건이 등록되어 있다. 와인과 증류주가 4천2백 건으로 대종을 이룬다. EU는 일단 PGI만을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와인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PGI부터 들고 나온 것이다.


 
꽃 로열티 늘어 화훼 농가에는 ‘직격탄’
화장품과 귀금속 제품도 우리 생활에 변화를 줄 전망이다. 의외의 복병이 될 가능성이 큰 분야로 관련 업계가 신경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화장품에 평균 8%의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지만 FTA 체결로 세금이 떨어지면 수입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EU는 관세 철폐와는 각도를 달리해 기능성 화장품 검사 등 제도 개편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기능성 화장품의 성분을 먼저 설정하고 이를 심사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를 EU 주도로 장악해 들어갔던 방식과 같다. EU의 목표는 검사 제도가 아니다. 지적재산권이다. ISO 시리즈는 겉으로는 표준화와 생산 공정 투명화를 내세웠으나 내막은 특허 등 지적재산권을 통한 로열티 확보에 있다.
국내에서는 ‘명품’이 하나의 브랜드 시장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구찌·루이비통 등 패션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프랑스·이탈리아 등으로부터 입김이 거세짐에도 EU 협상단은 지적재산권에 대해 총론적 원칙만을 정하는 등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는 화장품을 먼저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이를 시작으로 가방·귀금속 등 이른바 명품 시장으로 확대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회는 원·부자재 조사단 구성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귀금속의 경우 EU 관세는 2.5~4%이나 우리는 8% 정도로 과세액이 많다.
유럽 시장이 강세인 꽃 유통 분야도 우리 시장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청춘 남녀가 ‘구애용 꽃’을 하나 살 때마다 10~20%의 로열티를 EU에 주게 된다. 한·미 FTA에서는 농업 분야 중 피해가 가장 적었으나 한·EU에서는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분야이다. 국내 꽃 생산량은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지만 대략 한 해 1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로열티로 나가는 돈은 60억~2백80억원. 농림부는 60억~100억원대로 업계보다 적게 보고 있다. 로열티는 수입을 대행하는 종묘 회사들을 통해 네덜란드 등 종자 수출국에 주어왔다. 종묘 회사들은 화훼 농가에 로열티 지불액만큼 빼고 꽃값을 지급했다. 농어촌유통공사는 이를 1~2%대로 낮추기 위해 화훼 농가들과 조율에 나섰다. 그러나 농가들은 ‘로열티를 줄 바에는 차라리 꽃 농사를 짓지 않겠다’라며 맞서고 있다. 그래서 공사 쪽에 협상권을 주지 않고 있다. 농촌진흥원 고객지원센터 유철성 위원은 “꽃의 로열티 과다 지급은 품종 육성이 약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재배 기술은 선진국 수준에 이른다. 농촌진흥청·농협대학·태안 백합 시험장·충남도기술연구소·구미화훼연구소 등에서 종목별로 특화시켜 전담하고 있다. 따라서 주력 품종 육성이 3~4년 지나면 가시화될 전망이다.
꽃 시장에 비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EU에서 많이 들어오는 나리(백합)는 농촌진흥원에서 7년째 종묘를 개발하고 있다. 전북 무주군청이 시범적으로 내놓은 ‘카사블랑카’ 나리의 경우 러시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올해 9천 평 규모로 재배 면적을 늘렸다.
이 밖에도 EU가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금융업과 특허·지적재산권 보호 문제·택배업·낙농업 등도 우리들 실생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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