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사상 담은 세계 최초 민족 경전”
  • 김세원 (언론인·고려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7.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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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연구원 주최 학술대회에서 ‘천부경’ 집중 조명
 

유교와 불교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 속에 파고 들어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지만 원래 우리의 토종 문화는 아니다. 중국을 통해 수입된 외래 문화이다. 그렇다면 중국으로부터 불교와 유교,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에 우리 고유의 정신 문화와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총장 이승헌) 국학연구원 주최로 7월13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천부경(天符經)의 철학과 역사적 재해석’은 우리 고유의 정신 문화를 선도(仙道)로 파악하고 선도의 경전으로 전해지는 천부경이 담고 있는 사상과 철학적 배경을 집중적으로 조명해본 학술대회였다. 국학연구원이 지난해 6월부터 천부경을 주제로 개최한 세 번째 학술대회인 이날 행사에는 총 6편의 연구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2백명이 넘는 연구자와 시민들이 참석해 천부경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천부경에 관한 논란과 천부경이 담고 있는 사상, 천부경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배경 등을 짚어본다.
천부경이란:천부경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천부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천부경은 천제의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글이다. 환웅 대성존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 혁덕(神誌 赫德)에게 명해 녹도문(鹿圖文·사슴발자국 모양 문자)으로 기록했는데 고운 최치원이 일찍이 신지가 전서로 쓴 옛 비석을 보고 다시 문서로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민족 종교 연구자들은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은 천부경,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삼일신고 세 가지라고 말한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전체 동양의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천부경은 원래 환인 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통일신라 시대까지 전해져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옛 글자인 가림다문자로 새겨져 후세 사람들이 판독하지 못하다가 통일신라 때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석학 최치원이 이를 판독해 한자로 바위에 새겼다. 이것이 바로 81자에 우주와 만물의 법칙을 압축해 담은 천부경이다.
천부경은 일제 시대 계연수가 편찬한 <환단고기>와 최치원의 후손 최국술이 편찬한 <최문창후전집>, 고려 말 충신인 농은 민안부의 유품에서 발견된 갑골문 등을 통해 전문이 전해진다.
천부경의 출현:천부경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환단고기>를 편집한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발견하고 이를 탁본해 1917년 단군교당으로 보낸 뒤부터이다. 1920년 도교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전병훈(1857~1927)이 저서 <정신철학통편>에 천부경 해제를 실은 것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부경 풀이이다.
그 후 1921년 계명구락부에서 발행한 잡지  <계명> 4호에 한별(생몰연대 미상)이 천부경을 해제했고, 1922년 유학자 김택영(1850~ 1927), 1923년 석곡 이준규(1899~1923), 1930년 단암 이용태(1890~1966), 1937년 노주 김영의(1887~1951) 등의 천부경 해제가 잇따라 나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간부로 활약했던 이시형(1869~1953)이 1934년 천부경 전문을 소개했고, 일제 말 독립운동가 이시영·홍범도·여운형 등도 천부경을 소개하거나 천부경을 찬양하는 글을 남겼다.
이근철 강사는 “일제 강점기에 천부경이 널리 알려지고 주해서들이 집중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천부경을 민족 정신의 원형으로 인식하고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는 민족의 정체성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진위 논란:천부경에 대해서는 근거가 불확실한 날조된 문서라는 비판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정신 문화와 사상을 담은 경전이라는 주장까지 양 극단의 견해가 공존한다.
강단학을 중심으로 실증을 강조하는 일단의 사학자들은 천부경에 대해 그 출처는 물론, 문장과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는 회의론을 내놓는다. 1911년 <환단고기>를 편찬한 계연수가 묘향산 바위에서 천부경을 처음 발견했다고 하나 그 과정이 석연치 않고 천부경이 실려 있었다는 <환단고기>도 많은 부분이 다른 사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군을 중심으로 민족사상을 연구하는 재야 학자들은 <환단고기>의 상당 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할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민족의 경전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13대 단군 흘달 50년(기원전 1733년)에 오성취루(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5개 별이 한 자리에 모이는 천문 현상)가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최근 슈퍼 컴퓨터로 확인한 결과 기원전 1734년 7월13일 5개 별이 일렬로 하늘에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는 등 기록의 많은 부분이 사실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위서 논란 잠재울 연구 결과 속속 발표돼
이날 기조 강연을 맡은 박성수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천부경이 1920년대 이후 조작된 위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신채호까지도 천부경을 위서라고 단정했다며 그 근거로 <조선사연구초>(동아일보 1925년)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름 그대로 논문 초고를 모은 것으로 1931년 발표된 <조선상고사>가 완성된 논문”이라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천부경에 대한 단재의 최종적 판단은 <조선상고사>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책에서 단재는 우리나라에서 귀중한 진서를 불태워 없앤 일은 있었으나 중국·일본과 같이 책을 위조한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라고 밝혔다.
천부경에 담긴 철학:이날 학술대회 참가자들은 “천부경에는 하나에서 시작해 하나로 돌아가되 그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다는 ‘한사상’, 하나의 원리가 하늘·땅·사람으로 작용해 우주 만물을 생성 변화시킨다는 ‘천지인 사상’, 그리고 실천적 지침으로 널리 모든 인간, 나아가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사상’이 두루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철 강사는 ‘천부경의 삼(三)에 관한 선도적 고찰’에서 “천부경 속에는 일(一)을 11번, 삼(三)은 8번 썼다”라며 “천부경의 일이 우주 만물의 근원적 존재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면 삼은 현상계의 구성 원리를 나타내는 개념이며 우주와 인간의 근본적 원리를 깨우치는 선도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천부경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이 천지인으로 상징되는 세 가지 요소들로 나뉘어져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다양한 역할들을 함으로써 모든 만물을 생성하고 구성하며 변화를 이끌어내는 삼원론의 논리를 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민영현 경성대 강사는 ‘소도경전본훈과 천부경의 철학사상’에서 “천부경은 일기(一氣)와 삼신(三神)으로부터 와서 다시 삼신과 일기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극히 간단한 81자로 압축해 담고 있는 한민족의 경전”이라고 말했다.
정경희 교수는 ‘천부경의 도상화-천부경에 의한 복희 팔괘, 하도의 해석’에서 “상수학 전통에서 하도의 원리를 팔괘로 표현한 복희선왕 팔괘도가 주로 평면적 원형으로 이해되어 왔다면 천부경의 구수론(십수론)으로 팔괘, 하도를 분석해보면 팽이처럼 입체적 도상으로 이해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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