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로 쓴 메이저리그 새 역사
  • JES 김성원 기자 ()
  • 승인 2007.08.1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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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본즈 31년 홈런 기록 깨던 날, 박수는 없었다

ⓒAP 연합
타구가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배리 본즈(4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양 손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는 예의 거만한 모습 그대로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본즈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 그에게 야구를 가르쳤던 본즈의 대부 윌리 메이스(본즈 이전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홈런 타자였다)가 자이언츠 점퍼를 입고 그라운드에 내려와 그를 얼싸 안았다. 전광판에는 “본즈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전한다”라는 행크 애런의 영상메시지가 흘렀다. 본즈는 샌프란시코 팬들과 가족, 그의 대부 윌리 메이스, 그리고 작고한 아버지 바비 본즈 이름이 불리는 순간 굵은 눈물을 흘렸다. 통산 7백56호 홈런. 1976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행크 애런(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31년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2007년 8월8일 한국시간 12시38분.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가 펼쳐진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8월8일 이후부터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기 시작했다. 배리 본즈가 앞으로 써나갈 홈런을 역사 속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여부이다. 다행스레 본즈는 유일하게 박수 갈채를 받는 홈구장 AT&T 파크에서 홈런 기록을 달성했다. 만약 다른 구장이었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날 분위기도 묘했다. 대기록을 축하해야 할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공교롭게 이날 금지약물조사위원회의 조지 미첼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샌프란시스코 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역시 홈런 기록 달성 순간 행크 애런은 모습을 나타내는 대신 이미 준비된 영상물을 통해 ‘매우 무덤덤하게’ 축하인사를 전달한 셈이다. 기록이 깨진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본즈의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지난해 초반 샌디에이고의 펫코 파크. 외야 수비를 나가던 본즈가 관중이 던진 주사기를 맞았다. 주사기는 스테로이드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본즈와 스테로이드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본즈는 1998년 약물 공급 업체로 나중에 발전하는 발코(BALCO) 사의 트레이너 그렉 앤서니를 만난다. 이후 홈런의 비거리 질이 달라진다. 이전까지 16.1 타수마다 때려냈던 홈런이 10 타수 당 홈런으로 바뀌었다. 이후 만 37세부터 40세까지 지난 4년간 7.9 타수마다 홈런이 터져나왔다. 본즈가 왜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는지(아직 유죄 판결이 난 것은 아니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의 오만에 가까운 자존심 탓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98년은 마크 맥과이어(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새미 소사(당시 시카고 컵스)의 시즌 최다 홈런 대결이 벌어져 1994년 파업으로 두동강 났던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되살린해 였다. 그 중심에 자신 대신 맥과이어와 소사가 있었다. 최고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다는 가설은 본즈의 평소 성격에 비추어보았을 때 가장 그럴듯하다. 이는 훗날 그의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를 폭로한 지역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도 주변 인물의 증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과욕 부추긴 맥과이어·소사와의 자존심 싸움

 
본즈 파문은 지역 신문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을 통해 발가벗겨지고 예전 홈런왕이었던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이 출간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칸세코가 실명을 거론하면서 각종 금지 약물을 복용해온 선수들을 폭로했고 이후 2005년부터 미국 의회의 본격적인 조사가 이어졌다. 예전에 마크 맥과이어가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을 세운 뒤 안드로스틴다이온이라는 금지 약물 중 하나를 복용했을 때 유야무야 넘어간 것과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던 것이다.
배리 본즈는 스테로이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미국은 담배를 소비하지 말라고 담배갑에 경고문을 붙이는 나라이다. 한때 금주령도 실시했던 나라 아닌가. 왜 개인의 약품 복용 여부에 정부까지 나서서 개입하는가.” 이렇게 투덜댔던 그의 볼멘소리는 나중에 약물 복용을 시인하는 반대 증거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앞으로도 없을 명약으로 손꼽혔던 스테로이드는 어떤 부작용을 갖고 있는가.
과용해서 쓰게 되면 호르몬 분비가 잘못 되어 여성은 남성(갑작스레 자라는 수염), 남성은 여성의 특징(유방 확대)을 보이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 스테로이드는 또 집중력을 강화시키고 근육 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역시 장기간 사용하면 관절 계통이 심각하게 약해져 부상 및 골절상을 입었을 때 회복 속도가 더뎌진다. 지금도 본즈는 다리를 절룩거린다. 스테로이드 의혹이 가장 짙은 부위이다. 스테로이드 복용시 타자들에게 가장 도움을 주는 것은 놀라운 시력 향상. 그러나 부작용이 생기면 역시 시력이 급속도로 약해진다.  베이브 루스는 본즈가 말했던 것처럼 금주령 시대에 술을 무한정 마셔가며 홈런을 때려낸 타자이다. 또 공 반발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데드볼 시대에서 벗어나 라이브볼 시대가 오면서 홈런 수가 급속히 증가한 타자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 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 타자들의 웨이트트레이닝 강화와 이를 위한 약물 보조제의 복용이 마치 유행처럼 번졌던 것이 본즈가 뛰던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본즈의 말대로 그는 억울한 희생양, 축복받지 못하는 영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여러 증거가 차례대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7백56호가 터져 나온 지난 8월8일 직후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인터넷판을 통해 즉각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이 다소 묘했다. ‘당신의 마음 속에’라는 전제를 달고 “누가 진정한 홈런왕 타이틀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중 진정한 홈런왕이 행크 애런이라고 답한 사람은 64%에 달했다. 본즈를 지지한 이는 36%에 그쳤다. “본즈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압도적인 80%가 ‘그렇다’라고 대답했고 ‘아니다’라는 응답은 4%에, 16%는 판단을 보류했다. 기록을 깨버린 본즈가 원정경기에 나섰을 때 팬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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