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수 아닌 투명인간인가”
  • 노진섭 기자 ()
  • 승인 2007.09.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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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 외국인 교수들, 연구실도 없고 회의에 참석 못해…고용 보장 ‘아득’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국내 대학에 재직 중인 외국인 교수들은 자신들을 ‘유령’으로 묘사하고 있다. 정규 학부 과정의 교수 인력으로 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학사 행정을 비롯해 학과 운영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시쳇말로 왕따를 당하기 일쑤이다. 석·박사급의 전문 인력임에도 어학원의 원어민 강사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이런 무관심 속에 한국을 떠나려는 교수들도 늘고 있어 우수한 외국 인력을 유치해 국내 대학을 세계화시키겠다는 교육 당국의 구호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지난 8월28일 서울의 ㅇ대학에서 만난 퍼거슨(가명) 교수는 한국에서의 교수 생활이 순탄치 않음을 털어놓았다. 연구실에서 얘기를 나눌 수 없겠느냐는 취재진의 말에 그의 얼굴은 굳어졌다. 자신의 개인 연구실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학의 언어학 박사 출신인 그는 8년 전 이 대학에 부임해 현재 영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머리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평등한 대우(unfair conditions)를 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 (나보다) 후임으로 들어온 한국인 교수는 개인 연구실이 있다. 외국인 교수의 경우는 한 사무실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의 수준이 의심스럼다”
그를 따라 외국인 교수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구실을 가보았다. 강의실 하나 크기의 방에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칸막이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마치 독서실 같은 이 연구실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외국인 교수는 20여 명. 책상에는 컴퓨터와 전화도 없다. 케니스(가명) 교수는 “영어권 교수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베트남어·스페인어 등 비인기 언어권 출신 교수들은 한 연구실에서 다른 언어권 출신들과 같이 생활하는 바람에 더욱 큰 불편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 공동 사무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없다고 한다. 밤 10~11시께 문을 잠그기 때문이다. 베로니카(가명) 교수는 “밤늦도록 연구나 공부를 하고 싶어도 다른 곳으로 쫓겨나가야 한다. 한국 대학의 수준이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 네 곳을 방문해 실태를 알아보려 하자 외국인 교수들은 극도로 경계하는 눈치였다. 자칫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나 학교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했다.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만난 교수들은 일단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동안 말을 못한 채 속으로만 품고 있던 고민을 쏟아냈다.
서울의 ㄱ대학에서 만난 외국인 교수들은 무엇보다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독문학 박사 출신 율리(가명) 교수는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국 대학에 근무하는 대다수 외국인 교수들은 한국인들과 동등한 취급을 받고 싶어한다. 우리는 더 좋은 처우를 기대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다른 대학 외국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ㅇ대학에서 8년 동안 재직한 마커스(가명) 교수는 “단 한 번도 교수회의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개인 연구실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교수회의 등에서 외국인 교수들을 고립시키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한국인 교수들과 같은 동료라는 생각을 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ㄱ대학의 이 아무개 교수는 외국인 교수들을 학내 회의에 참석시킬 수 없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외국인 교수들을 회의 등에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소수의 외국인 교수를 위해 회의를 영어로 진행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말로 하면 외국인 교수는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관계가 서먹해져 아예 참석 통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교수의 말대로 외국인 교수들은 학교측으로 부터 전혀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 출신 알렉스(가명) 교수는 최근 주차요금 체계가 바뀌었다는 단순한 공문 한 장을 받고 전전긍긍해야 했다. 한글을 모르는 이 교수는 공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는 “학교와의 계약 관계 등이 적힌 공문인 줄 알고 무척 당황했다. 모든 공문이 한글로만 되어 있고 행사가 한국말로만 이루어져 외국인 교수들은 학교 행정 등에 참여할 권한을 빼앗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교수들은 자신들이 어학원의 원어민 강사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학교측에서 전공과는 무관하게 학생들에게 외국어만 가르치라는 주문을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치 학원 강사와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하는 교수들도 있다.

한국어·한글 몰라 차별 더 심해

 
외국인 교수들은 강의 시간이나 급여에서도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ㅅ대학에 근무하는 가브리엘(가명) 교수는 “한국인 교수들의 주당 강의 시간이 평균 7시간이지만 외국인 교수는 주당 최소 12시간이다”라고 말했다. ㅇ대학의 칼슨(가명) 교수는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 없지만 급여에도 차이가 있다. 더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도 같은 박사급인 한국인 교수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는다. 또 한국인 교수들에게는 연구비 명목으로 상여금 등이 주어지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상여금을 받은 외국인 교수는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인 교수들은 각종 수당을 받지만 외국인 교수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이다”라고 주장했다. 호주 문학을 전공한 미셀(가명) 교수는 “일주일에 20시간 강의하고 월급으로 2백20만원을 받은 교수도 있었다. 그는 급여에 불만을 품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교수들은 대학에 따라 2~4년 단위로 계약한다. 그러나 계약 내용이나 임용 시기 때문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 ㅇ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는 조세핀(가명) 교수는 “학기 시작 3일 전에 계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때라도 계약을 하지 못하면 당장 한국을 떠나야 한다. 최소한 한 달 전에라도 계약 여부를 정하면 좋겠다. 고용 보장(Job security)은 생각할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미플린(가명) 교수는 “계약 내용도 단순하다. A4 용지 한 장에 계약 기간과 연봉, 날짜 등을 적는 것이 전부이다. 교수로서 존경받기는커녕 마치 노예 문서를 쓰는 느낌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실상을 정부는 알고 있을까.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정책과 관계자는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고 관리하는 것은 각 대학에서 나름대로 정한 준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교수 문제는 각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처우는 대학이 알아서 할 일”
하지만 대학 행정 당국은 실상을 알고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체 교수 5백5명 중에 외국인 교수가 1백13명인 한국외국어대학교 정경원 교무처장은 “외국인 교수들은 책임지는 직책을 맡지 않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국내 교수들과 외국인 교수들에 대한 처우가 다를 수 있지만 앞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수 8백명 중 61명의 외국인 교수를 확보하고 있는 연세대학교의 홍종화 교무처장은 “아무래도 외국인 교수들은 문화 차이로 인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내 교수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도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의 경우는 외국인 교수의 인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 교수들이 늘고 있다. 연세대 홍 교무처장은 “한 학기(6개월) 만에 떠난 교수도 있다. 외국인 교수들이 우리 교수들과 화합을 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ㅇ대학에 재직 중인 피터슨(가명) 교수는 “내년에 계약이 끝나면 학교가 재계약을 하자고 해도 떠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으려는 교수들도 있다. 앤더슨(가명) 교수는 “열정적인 학생들에게 반했다. 그래서 가르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또 미국보다 세금과 물가가 싸서 생활하기에도 좋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취재 중에 만난 외국인 교수들은 서강대·한양대학교 등은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는 좋은 대학들이라고 칭찬했다. 서강대학교 김영수 사무처장은 “연봉, 개인 연구실 등 대우 면에서 국내 교수와 외국인 교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또 교수회의 때도 외국어로 된 책자를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등 외국인 교수들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고등교육의 글로벌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에 따라 2008년에 국·공립 대학의 외국인 교수를 현재의 10배가 넘는 3백명 가량 뽑기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이 외국인 교수들의 눈에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하다. 단순히 원어민 학원 강사 취급을 하며 학문 연구에서는 철저히 소외시키는데 국제화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외국인 교수를 동료로 보지 않으면서 숫자만 늘리는 것은 대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와 대학이 이런 정책과 환경을 유지한다면 자칫 함량 미달의 교수를 채용할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ㄱ대학 어 아무개 교수는 “양질의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기 위해서는 급여 등 대우수준을 지금보다 현저히 높여야 한다. 또 영어권뿐만 아니라 비영어권 국가 교수도 초빙해야 한다. 예컨대 IT로 유명한 인도 교수들은 미국으로 간다. 우리 대학이 그 나라의 고급 교수들을 흡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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