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가슴 깊은 대화를 나눌까
  • 조철 기자 ()
  • 승인 2007.09.0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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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 철학 콩트, 그리고 내면의 여행을 그린 반전 드라마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예고도 없이 내리던 날, 퇴근하려 빌딩 현관을 나서던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린다. 우산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 몇은 비가 내려 술 맛 돌겠다며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리고 달려 나간다. ‘우아한’ 저녁 식사 자리를 예약한 한 여자는 “내겐 우산이 없어요” 하며 하염없이 우산을 들고 나타날 남자를 기다린다. 우산이 되어줄 그 남자는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못할 소중한 인연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남자와 ‘언제나’ 함께 ‘우아한’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여자는 고민에 빠진다. 깊이 사색할 것도 없다.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일지 아무도 모른다. 고슴도치가 날카로운 가시로 중무장하고 있어도 그 속에 부드러운 속살, 즉 우아함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겉모습이 언제나 우아한 것은 없다. 우아하게 보일 뿐 우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산이 되어줄 남자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내면의 우아함을 찾는 여행을 잠깐 떠나본 것이다. 여자는 우아한 프랑스 요리 대신 비오는 날이면 입맛이 당기는 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프랑스 소설이다. 프랑스 소설을 나라별 구분이 아닌 하나의 장르처럼 여기는 독자도 많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이 기다려왔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슴도치가 지닌 우아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자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저자인 뮈리엘 바르베리는 고등학교 철학 선생이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출생해 현재 노르망디 칼바도스의 오마하 비치에 살고 있다. 일본광이자 만화광이다. 그녀는 철학 선생답게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줄줄이 꿰고 있으며,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에 열광하는 등 아시아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그런 저자의 열정과 관심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지루할 정도로.

늙은 수위 아줌마와 천재 소녀의 ‘깊은 사색’
장황한 사건이나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하품과 졸음을 참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의 짜임 또한 독특하기에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만화광인 저자라서 ‘격자 구조’를 취한 것인가. 단편 같은 아주 작은 일상을 한 편 한 편 모아 나가거나 하루 일기 정도의 분량을 계속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주인공은 쉰네 살의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의 천재 소녀인데, 이 두 사람이 처음부터 갈등 구조 속에 놓이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이어나가다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두 주인공이 극적으로 만나는 것 또한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세상에 주인공이 따로 노는 그런 드라마가 어디 있었는가. 그런데 다분히 철학적인 사유가 이 지루함을 말끔히 씻어줄 때 독자는 졸음에서 벗어난다. 저자는 인간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긍정과 배려의 미덕을 특유의 재치와 입담으로 들려준다. 인생 한탄이나 할 것 같은 수위 아줌마나 가족 모두에게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소녀의 일상이나 생각에서 나올 것이 뻔할 것 같은데, 그들의 ‘깊은 사색’은 갈등하고 진화하며 통합으로 향해간다. 두 주인공 모두 철학 선생인 저자의 분신일 법한데도 각각의 캐릭터에 이질적이지 않은 상태로 역할 분담도 잘 되었다.
이 책은 ‘우아한’ 소설이다. 현란한 문체나 화려한 주인공을 등장시켜서가 아니다. 고슴도치에 비유한 주인공들의 내면을 독자와 우아하게 공감하도록 잘 조직한 것이 그렇다. 우아한 이야기가 아닌 데서 우아함을 발견하는 것이 사실 조금 어렵기는 하다. 머리를 좀 굴려야 할 듯.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필수. 고슴도치 안에 든 우아함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렇다.
파리의 중심 지역이자 부자 구의 하나인 6구와 7구는 예로부터 귀족들의 저택과 살롱이 모여 있던 상류층 지역인 쌩 제르멩 데 프레가 있는 곳이다. 그곳을 관통하는 총 2.25km에 달하는 기다란 일방통행로의 이름은 그르넬 가로, 그 도로의 입구 격인 7번지는 27년째 수위 아줌마로 일하는 르네 미셸의 직장인 7층짜리 고급 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이 아파트는 3층과 4층을 제외하고는 한 세대가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부유층 아파트로, 한 집의 넓이는 약 4백 평방미터, 한 세대당 2~4명이 사는, 말하자면 바다처럼 광활한 고급 주택이다. 이 부자 아파트를 관리하고 청소하는 가난한 수위 아줌마는 1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도 없이 홀로 고양이 레옹을 키우며 지낸다.

 
“내 이름은 르네, 쉰네 살이고, 고급 아파트인 그르넬 가 7번지 건물의 관리인 아줌마다. 나는 과부고, 못생겼고, 오동통하고, 발에는 못이 박혀 있고, 나를 혐오하는 자들의 말을 믿자면 아침엔 가끔 입에서 매머드 냄새가 풍긴다고 한다. 나는 혼자 게으른 수고양이와 살고 있지만, 이 녀석이나 나나 서로 같은 부류들과 강강술래를 하며 춤출 생각은 별로 없다. 항상 예의는 바르지만 싹싹하다고는 볼 수 없는 나를 사람들은 좋아하진 않아도 참아주긴 한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수위 아줌마라는 범주로 고착시킨 사회적인 믿음과 아주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팔로마, 몇 달 후 자살을 결심한 열두 살의 이 천재 소녀는 이 아파트의 6층에 사는, 부유한 국회의원의 막내딸이다. 머리가 너무 뛰어나 아둔한 척하지만 학교에서는 번번이 1등이다. 부모들과 세상 사람들에 질려, 6개월 뒤 열세 살이 되는 날, 아무도 없는 집에 불을 지르고, 그동안 엄마 서랍에서 훔친 수면제를 먹고 할머니 집에서 죽을 결심을 한 독특한 소녀이다.
“내 이름은 팔로마, 열두 살이고, 그르넬 가 7번지의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에 산다. 그러나 난 오래 전부터, 내 마지막 종착점이 어른들의 삶의 공허함과 무능함, 곧 금붕어 어항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내가 그걸 알았을까? 난 아주 영리하다. 심지어 아주 별나게 똑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런 결심을 했다.”
소설은 같은 공간에 살지만 사회적 격차가 극과 극인 이 두 사람이 각자의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각자 독특한 관점에서 적은 기록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 독학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르네는 대화체로 잡무를 기록하듯 들려주고, 팔로마는 유서를 쓰듯 ‘깊은 사색’을 기록하다가 정신을 보완하기 위해 ‘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일기’를 작성한다. 존재의 의미, 아름다움, 사랑, 분노 등이 서로 교차하는 이 글들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도 쉬운 일이다. 이것은 가벼운 내용도 아니고 현학적인 것도 아니다. 아름다움과 순수를 향한 두 사람의 추구심은 피상적인 지적 과시와 우월감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르네가 현상학을 지향한 철학자 후설을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대목이 있다.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이 현상학의 눈이 아닐까. 평범한 일상을 분석하고 전망하고 종합하는 두 사람의 예리한 눈은 풍자와 비판의 날이 설 때도 있고, 진지함과 해학이 교차하면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기록이 공감의 메아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소설은 ‘수위 아줌마’의 깊은 지성과 ‘소녀’의 예리한 지능이 각자의 이기적인 쓰임에 머무르지 않는, 의미 있는 작업임을 알게 해준다.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시선은 그래서 차갑게 보이지만 따뜻하고  또 깊이가 있다.
시추에이션 드라마로 진행되던 것이 어느 순간 본격 드라마로 전환해 박진감 있는 전개와 반전, 그리고 눈물 쏙 빼는 감동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책이 어렵다면 이렇게 읽을 일이다.
팔로마의 깊은 사색 한 편이 인상 깊다. ‘만일 네가 미래를 잊는다면 너는 잃으리라 현재를’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나는 내 주위의 너무 바쁘고, 만기일에 스트레스 받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오늘에 너무나 탐욕스런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너무 일찍, 인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늙어가고, 그건 아름답지도 좋지도 즐겁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자신의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 미래, 그것은 산 자들이 진정한 계획을 가지고 현재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
자살할 계획을 짠 팔로마라고 해서 다 썩은 야채처럼 근근이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팔로마는 “중요한 것은 죽는다는 것도 아니고, 몇 살에 죽느냐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죽는 순간 무엇을 하고 있었냐이다”라고 ‘깊은 사색’의 첫 장에 밝힌다. ‘동백꽃’이 르네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우아함을 상징하듯 이 대목은 이 소설의 전체를 말해주는 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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