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전선 파고드는 교회의 종소리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7.10.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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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이후 교회는 정치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시작했다. 어떤 목사들은 드러내놓고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을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치적인 무관심과 중립을 신앙의 미덕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로써 정교 분리는 한국 교회에서 사실상 폐기 처분되었다.”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목사가 지난 10월6일 기독교통일학회가 주최한 한 포럼에서 한 말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개신교계 인사들은 대체적으로 최목사의 진단에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개신교 세력의 움직임이 정치적으로 주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개신교계의 정치 활동은 소망교회 장로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최대 교단인 예장통합에 속한 소망교회는 신도 수가 7만여 명에 이른다. 특히 개신교계 장로나 목사들 사이에 이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흐름이 거세다. 일부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장로 대통령을 만들자”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개신교계의 ‘장로 대통령 만들기’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개신교 목회자 60% 이상이 “이명박 지지”
개신교계에서는 올 들어 대통령 선거를 보는 목회자들의 인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두 개의 통계 자료가 발표되었다. 하나는 올 1월 월간 <목회와 신학>이 보도한 목회자 5백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이다. 목회자들의 64.8%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다른 하나는 지난 7월11일 한국장로신문사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전국장로수련회에 참석한 63개 노회 1천6백73명의 장로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이다. 77.8%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마디로 개신교계 목사나 장로들 다수가 한나라당 이후보를 지지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닌 수치이다. 개신교계 한 소식통은 이런 점을 들어 “이후보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은 개신교계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보수 개신교 인사들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이다. 김목사는 지난 7월27일 금란교회에서 열린 한국미래포럼 총재 취임 예배에서 “이번에는 예수 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김목사는 지난 3월19일 엠배서더 호텔에서 열린 ‘제2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에서도 “다시는 좌파 정권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목사들과 장로들 중에 장로 대통령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마음이 합쳐지지 않아 큰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금란교회는 홈페이지에 한때 이명박 후보의 팬클럽인 ‘명사랑’ 배너를 걸었다가 교계 내에 논란이 일어나자 삭제했다.
오는 10월24일 유엔데이를 맞아 보수 단체들이 주최할 예정인 대규모 집회에도 금란교회 신도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집회에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성우회와 재향군인회 등은 물론 보수 개신교계 인사들이 다수 참가해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청교도영성훈련원 원장 전광훈 목사도 지난 4월 경남 마산에서 열린 개신교 집회에서 “만약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불렀다. 그는 평소 김홍도 목사 등과 함께 각종  보수 단체들의 집회에 참석해 현 정권을 비판해왔다. 그는 “농담으로 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지만,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7일 설립한 뉴라이트 전국연합 김진홍 상임의장도 이명박 후보 지지로 기울었다는 것이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김목사는 각종 집회에서 “이번 대선에서 좌편향 정권의 집권을 막을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후보는 지난 10월7일 김목사가 이끄는 두레교회 ‘천막교회’입당 예배에 참석해 기도하는 등 남다른 친목을 과시했다. 개신교계에서는 김목사가 대선 전에 이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천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홍도 목사와 김진홍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이만신 목사, 기하성 총회장인 장희열 목사, 연동교회 담임목사인 이성희 목사 등과 함께 한국미래포럼(대표회장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담임목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월 이 단체가 주최한 기도회에서는 ‘노무현 정권’을 성토하는 정치 발언이 쏟아져 ‘기도회’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중도 개혁적인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기독교개혁운동도 지난 6월21일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 선언했다. 5백여 명의 신학자들이 모여 있는 이 단체는 “지역 감정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데 가장 적합한 후보이다”라는 등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이렇게 선언했다. 이 단체의 대표인 합동신학대학원 한성진 교수는 “단순히 이후보가 교회 장로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적으로 손학규 후보인가, 이명박 후보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지지 후보를 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개신교계에는 또 ‘이명박 기도후원회’까지 있다. 한국교회부흥발전협의회 홍신용 회장은 지난해 1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기관지인 <기독신문>에 광고를 내고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 후원회는 현재 회원이 몇 명인지, 어떻게 활동하는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홍회장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세력들을 막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이명박 기도후원회를 세우게 되었다”라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기도회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회장은 개신교계 인터넷 언론인 <뉴스엔조이>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드러나지 않고, 기도로만 지원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개신교계의 장로 대통령 만들기는 이처럼 다양한 각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1992년 충현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출마했을 때보다 더 노골적인 흐름이다. 당시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예배 때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로부터 경고 서한을 받았었다. 최근 개신교계 인사들의 이후보 지지 발언은 그때보다 강도가 더 세다. 선거관리위원회나 시민단체들이 문제 삼고 나서면 법적으로 문제될 만한 수위까지 와 있다.

 

성터교회 방인성 목사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수 교회의 지도자들이 조찬기도회나 설교에서 공공연히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목사들이 정권 바꾸기 운동에 앞장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앞으로 교회 내에서 이런 일들을 감시하는 시민운동을 펼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개신교 인터넷 언론 <당당뉴스> 대표 이필완 목사도 “걱정할 만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는 개신교와의 관련성이 도드라지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되도록이면 공식적으로는 교회와 관련 있는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이후보가 지난 10월3일 소망교회 창립 30주년 기념 리더십 특강을 한 것도 비공식 일정이었다.
당 국책자문위원이나 자문 교수단 등에도 개신교 인사 다수가 들어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개신교계 한 소식통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개신교계 지도자들이 여러 명 이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공개되면 교회 내에서 분란이 일 수도 있고 불교계 등이 반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후보측은 조계사나 해인사 등 불교계를 찾는 일정은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편이다. 이후보측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주호영 의원을 내세워 불교계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계의 ‘장로 대통령 만들기’가 한창인 데는 이후보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종교성 짙은 발언을 토해내는 것도 한몫 하고 있다. 지금까지 크게 부각되었던 발언만 얼추 꼽아보아도 여럿이다.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2004년 5월31일) “청계천 복원은 보이지 않게 드린 무릎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이루신 것이다”(2005년 9월12일) “하나님이 한나라당을 사랑하는 것 같다. 대선 결과는 하나님이 만들어주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2007년 9월19일) 등이다.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역풍 조짐…일부는 공동 대응 조직 만들기도
새벽 4시에 형제들을 깨워놓고 새벽 기도를 했던 어머니 채태원씨의 영향을 깊이 받은 이후보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대규모 개신교 행사에만 50여 회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청계천 준공식 때 먼저 목사를 모시고 준공 예배를 한 뒤 테이프를 끊은 것이나,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한국기독교교회총연합회였다는 것 등은 그의 종교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지난 8월21일 이명박 후보와 만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용규 대표회장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실 줄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후보의 ‘간증 정치’는 정치권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경북에서는 이후보가 간증을 한 이후 그 지역 개신교 지도자들이 이후보 머리에 손을 얹고 대선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1996년 이후보가 서울 종로에 출마했을 때 상대 후보였던 이종찬 후보측은 교회를 상대로 한 이명박 후보의 ‘간증 정치’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일각에서는 이후보가 종교성 짙은 발언을 하는 것을 정치적인 맥락에서 바라본다. 개신교계의 지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통일시대 평화누리 사무국장인 구교형 목사는 “의도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개신교계만큼 조직적으로 표를 얻기 쉬운 곳이 어디 있나”라고 말했다.
이후보가 호남에서 나름으로 선전하는 막후에 개신교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6월 이후보 지지를 선언한 ‘한국기독교개혁운동’ 회원의 70%는 호남이 고향이다. 개신교계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광주·전남 개신교계 지도자들 가운데도 이후보를 열심히 돕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120여 개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인 광주시민단체총연합회 회장인 방철호 목사가 대표적이다. 한기총 회장을 지낸 그는 지난 6월 ‘지역 화합 등을 위해’이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이후보가 간증한 호남 지역 한 교회에서는 신도들이 대거 한나라당에 입당 원서를 냈다.
개신교계 한 소식통은 “이번 대선에서 이후보는 호남에서 20% 가까운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본다.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개신교계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고, 경상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약한 데다가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골통 보수 이미지와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망했다.
개신교계의 ‘장로 대통령 만들기’는 대선이 가까울수록 본격화 할 전망이다. 그러나 개신교계의 이런 움직임이 이후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에서 보듯 개신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사회 일각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후보측이 종교 문제와 관련해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점 때문으로 보인다.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장로 대통령론’에 맞서 이달 말쯤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 대응 조직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불교계에서도 경우에 따라 ‘반이명박’흐름이 거세질 수 있어 종교 문제는 이래저래 이번 대선의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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