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도 울고 갈 형제의 난
  • 왕성상 전문기자 ()
  • 승인 2007.10.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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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끝내 소송으로 번져…노조까지 가세해 확대 일로

 

국내 최대 제약회사인 동아제약의 경영권 싸움이 확대 일로를 걷고 있다. 더욱이 강신호 회장(80)의 둘째아들인 강문석 이사(46·전 수석무역 부회장)와 넷째아들인 강정석 대표이사 부사장(43·동아오츠카 사장 겸임) 간의 다툼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들은 이복형제 사이로 강이사는 강회장 본부인에게서, 강부사장은 두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다. 강회장의 첫째아들(강의석)과 셋째아들(강우석)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양쪽의 극한 대립으로 ‘박카스 신화’로 유명한 동아제약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습이다.
싸움의 발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에 강이사가 동아제약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앉았으나 이듬해 말 물러났다. 회사 주력품인 박카스 판매 부진 등의 이유에서였다. 1987년 7월 동아제약 기획1팀 사원으로 입사해 16년간 강회장과 일해온 그는 2005년 4월 수석무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회장의 호(수석)를 따 만든 이 회사는 외국 술 수입 판매회사이다. 그 뒤 부자는 주식 지분 늘리기에 나섰고, 지난해 9월 강회장이 강이사 어머니와 ‘황혼 이혼’을 하면서 가족 갈등이 불거졌다.
드디어 올봄에 곪았던 문제가 터졌다. 강회장과 강이사가 주식 지분 늘리기를 통해 경영권 싸움을 벌인 것이다. 회사가 심한 내홍을 겪자 제약 업계 원로들이 나서서 잡음을 가라앉혔다. 주총에서 강이사가 등기 이사로 참여함으로써 갈등은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강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비껴 앉고 강부사장이 경영 전권을 쥐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형제 간에 틈이 생기면서 내분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유충식 동아제약 이사(71·전 대표이사 부회장)를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도 강이사 편에 서서 강부사장을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0월31일 경영권과 관련된 임시주총을 앞두고 양쪽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재발했다. 총회 안건은 이사 선임. 강이사 쪽이 3 대 2로 된 이사회 구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사내 이사 2명(지용석 한국알콜산업 대표이사, 박선근 LG생명과학 고문), 사외 이사 3명(박정삼 전 HK상호저축은행 대표,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 정은섭 법무법인 아주 대표 변호사)을 추천했다. 지금까지 동아제약 이사회는 사내 이사 다섯 명, 사외 이사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강이사 쪽이 이사 추가 선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강부사장 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회사 재무 구조 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자사 주식 처분에 들어갔다. 동아는 7월2일 이사회에서 자사 주 74만8천4백40주(7.45%)를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 DPA Limited와 DPB Limited에 팔고 이를 기초 자산으로 양사의 교환사채 발행분에 대해 지급 보증을 서기로 결의했다. 이는 자사주 의결권을 다른 채널로 되살려 경영권 방어에 쓰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증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강부사장측은 부인하고 있다.
이에 강이사 쪽은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9월21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동아제약 지분을 가진 수석무역과 한국알콜산업 등의 이름으로 소송을 낸 것. 동아제약이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판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또 동아제약 경영진을 믿을 수 없다며 주총 소집도 요구했다.
사태는 점점 커져 동아제약 직원들 모임인 동아제약발전위원회(동발위)가 들고 나섰다. 동발위는 1차로 지난 10월5일 총회를 열고 올봄부터 펼쳐온 ‘우리 회사 주식 갖기 운동’으로 모집된 주식 13만1천여 주(전체 주식의 1.3%)에 대한 의결권을 현 경영진 지지를 위해 행사하기로 결의했다. 동발위는 또 회사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올 연말까지 직원 한 사람당 100주, 2010년까지 5백 주 갖기 운동도 펼치기로 했다. 이들은 특히 ‘회사를 흔드는 외부 세력을 그냥 두지 않겠다’라며 강력히 맞서 투쟁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강신호 회장이 직접 중재 나서야”
강이사 쪽은 비상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선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라는 자료를 통해 사태 진상을 공개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3월 주총 때의 합의를 현재 경영진들이 먼저 깨는 바람에 벌어진 일로 ‘화합하려는 형’과 ‘경영권 전횡을 일삼는 동생’의 대립에서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전직

 
사장인 형(강이사)이 임원으로 선임되었음에도 관장 업무도, 사무실도 없이 방치한 것을 실제 사례로 들었다. 또 동아제약 및 그룹 임원회의에서도 배제되는 등 ‘찬밥 대우’를 받아왔다는 점도 덧붙였다. 특히 강부사장 쪽의 자사주 매각과 관련된 사항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해외 법인에 판 것은 편법 매각을 통한 의결권 부활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한 부대비용과 세금 등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고 10년간 9백38억원의 빚 보증까지 서게 되었다고 꼬집었다.
 양쪽 싸움이 뜨거워지면서 동아제약이 강이사를 형사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0월8일 강이사를 27억여 원의 횡령과 배임 혐의가 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소한 것이다. 동아제약 감사는 고소장에서 “강이사가 동아제약 대표이사로 있던 2002~2004년 사이 자기 소유 집의 공사비를 회사 돈으로 처리하고, 동아제약과 계열사 법인 카드를 본인과 가족 용도로 썼다. 또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변칙 회계 처리해 17억여 원도 가로챘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동아제약 계열사인 용마로지스 감사와 수석무역 최대 주주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수석무역 주식을 기준 평가액 비해 약 두 배 값으로 용마로지스에 매각함으로써 8억5천여 원의 이득을 꾀해 내부 정보를 통한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라고 전했다.
물고 물리는 난타전이 거듭되자 동아제약 직원 3백여 명은 지난 10월11일 낮 강이사가 최대 주주로 있는 서울 강남의 수석무역 본사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동발위가 주축이 된 이날 집회에는 동아제약 노동조합도 동참해 관심을 모았다. 직원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담은 편지와 강신호 회장에게 효도하라는 뜻의 ‘효행록’을 수석무역에 전하기도 했다.
수석무역 관계자는 “이날 집회는 동아제약 경영진들이 직원들을 회사 경영권 방어에 동원하면서 이루어졌다”라며 강부사장 쪽을 비난했다. 그는 또 “강부사장은 10월 들어 두 차례 열린 직원 집회는 물론 지난 3월15일에도 전국 영업 조직에 동원령을 내려 1천여 명이 관제 시위를 벌인 전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들이 회사를 지키기 위해 주식 갖기 운동까지 벌이는 마당에 동아제약 경영진이 7.45%나 되던 자사주를 서슴없이 팔아버리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아제약 사태’를 지켜보는 재계 및 제약 업계 사람들의 우려는 보통이 아니다. 올해 초 분란이 수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주총까지 열며 형제 간에 표 대결을 벌이는 골육상쟁이 재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을 키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싸움 당사자들의 부친인 강회장이 전경련 회장까지 지내며 한 때 재계를 대표한 기업인으로의 처신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주총 전에 집안 화합과 회사 및 제약 산업 발전 차원에서라도 강회장이 적극 중재에 나서 수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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