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코리아!”중국 한국 기업 ‘사재기’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07.10.15 16: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첨단산업에서 부동산까지 대거 매입…기술 유출에 속수무책

 
외환위기 이후 국내 시장은 해외 자본의 거센 공세에 밀려 속속 빗장을 풀어야 했다. 부도난 재벌 기업의 계열사가 외국에 팔리고, 그 회사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도 덩달아 부실화되어 외국으로 넘어갔다. 휘청거리는 재벌 회사들이 급전 마련을 위해 내놓은 시내 요지의 대형 빌딩들도 외국 자본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수혜자를 꼽으라면 중국과 타이완, 홍콩 등 화교계 자본이다.
경제개발 연대로 불리는 1970년대 이래 국내에서 화교 자본은 정부 규제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다. 대신 차관과 함께 들어온 미국계 자본이나 일본계 자본이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화교계 자본은 다시 살아났다.
부도난 쌍용자동차가 중국 국영기업인 SAIC에 팔려나갔고, 하이닉스의 LCD 제조 자회사인 하이디스가 중국 비오이그룹에 팔려 간판을 비오이하이디스로 바꿔 달았다. 최근에는 LG전자의 PC 사업 부분을 중국의 레노버가 인수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아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레노버는 컴퓨터의 대명사였던 IBM의 PC 사업을 전격적으로 인수해 ‘제조업 중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과시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LG전자는 IBM과 노트북 사업 분야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고 국내에서 합작 법인을 만든 바 있다. LG-IBM의 합작 사업이 종료되어 당장 레노버와 LG의 합작 성사 가능성을 생각할 수는 없지만 이런 배경 때문인지 LG의 PC 사업 중국 매각설이 나돈 것이다.

LG PC사업, 중국 매각설 나돌기도
물론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은 세간의 이런 풍문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최근 LG전자가 유휴 부동산 매각이나 한계 사업 철수 등으로 수익성 높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 레노버가 삼보컴퓨터 인수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 한국 내수 시장을 넘보고 있다는 점에서 전혀 근거가 없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이디스에서 쌍용차, PC 사업, 정보통신 기업으로 이어지는 중국 자본의 국내 기업 쇼핑 의욕은 2000년 이후 대형 빌딩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는 위력과도 맥이 닿아 있다.
중국계 자본의 국내 진출이 제조업 분야에서 암중모색 단계라고 한다면 부동산 쪽에서는 안착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싱가포르투자청이 과감한 베팅으로 서울 사대문 안의 최고 요지인 무교동 일대를 독차지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청계천1가부터 시청앞까지 이르는 무교동 일대의 서울파이낸스센터(중구)나 무교현대빌딩(중구), 코오롱빌딩(중구) 등을 모두 사들여 거리 전체를 사들였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싱가포르투자청은 지난 2004년에는 강남의 랜드마크인 스타타워를 9천억원에 사들여 ‘통 큰’구매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기도 했다. 싱가포르투자청은 현재 국내 부동산에 투자하는 유럽이나 미국계 자본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자본의 공격적 쇼핑 기질은 IT 기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한국산 인터넷 기반 게임을 수입해 중국 내에서 재벌급으로 성장한 게임 회사들이 나스닥에 입성할 정도로 덩치가 커지자 숫제 국내 기업을 인수해버린 것. 액토즈소프트가 바로 그런 예이다. 액토즈소프트가 만든 인터넷 기반 게임인 <미르의 전설>의 중국 내 판권을 2001년에 사갔던 샨다는 계약 당시 중소기업이었지만 <미르의 전설>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나스닥 상장기업이 되었다. 그러자 도리어 2004년 12월 액토즈소프트의 경영권을 9백60억원에 사들여 단기간에 게임개발 능력을 갖춘 아시아의 게임 강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5~6년간의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중국 자본의 국내 기업 사냥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특히 중국기업에 팔려간 대표적인 기업인 쌍용자동차나 비오이하이디스, 중국 샨다그룹에 팔린 액토즈소프트 등은 각종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한국과 중국 간 기술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는 분야라는 점에서 매각설이 나올 때마다 논란을 빚었다. 기업의 영업 비밀과 기술력이 중국 본사로 유출되어 결국 중국의 싼 임금에 기술력이라는 날개를 달아줘 ‘메이드 인 코리아’상품을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산업연구원(KIET)에서는 최근 한국과 중국의 자동차 생산 기술 격차가 오는 2010년에는 1.5년으로 줄어들고, 이후에는 1년 안팎으로 거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중국이 양적인 면에서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질적인 면에서도 무섭게 따라붙고 있다는 얘기이다.
 중국 자본은 우리 기업이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LCD나 IT, 자동차 분야의 쇼핑에 열중하고 있다.
TFT-LCD 업체인 하이디스를 지난 2003년 초 4천억원에 인수한 비오이그룹은 LCD 관련 기술인 LCD광시야각 분야 핵심 기술(AFFS) 등의 이전을 요구하다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자 법정관리를 신청해버렸다. 비오이하이디스는 지난 5월31일부터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서 비오이그룹의 지분을 모두 소각 처리했다. 채권단은 지난 9월 초 하이디스의 매각 공고를 냈고 국내 사업자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인수 의향서를 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오이가 하이디스에서 손을 떼기는 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2003년 이후 수년 동안 100명 이상의 하이디스 연구원들이 비오이에 파견되어 이미 상당한 수준의 관련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LCD 핵심 기술 중국으로 넘어갔다?
지난 2004년 상하이차그룹(SAIC)이 5천9백억원에 인수한 쌍용차 역시 관련 기술이 통째로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업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독자 기술이 없이 외국과의 합작 생산에 의해 양산차를 만드는 상하이차그룹이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자동차 업체로부터의 원천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대안으로 쌍용차를 선택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SAIC에 인수된 이후 쌍용차는 이렇다 할 신차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카이런의 경우는 이미 SAIC의 인수 이전에 개발이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기에 더욱 그렇다. 반면 계열사 간 연구소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중국 현지에 파견한 쌍용차 연구원들을 통해 각종 부품 등 기술이 새나갔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런 기술 유출에 대한 미묘한 신경전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사례가 바로 액토즈소프트와 위메이드, 샨다 간 3자 소송이다.
<미르의 전설>은 위메이드가 개발을 맡고, 액토즈소프트가 배포를 맡은 컴퓨터 게임 프로그램. 이 게임을 샨다가 수입해 중국에 서비스하면서 대박이 났다. 하지만 돈맛을 본 샨다가 <미르의 전설>과 ‘많이 비슷한’ <전기세계>를 독자 개발했다고 발표하고 서비스를 시작하자 위메이드와 액토즈소프트가 중국 현지에서 샨다를 상대로 표절 소송을 낸 것. 샨다가 2004년 12월 액토즈소프트를 9백60억원을 들여 쇼핑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액토즈소프트는 샨다와 한 가족이 된 뒤 소송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위메이드는 계속 표절 소송을 진행해왔다. 그러다 지난 2월 위메이드와 샨다 간에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미 샨다의 계열사가 된 액토즈소프트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위메이드 지분 40%를 1백87억원에 위메이드 쪽에 되팔기로 한 것. 이어 위메이드는 샨다를 통해 후속작 <창천>을 서비스한다고 발표했다. 샨다는 강화된 중국의 지적재산권 보호법을 위메이드의 자진 소송 취하로 피하고, 위메이드는 <창천>의 퍼블리싱 계약 대금으로 회사 지분을 되찾아오는 ‘대타협’을 이룬 것. 하지만 이에 대해 액토즈소프트의 소액 주주들이 위메이드의 지분을 헐값에 팔았다고 계약 당사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후폭풍이 끊이지 않았다. 기술 유출 차원을 떠나서 시장참여자들이 회사 자산을 헐값에 팔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최근 단기간의 기술 습득을 위해 기업 인수 대신 핵심 엔지니어 스카우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국내 기업의 기술 유출 방지에는 시장 참여자들의 자본주의적 이기심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