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정부는 국민의 적이다
  • 이덕로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07.10.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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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 ‘능력 있는 정부’ 내세우다 ‘거꾸로 개혁’… 국민의 바람은 ‘작고 일 잘하는 정부’

 
‘효율적인 행정’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 당시 정부 혁신의 기치 아래 의욕을 가지고 추진한 행정 개혁의 5대 목표 중 첫 번째였다. 정부는 이 ‘효율적인 행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과 중심의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능과 조직을 재설계하겠다고 했다. 특히 정부 조직의 재설계는 상시적으로 조직을 진단하고, 여기서 나타난 불필요한 정부 기능을 축소하거나, 가능한 한 지방과 민간으로 이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런 논리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서 지구촌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가들이 지향하는 ‘작은 정부’와 정확히 부합했다.
그러나 2007년 현재 정부는 ‘작은 정부’ 대신 ‘능력 있는 정부’를 표방한다는 논리와 ‘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효율성 개념이 아니라 결과 중심의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효율적인 행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부 조직의 재설계라는 방법을 공식적인 행정 개혁의 전략 목록에서 지웠다.
이렇게 논리를 바꾼 이면에는 정부 인력의 대폭적인 증가, 정부위원회의 증설, 그리고 인건비의 증가라는 사실들이 숨어 있다. 그동안 정부의 인력은 88만5천1백64명(2003년 2월)에서 95만9백68명(2007년 8월)으로 6만5천8백4명이 늘었다.
물론 이 숫자에는 철도청 공사화에 따라 공무원의 통계에서 배제된 인력 2만9천7백56명은 들어 있지 않다. 이렇게 늘어난 정부의 인력 규모는 문민정부에서 늘어난 정부 인력의 두 배에 달하고, 정부 인력이 감소한 국민의 정부에 비교한다면 네 배에 달한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여기에서 시작된다. 정부의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고, 이를 위한 인력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정부 규제도 늘어난다. 이미 정부의 각종 규제는 국민의 정부 시절에 그렇게 줄였어도 8천여 개가 넘는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제출한 2백87건의 규제 영향에 대한 분석 중에서 70% 안팎이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편익 같은 영향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규제를 통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니 규제를 위한 규제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정부의 수많은 규제가 역동적으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민간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영·미 국가에서 생존을 위해, 더 나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1980년대에 보여주었던 규제 개혁을 이 땅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정부 조직과 기능을 늘리기 때문에 늘어나는 정부 규제 만큼은 아닐지라도, 정부의 규제를 줄이는 것은 역으로 정부의 조직과 기능의 축소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 조직의 축소와 규제를 포함한 기능의 축소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도약하는 주춧돌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에 비하면 정부가 공무원의 수를 늘렸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로 지불해야 했던 공무원의 인건비가 2003년의 16조8천억원에서 2006년에는 20조4천억원으로 21.4%나 늘어났다는 사실은 차라리 덜 중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공무원 인건비, 2003년보다 4조원 가까이 늘어나 ‘금밥통’
정부위원회는 어떤가. 3백64개에서 17개가 늘어난 참여정부 초기는 차치하고라도, 정부에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많다는 여론이 빗발치던 2005년 말부터 35개를 더 만들어 지금은 4백16개가 되었다. 불과 1년 반 사이에 9%나 늘었다. 어디 늘었다는 사실만 문제이겠는가? 2005년도에 전체 회의를 열지 않았던 정부위원회가 전체 3백35개 중에 17.9%나 되고, 단 한번 개최한 위원회가 35.2%나 된다는 사실에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전체 회의 없이 하부 위원회를 열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본회의 없는 국회를 연상하게 한다.
공공 기관은 어떤가. 참여정부에서만 28개가 생겼고, 11개가 더 생길 예정이다. 중복 업무가 우려되는 복수의 공공기관이 늘어나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공공 기관이 늘어나니 이를 감독하기 위한 정부의 관리 조직도 자연스레 커진다는 사실이고, 이에 따라 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백98개 공공 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진 기획예산처의 정원이 2002년 말과 비교해볼 때 불과 5년 만에 61.5%나 늘어났다. 더욱이 기획예산처를 포함한 각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후를 대비해서 관련 있는 공공 기관의 임원으로 가기 위한 경쟁 대열에 뛰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또 다른 행정 문제인 것이다.
정보화기술 강국인 우리나라의 강점을 활용해서 전자정부를 구현하면 업무도 간소해지고 정부의 인력도 줄어들 것이라며 들인 예산이 지난 한 해만 1조원에 육박한다. 정부는 국민의 혈세로 구현한 전자정부의 수준이 유엔 회원국 중에서 이전에는 15위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아시아에서 1위이고 세계에서 5위라고 자랑한다.
그렇다면 업무가 간소화된 만큼 당연히 인력이 감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인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앞으로 정보기술 도입에 따라서 생겨나는 인력 절감 분야를 발굴해서 정부의 기능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주장을 하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점인가? 전자정부 구현을 위해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릴 때 이미 했던 주장이지 않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정부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고지순한 기준으로 삼았던 IMD의 정부 효율성 평가 순위가 2003년에는 37위, 2004년에는 36위, 그리고 2005년에는 31위가 되었다고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며 정부의 효율성이 향상된 증거라고 주장하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난해에는 그 순위가 47위로 떨어진 것을 두고 단순히 평가 지표가 바뀐 탓이라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정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국민의 행정 수요가 줄어들고 기능적으로 덜 중요한 분야를 찾아내서 새로 행정 수요가 생기는 분야로 전환하겠다는 주장 역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미 3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는 정부의 조직진단센터를 활용해서 불필요한 기능과 인력을 찾아내고 앞으로는 기능도 민간에 이양하고, 공사화도 하겠다는데 그러면 지금까지는 왜 그렇게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정부의 기능과 인력을 자꾸 늘린 것인지를 먼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자신의 조직과 기능에 가장 애착이 강한 공무원들조차 현 정부에서 실현된 7개 분야의 혁신 성과 중에서 조직 관리 분야가 제일 미흡하다고 하겠는가.
국민건강보험이 지난 9월 밝힌 바에 따르면 이제 공무원의 평균 월급은 3백40만5천7백86원으로 일반 샐러리맨이 받는 2백40만1천4백84원보다 41%가 많다. 소득으로 평가한 삶의 질은 공무원, 샐러리맨, 그리고 자영업자 순이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시작된 크고 작은 수많은 민간 기업의 처절한 구조 조정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직장인들과 여기서도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어 무슨 장사라도 해야 했던 자영업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무원의 수입이 이들 세 집단 중에서 가장 많다는 사실에는 차라리 눈물이 날 지경이다. 철밥통이라 불리는 직업 안전성에 보수까지 많아지니 이제 ‘금밥통’이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물론 무조건 줄이고 없애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말 필요하다면 늘리고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절박한 것이라면 국민이 늘리고 만들자고 아우성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뚝심이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도 있는 사람들이다. 순종할 줄도 알지만 거세게 저항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역사가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공무원을 늘리고, 기구를 확장하는 이유가 민생의 안정과 대민 서비스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더 이상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이 시대가 요청하는,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고대하는 정부는 그저 ‘능력 있는 정부’도 아니고, ‘크고 능력 있는 정부’는 더더군다나 아닌, 바로 ‘작고 능력 있는 정부’‘작지만 일 잘하는 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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