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매달린 ‘이’들의 전쟁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11.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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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지지층, 박 전 대표 지지층과 겹쳐…이명박 표 잠식

 
자업자득. 어느새 20% 중반을 넘어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지지율은 이명박 후보를 비추는 오목거울이다. 50%를 넘는 높은 지지율에 취해 교만과 독선, 비타협으로 일관해온 이후보와 그 측근들에 대한 준열한 여론이 계량화된 결과이다. ‘BBK 김경준-이후보 낙마 우려’ ‘박근혜 왕따 등 비주류 거세’ ‘이재오-이방호 등 측근 발호’에 대한 가차 없는 민심의 외면이 ‘대쪽’ 이회창을 ‘쪽파’로 부활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전 총재는 운도 좋다. 이후보가 BBK 김경준 질곡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다면, 이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가 두 손 꼭 잡고 집권 도정에 나섰다면 그에게 기회가 있었을까. 단연코 아니다. 그가 올 봄부터 UCC를 준비하며 출마 기회를 노렸지만 입도 벙긋하지 못한 것은 끼어들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측 정인봉 변호사가 줄기차게 집적댔지만 이후보에게 찰과상을 입히는 데도 실패했다. 도곡동 땅 차명 의혹도 반창고 하나로 때웠다. 온갖 의혹속에서도 이후보가 당선되었고 지지율은 50%대로 껑충 뛰었다. 그 사이 이 전 총재와 부인 한인옥씨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경준씨가 곧 귀국한다. 범여권이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도 귀국·증언 운운하며 들썩이고 있다. 이후보가 BBK 주가 조작 사건에 개입되었다면 지지 후보를 교체하겠다고 여론도 벼르고 있다. 글로벌리서치 10월21일 조사에서 이후보에게 윤리적·도덕적 문제가 발생해도 ‘계속 지지하겠다’는 50.8%, ‘바꾸겠다’는 49.0%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하면 이후보 지지율은 34.0%로 폭락한다. 대권 3수에 나서는 이회창 전 총재의 얼굴이 상기될 만도 하다.

한나라당도 ‘이명박 기소 가능성’ 대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BBK를 “이명박 후보를 비비꼰 꽈배기”라고 표현했다. 그럴듯하다. 대선 문전에서 이후보를 꽈배기처럼 집요하게 비트는 의혹이 바로 BBK이다. BBK의 진로에 따라 이후보의 운명이 좌우되고, 이에 따라 이 전 총재,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진운도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통합신당은 BBK에 모든 것을 걸었다. 김경준씨 송환을 앞두고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분위기이다.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정성진 법무장관은 ‘이명박 소환’ 가능성을 시사했다. 2002년 대선 직전 터진 ‘김대중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넘겼던 당시의 검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국회에서는 연일 금감원, 수사기관, 은행 기밀 자료가 넘쳐난다.

 
급기야 ‘이명박 기소’ 가능성까지 나왔다. 통합신당 김종률 의원의 입을 통해서이다. 이후보가 (주)다스 주식을 친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 이름으로 차명 보유하면서 공직자윤리법상의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 규정을 위반했고, 이를 검찰이 수사해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이후보의 기소 가능성과 관련한 대비책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후보가 대선 등록 전 기소되면 긴급 전당대회를 열어 박 전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비상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청원 전 대표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11월8일 YTN 조사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호감도는 무려 64%나 나왔다. 이후보에 비해 약점도 적다. 훌륭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소’가 후보등록이 끝난 뒤인 11월26일 이후에 이루어지면 백약이 무효라는 사실이다. 이후보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등록했는데 기소되어 후보 자격이 박탈되면 한나라당 후보는 공백이 된다는 극단적인 가설이다. 바로 여기에 이회창 구원투수론이 자리한다. ‘스페어 후보’가 그 말이다.
이 전 총재는 ‘보수 진영의 대표’임을 자임했다. 보수이기는 이후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후보 유고시 대안이 되겠다는 것이다. ‘대북 정책’의 차이를 출마 이유로 내세웠지만, 다 핑계일 뿐이다. 그는 ‘유고’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경우, ‘후보 단일화’의 길도 열어놓았다. ‘양보’해도 그에게는 남는 장사이다. 결국 한나라당의 명운이 BBK와 김경준씨의 입에 걸린 형국이다.  모두 이명박 후보가 원인을 제공했다.
이후보에게 박 전 대표는 ‘있으나 없으나 그만’인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보 선출 후  50%대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자 박 전 대표를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공기가 자욱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서청원 전 대표 산행에 박 전 대표가 참석한 것과 관련해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경고한 것은 박 전 대표와 비주류 ‘거세’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부인했지만 ‘이명박 당선 후 신당 창당’은 ‘이명박 당’을 만들어 박근혜계를 축출하겠다는 야심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후보는 꿈쩍도 않았다. 박 전대표가 “오만하다”라고 분노했고, 이 전 최고위원 퇴진을 요구했지만 오불관언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졌다. 이회창 전 총재 출마 선언이 분위기를 확 뒤집었다. 이후보 지지율이 속락했다. 심지어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 손을 들어주면 지지율이 역전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보측은 이 전 최고위원을 2선으로 후퇴시키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이회창의 힘이 아니라 박근혜의 힘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에게는 아직 멀었다.
이회창 전 총재와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이 겹친다는 것은 상식이다. 11월7일 조선일보·TNS 조사는 이명박 37.9%, 이회창 24%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전 총재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나라당 경선 때 누가 승리하는 것이 좋았느냐’라고 물은 결과 62.8%가 박근혜 전 대표를 꼽았다. 이명박 후보 선호는 27.5%였다. “박근혜 없이 이회창 없다”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후보로서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40% 이상이 ‘이 전 총재 지지율이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박 전 대표 선택이 변수

이 전 총재 지지율이 24%까지 치솟은 것은 영남 여론에 힘입어서이다. 충청 여론이 호의적이라지만 비중이 영남만 못하다. 그런데 영남은 박 전 대표의 아성이다. 영남일보의 11월7일 조사 결과, 이 전 총재는 대구에서 37.4% 대 32.6%로 이후보를 눌렀다. 박 전 대표 지지표가 이 전 총재에게로 옮겨갔다는 증거이다. 경선 당시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 가운데 54.6%가 이 전 총재를, 24.0%가 이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게다가 한나라당 지지자의 43.6%가 ‘이후보는 불안한 후보’라고 대답한 수치도 있다.
조선일보는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를 지지하면 ‘이명박 33%, 이회창 29%’로 격차가 4%포인트로 좁혀진다는 조사 결과를 전했다. 내우외환이다. 조선일보는 칼럼을 통해 “CEO 출신 이후보가 박 전 대표를 일개 M&A 대상으로 간주하다 코가 빠졌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전 총재 지지율은 허상에 가깝다. 본인의 지지율이 아닌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라는 얘기이다. 박 전 대표는 쉽게 움직일 정치인이 아니다. 혹여 그녀가 “그분이 왜 출마하셨는지 모르겠다. 한나라당 후보로 정권 교체를 해야죠”라고 한마디만 해도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사상누각이 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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