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에 붙어 웃을까, 뭉쳐 싸울까
  • 왕성상 (wss4044@sisapress.com)
  • 승인 2007.11.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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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자사 브랜드 제품 내세운 가격 파괴 가속화…제조 업체들 “불공정 행위” 집단 반발 조짐

 
최근 이마트가 ‘가격 혁명’을 내세워 자사 브랜드(PL) 제품 위주로 펼치는 영업 전략이 제조·유통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파장은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긍정적인 면이다. 후발 업체들의 약진으로 시장 판도가 변하는 것은 물론 유통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마트와 손잡은 중소 업체들이 박리다매식 영업으로 세를 불려가면서 1, 2위의 선두 업체들도 제품 값을 현실화함에 따라 가격 거품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름난 회사 제품을 싸게 사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많다. 관행으로 굳어져왔던 제조사들의 유통 업체 ‘종속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이마트가 ‘갑’의 입장에서 ‘을’인 납품 업체들을 줄 세우면서 가격 결정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 피해는 제조·납품사에 돌아가고, 이를 못 견뎌 쓰러질 경우 피해는 소비자가 당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이마트의 가격 파괴 선언에 직격탄을 맞은 제조 업체들이 들고 나설 태세이다. 전국적으로 집단 반발 조짐을 보여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식품 및 생활용품 업계. 우월적 지위 남용에 따른 불공정 행위의 당사자로 이마트를 지목해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통 현장에서 PL 상품을 내세워 불공정 행위를 저지른다는 이유에서이다. 식품 회사 모임인 한국식품공업협회가 그 중심에 있다. 회원사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후속 조치를 강구 중이어서 파란이 예상된다. 이마트 PL 제품의 가격 동향과 PL 제품과 기존 제품 간의 진열 상태 비교, PL 상품 마케팅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대응 전략을 짜고 실행해나갈 방침이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2004년 대형 할인점들의 ‘최저가 보상제’와 같은 값에 두 개의 제품을 주는 ‘1+1마케팅’에 회원사들이 공동 대응했던 전례가 있다”라며 협회 차원의 반격이 곧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식품 회사들이 당장 문제 삼는 것은 제품 진열 방법. 고객들의 시선에서 10도 아래 쪽인 ‘골드 존’과 진열대 끝 모서리 공간인 ‘엔드 캡’에 이마트 PL 상품이 집중적으로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지점은 손님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으로, 물건을 많이 팔 수 있는 A급 장소를 이마트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반 제품들은 상대적으로 고객들의 눈길이 덜 가는 쪽에 진열되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이마트 PL 제품이 잘 팔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상품별 하루 판매량을 해당 납품 회사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공개한 것 또한 횡포라고 꼬집는다. 사세가 약하거나 제품력이 떨어지는 제품의 경우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이마트 광고 전단을 통한 위법도 제기되고 있다. 납품 업체 상품과 PL 제품 값을 비교해 전단 앞면에 싣는 것은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 식품 회사들의 주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이마트 PL 상품 전략에 강력 대응을 요구하는 회원사들의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그중에서도 브랜드력이 약한 지방 중소 식품 회사들의 목소리가 강하다”라고 전했다. 그는 “규모가 작은 회원사들은 PL 상품 제조사로 전락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라며 할인점들의 최저가 보상 제도 도입으로 시끄러웠던 3년 전보다 사태가 더 심각한 것 같다고 설명한다. 또 이렇게 가다가는 홈플러스, 롯데마트, 홈에버, 하나로클럽 등 다른 할인점들도 이마트의 영업 전략에 동조해 업계 전체가 생존 위협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PL 상품 제조사 되어도 경쟁력 상실 등 후유증 커”

식음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은 이마트의 PL 브랜드로 살아남든지, 아니면 이마트에 얼씬도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그렇잖아도 어려운 판국에 업계 전체가 수렁에 빠져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마트가 강자 논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것 같다. PL 상품 제조사로 전락하면 어쩔 수 없이 할인점에 기대게 되고 연구 개발과 투자에도 소홀해진다. 그 후유증으로 후속 제품 제조 불가→경쟁력 상실→할인점과의 계약 및 납품 중단→부도 및 도산으로 가는 시나리오가 불을 보듯 뻔하다”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식품공업협회는 회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올해 안에 공정거래위에 제소하는 문제를 결정짓고 이마트에도 항의할 예정이다. 또 세미나를 통한 업계 입장 전달은 물론 언론에도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또, 대형 할인점들이 이마트 PL 전략에의 대응책으로 납품사들을 압박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1969년 창립된 식품공업협회는 CJ, 농심, 롯데칠성음료, 대상,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 주로 가공 식품을 만드는 100여 사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식품위생법상의 법정 단체로 대정부 창구 및 업계 권익을 위한 곳이다.
제조·납품 회사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이마트측은 ‘무슨 소리냐’라며 펄쩍 뛰고 있다. 어디까지나 상생 차원의 전략이지 중소기업 죽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세계 이마트 부문의 한 관계자는 “PL 제품을 알리는 행사 과정에서 진열대 배치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행사 테마가 수시로 바뀌므로 결코 특정 업체를 홀대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력은 없지만 기술과 품질이 좋은 중소기업들에게는 이마트 PL 제품 납품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라고 밝혔다. 이마트 협력 업체들은 주로 업계 3∼4위 회사들로 이마트 유통망이 더해지면 선두와의 격차를 빠른 시일 내에 좁히거나 1위로 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마트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제조·납품사 사람들은 없다. 힘 있는 갑의 입장에서 그냥 하는 말쯤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다. 이마트 경영진은 가격 파괴 선언 전부터 가공 식품 및 일반 생활 용품 업체 등의 반발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마트 담당자는 “국내 브랜드 상품들과 동반자적 관계이지만 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PL 제품을 늘려야 하는 만큼 가공 식품이나 생활 용품 업체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다.
협회, 조합 등을 중심으로 한 제조·납품사들의 집단 대응이 초읽기에 들어가 있고 이마트 역시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도 양쪽의 목소리와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필요하면 (이마트 등을) 조사할 수도 있다. 곧 대형 유통 업체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밀리면 죽는다’는 제조·납품사와 ‘해볼 테면 한번 해보라’는 이마트의 다음 카드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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