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설명회가 ‘부패 멍석’ 깔았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7.11.19 14: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목고와 입시 학원 ‘검은 공생’ 밀착 취재 / 연례 설명회에서 공공연히 금품 오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대학학원 주변에는 각종 입시·보습학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특목고 전문 학원을 강조하는 간판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입시 비리의 한 축인 목동 종로엠학원도 이곳 학원가에 위치하고 있다.
목동 종로엠학원은 일명 ‘족집게 학원’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1997년 개원 당시 수강생이 6백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학원으로 성장했다.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수강생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학원 1층에는 ‘특목고 합격 전용관’을 두어 엘리트 양성 학원으로 특화했다. 그러나 시험 문제 유출 비리가 터지면서 특목고 합격 전용관에는 철제 문이 굳게 내려져 있었다. 특목고 최다 합격률을 자랑하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목동 종로엠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에게 이번 입시 비리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목동 인근 중학교에 다닌다는 이 아무개양(15)은 “어른들의 탐욕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짓밟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학교의 정 아무개양(15)은 “학교와 학원 간에 입시 정보를 교류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퍼져 있다. 이번에 종로엠학원은 재수 없게 걸려든 것이다. 학생들이나 부모들이 특목고 합격생이 많은 학원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김포외고는 특목고 사이에서 ‘다크호스’로 통한다. 지난해부터 신입생을 받은 신생 학교인데도 전국 외고 중 주목도가 가장 높았다. 2008학년도 경기 지역 외고 가운데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다. 1백84명 모집에 2천4백44명이 지원해 13.2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김포외고는 지원자가 급증하면서 올해 전형료(특별전형료 포함)만 1억35만5천원(4천15명×2만5천원)의 수익을 얻었다.
2008년도 일반 전형에서 김포외고에 가장 많은 합격생을 배출한 학원은 다름 아닌 목동 종로엠학원이다. 종로엠학원에서 김포외고에 지원한 수험생 1백54명 중 47명이 합격했다. 4명 중 1명꼴로 합격한 것이다. 종로엠학원이 김포외고 입시의 적중률이 높은 족집게 학원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포외고와 종로엠학원은 시험지 유출 의혹이 터지자 막는 데에만 급급했다. 각각 사과문을 발표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유출 당사자인 이 아무개 입학홍보부장(51)와 곽 아무개 학원장(42)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 학교나 학원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일부 교사들, 학원 개최 설명회에도 나가 사례비 챙겨

그러나 교사 한 사람이나 학원 원장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김포외고 시험 문제 유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특목고 학원과 특목고는 오래전부터 공생 관계를 맺어왔다. <시사저널>이 만난 교육계와 학원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고 강조한다. 김포외고와 목동 종로엠학원의 문제는 곪았던 상처 하나가 터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목고가 명문대 입시의 관문으로 변질되면서 학교와 학원 간의 유착 관계는 더욱 확대되었다. 자녀들을 명문대로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의 욕심까지 겹쳐지면서 입시 비리가 발생하고 있다.
대다수 특목고와 학원은 먹이사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학교와 학원은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관계를 형성해왔다. 여기에 ‘돈’과 ‘명성’이 결부되면서 ‘검은 커넥션’으로 이어졌다. 외고의 시험 문제 유출은 수년에 걸쳐 관행적으로 이어져왔던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특목고 전문 학원들의 건물 외벽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린다. 그해 특목고 합격자들의 이름과 학교, 인물 사진까지 공개한다. 특목고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학원인 것처럼 홍보해서 수강생을 더 끌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수의 유명 외고 합격자를 배출하는 것은 학원으로서는 명성과 수익을 올리는 지름길이다. 또 학원마다 높은 적중률을 자랑한다. 특목고 입시 문제와 비교해서 동일하거나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많은 경우 ‘족집게 학원’이라는 입소문이 퍼진다. 족집게 학원에는 수강생과 학부모들만 몰리는 것이 아니다. 특목고에서도 갖가지 명목으로 학원과 줄을 대려고 한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떤 외고는 어떤 학원이 전문이다”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다. 실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외고를 검색하면 해당 학교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볼 수 있다. 해당 외고의 전문 학원, 강사, 특징, 합격률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또 “특목고에 가려면 ○○학원을 가야 한다” “유명 족집게 선생은 ○○이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한 번 족집게 학원으로 이름이 알려지면 수강생이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로서는 지원 학생을 늘리고 경쟁률을 올려 학교의 명성을 손쉽게 높일 수 있고, 학원은 특목고 합격생을 많이 배출해 수강생을 늘릴 수 있다.
<시사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특목고와 전문 학원들의 연결고리는 ‘입학설명회’이다. 입학설명회는 각 외고와 학원들이 연례적으로 실시한다. 이곳에서 학교-학원-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마주한다. 설명회는 외고의 입학 실세들인 연구부장이나 교무부장 또는 입학홍보부장 등이 주도한다. 학교와 학원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입학설명회에 맞춰 학원은 해당 외고의 문제나 출제 유형을 알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외고는 전형요강 등을 알려주면서 학원생들의 지원을 유도한다. 학교와 학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다음에 학교와 학원을 연결하는 것은 돈이다. 입학설명회에 나온 교사들에게 학원은 금전 공세를 하며 호감을 얻는다. 공식적으로 주는 강사료는 보통 20만~50만원 사이이다. 하지만 대다수 학원들은 비공식적인 거마비를 따로 챙겨준다. 돈의 액수에 따라 강사로 초빙 받은 교사로부터 얻는 호감이 달라진다. 호감도는 바로 친밀도와 연결된다.
외고 입학담당 교사들에게 입학설명회는 또 다른 수입원이다. 학교가 주최하는 설명회 외에 학원에서 주최하는 설명회는 사례비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거마비를 많이 챙겨주는 학교의 설명회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심하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한 특목고 전문 학원 입학담당 직원인 김 아무개씨는 “우리가 하는 일은 특목고 교사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문제나 출제 유형을 알아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생들을 끌어오는 역할이다. 입학설명회 등을 통해 안면이 있는 특목고 교사들과는 꾸준하게 친분을 유지해야 한다. 식사 대접을 하거나 교통비 등을 주면서 호감을 얻는다. 그렇게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정보가 오고 간다”라고 말했다.
입학 경쟁률을 높이기 위해 안면을 익힌 학원측 관계자에게 입시 문제를 슬쩍 흘려주기도 한다. 경쟁률이 높으면 아무래도 좋은 학생이 몰리게 되고, 명문 외고로 이름을 얻기 때문이다.
입학 담당 학원 직원들이 입시 브로커로 나서기도 한다. 입시 브로커들은 자신들이 쌓은 외고 인맥을 통해 문제나 출제 유형을 알아낸 뒤 학원과 학부모들을 접촉해 흥정을 한다. 한 인터넷 카페에 특목고 학원 직원이라고 밝힌 김 아무개씨는 “문제당 5백~1천만원까지 거래가 성사된다”라고 밝혔다.
대형 학원 강사로의 전직을 희망하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원과 유착 관계를 맺기도 한다. 고수익을 올리는 학원 강사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풍속도이다. 특히 입시의 주요 교과목인 국어·영어·수학 분야의 교사들은 누구나 ‘고수익 학원 강사’를 꿈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학원측과 긴밀하게 유착되고, 교사들 또한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일부 교사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문제당 수백만원에 거래” 소문도

올해로 학원 강사 생활 10년차인 김 아무개씨(여·36)는 “학원은 철저하게 능력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강사 개인이 1인 사업자와 마찬가지이다. 학벌이 괜찮고 강의 실력이 있는 교사들은 학원으로 이직을 희망하고 있다. 교사 경력이 있으면 그만큼 프리미엄도 높다. 교사 출신 강사들의 월급은 현직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라고 말했다.
학원가에는 특목고 학원의 성공 요건을 세 가지로 보고 있다. 문제 적중률, 특목고 합격률 그리고 유명 강사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학원의 이름이 금방 알려지기 때문이다. 한 문제당 수백만원까지 주고 거래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김포외고와 목동 종로엠학원은 문제의 적중률과 특목고의 합격률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아무개 김포외고 입학홍보부장과 곽 아무개 목동 종로엠학원 원장도 이런 관계로 친분을 유지해왔다. 이 아무개 부장은 또 김포외고 교복납품업자에게도 시험지를 유출해 그의 딸이 합격하기도 했다. 외고-학원-학부모의 커넥션이 형성되어왔던 것이다.
김포외고는 학교를 홍보한다는 명목으로 학원을 돌며 입학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특목고 학원들과 유대 관계를 가져왔다. 이는 다른 외고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학원을 순회하며 입학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사와 학원 강사들 간 인맥이 형성되면서 유착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조가 공개한 김포외고 ‘입학설명회’ 동영상은 특목고의 변칙 운영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동영상에는 시험 문제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이 아무개 입학홍보 부장이 학부모들에게 김포외고를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정규 수업 시간에 ‘위장 시간표’까지 운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부장이 밝힌 위장 시간표의 편법 운영은 시간표와 수업이 따로따로라는 것이다. 그는 “2학년 1반은 월요일 1교시가 정치, 2반은 화학이라고 치자. 시간표를 그렇게 짠다. 이과에 진학할 아이들은 다른 데로 가서 화학 수업을 받는다. 시간표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문과 아이들은 정치만 네 시간을 받게 되고, 이과는 화학만 네 시간 하게 된다. 한 학기에 (진도를) 떼게 될 것을 반 학기에 떼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동영상을 통해 보면 김포외고의 시간표 편법 운영과 교육 과정의 변칙을 알 수 있다. 또한 학원이 외고의 실질적인 학생 공급처이며 학원과 유착해 입학생 관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고가 학원과 동업하고 있고 입시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 ㅎ외고가 유학반을 편법 운영하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외고도 입학설명회 등을 통해 학원과의 유착 관계를 맺어 왔다. 지난해 4월14일 서울ㄷ외고는 유명 학원장 100명을 학교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ㄷ외고가 출제했던 이전 해의 시험 문제지를 빼주었다. 이날 ㄷ외고 교무부장은 “학원장님들이 의견을 적어주시면 올해 입시에 적극 반영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학교는 기관 경고를 받았다. 앞서 경기 ㅊ국제중은 2005년 10월7일 학원 원장들을 초청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입시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수도권 외고의 교감과 연구부장 등이 참석해 강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25일에도 ㅊ국제중 교감은 학원에서 설명회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포외고 설립자인 전병두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고 교사와 학원의 지나친 밀착 관계가 문제이다. 학원을 돌며 입학설명회를 하는데 그건 외고의 오랜 관행이다. 그것을 완전히 없애겠다. 학원과 교사의 밀접한 관계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외고와 학원 간의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외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진화 위원장은 “외고 관계자가 학원 입시설명회에 참석하거나 반대로 사설 학원에 부탁해 입시설명회를 여는 외고는 비일비재하다. 외고 교사가 사설 학원이 여는 외고 대비 경시대회의 출제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학원과 외고의 공생·유착 관계는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학교 실세와 학원 간의 거대한 커넥션은 철저한 감사나 수사를 하면 곧 드러난다. 시험지를 유출한 김포외고에 대해서는 특목고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번 김포외고 시험 문제 유출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학생이다. 어떤 방안이 나오든지 학생들과 학부모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또 지금과 같은 특목고와 학원의 먹이사슬이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김포외고 사태는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교사 단체나 학부모 단체는 이번 기회에 특목고에 대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목고가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명문대 입학을 위한 입시 기관으로 변질되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 강남 지역의 일부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특목고 진학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