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맷돌 소리’를 잡아라
  • 박관수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치과 조교수) ()
  • 승인 2007.11.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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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골이보다 더 나쁜 이갈이, 안면 근육 피로가 원인…보정물 끼고 자면 ‘뚝’

 
“뿌드득 뿌드득” 이를 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주변에서 이를 간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더라도 자신이 이를 가는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맷돌을 돌릴 때 돌과 돌이 마찰하는 소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가족 중에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이 있어 이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갈이를 하는 사람은 코골이를 하는 사람보다는 적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되는 일이 적지만 그 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전율이 일어난다거나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필자가 치과 담당 군의관으로 군부대에 근무할 때 이갈이가 심해서 같은 내무반에 근무하는 전우들의 숙면을 방해해 문제가 된 일도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렇듯 이갈이는 주변 사람, 특히 함께 생활하는 가족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 해악이 널리 알려져 있는 코골이처럼 적극적인 치료를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갈이를 하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별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갈이의 원인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해왔지만 몇 가지 원인이 추정될 뿐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치아의 교합(맞물림 상태) 이상, 신경정신과적 이상, 중추신경계의 이상 등이다. 이 중에서도 신경정신과적 이상이나 중추 신경계의 이상이 더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스트레스나 활동 중의 잦은 긴장감으로 인한 안면 근육의 피로 등이다. 어린 시절에는 좀더 흔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른이 되면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치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는 때때로 이를 갈아서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이를 갈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어릴 때 일시적으로 겪는 이갈이는 별다른 해가 없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거나 어른이 되어서 새로 생긴 이갈이는 구강 건강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갈이가 구강 건강에 미칠 수 있는 해로움을 하나씩 알게 되면 예방이나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될 것이다.
이갈이의 가장 큰 해로움은 치아의 직접적인 손상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라면 한번 힘을 세게 주어 이를 갈아보기 바란다. 옆 사람에게 크게 들릴 만큼 이가는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아무리 힘을 주어도 그 정도로 이를 가는 소리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온몸의 긴장을 풀고 깊이 잠들어 있는 야간에 이 가는 소리는 옆에서 자는 사람, 심지어 옆방에서 자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난다. 얼마나 강한 힘으로 이를 가는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사람의 근육이 가진 힘은 무의식중에 더 세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렇게 강한 힘으로 이를 갈면 몸에서 가장 단단한 구조를 가진 치아라지만 조금씩 닳게 된다. 보통 사람은 음식을 평생 씹어 먹고 살기 때문에 50~60대의 장년층에 이르면 치아의 씹는 면이 편평하게 닳아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난 지 얼마 안 되는 치아를 자세히 보면 표면이 올록볼록하게 생겼다. 음식과 부딪히면서 이런 부분이 모두 없어지고 편평해지는데 이갈이를 하는 사람은 그 속도가 가속되어 30~40대 중년층만 되어도 훨씬 많이 닳아진 치아 표면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이가 닳는 현상이 계속되면 치아의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진다. 치아가 많이 닳아 없어지면 제일 먼저 이가 시린 증상을 느끼게 된다. 약간의 시림은 참을 수도 있겠지만 심해지면 신경 치료를 하고 이를 씌워주어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갈이 환자의 경우 대부분의 치아가 한꺼번에 닳아 있기 때문에 모든 치아를 신경 치료하고 씌워주어야 하는 상태로까지 진행될 수 있다. 시간적·심리적·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치아 길이가 짧아진 결과는 단순히 치아의 모양이 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얼굴이 짧아지면 더 늙어 보이는 현상까지 일으킬 수 있다. 치아의 길이가 짧아지면 이를 맞물리게 하는 데까지 턱을 더 깊이 다물어야 한다. 어금니 길이 2~3mm 정도 짧아진 것이 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만 더 깊이 다물어도 얼굴의 아래 부분이 짧아 보이고 입 주변의 주름이 늘어나서 나이 들어 보이는 현상이 발생한다.

치아 길이 짧아지며 입 주름 늘기도

치아에 미치는 손상 중에는 단순히 치아가 닳는 것 말고도 잇몸뼈에 과한 힘을 주어 치아의 배열이 나빠질 수 있다. 특히 잇몸병이 있는 사람은 잇몸뼈의 양이나 질이 나쁘기 때문에 더 잘 나타난다. 이렇게 나빠진 치아 배열은 잇몸병의 진행을 촉진시키고 진행된 잇몸병은 다시 치아의 배열을 나쁘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심지어는 이를 빼야 하는 상태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심한 이갈이가 생겨 이를 여러 개 빼야 하거나 이가 저절로 여러 개 빠진 환자를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더욱 나쁜 것은 이를 빼고 이를 새로 해넣으려 해도 이갈이가 다시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의치도 이갈이가 있으면 더 잘 닳는다. 최고의 치아 수복법이라고 하는 임플란트도 이갈이와 같은 강한 힘에는 그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
과도한 이갈이는 씹는 근육과 턱관절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턱을 움직이고 씹는 근육도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쉬어주어야 하는데 이갈이가 계속되면 밤에 쉬지 못해 피로가 쌓인다. 얼굴이 뻐근하면 온종일 피곤하게 느끼고 두통이 함께 올 수도 있다. 턱관절도 마찬가지로 과한 힘을 자꾸 받으면 관절의 운동을 보조하는 디스크의 변형이나 심지어는 턱관절을 이루는 뼈가 닳기도 한다.
이처럼 몇 가지 대표적인 문제점만을 보고도 이갈이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질환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치료법은 어떻게 될까. 앞서 이갈이의 원인이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갈이 자체를 없애는 치료법 또한 뚜렷하지 않다. 다만 이갈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예방해주는 치료법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어린 시절 일어나는 이갈이는 대개 일시적으로 일어나다가 저절로 없어진다. 그러나 저절로 사라지지 않고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되거나 어린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자주 이갈이 증상이 반복되면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맞닿지 않도록 치아에 끼우는 장치를 만들어 밤마다 끼우고 자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이를 갈고 싶어도 맞닿지 않으니 이를 갈 수가 없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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