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흘러들었나<행복한 눈물>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7.12.03 1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문제와 연관해 폭로한 고가의 회화 작품이 관련자들의 엇갈린 해명으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그림의 행방은?

<행복한 눈물>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지난 2002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7백16만 달러에 낙찰된 뒤 행방이 묘연했던 리히텐슈타인의 회화 작품 <행복한 눈물>이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 현장에서 나타났다.
지난 11월26일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 석상. 그는 이 자리에서 삼성이 조성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이용해 지난 2002~2003년 이건희 회장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홍관장의 사돈인 박현주 대상그룹 부회장, 홍관장의 올케인 신연균씨(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부인)가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다고 폭로했다. 그때 미술품 구입 대금으로 해외에 송금된 액수만 6백억원대에 이른다며 송금된 금액이 적혀 있는 관련 작품의 내역서를 공개했다.

홍라희 관장의 구입 여부에 관심 집중

 
내역서에 들어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행복한 눈물>이다. 김변호사는 기자회견에 앞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나는 이재용씨로부터 <행복한 눈물>이 이건희 회장 집 벽에 걸려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함께 내놓은  갤러리서미의 구매 리스트가 삼성그룹 또는 홍라희 관장의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이후 김변호사의 폭로에서 등장한 인물들의 해명이 엇갈리면서 <행복한 눈물>은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변호사는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 창구로 갤러리서미(관장 홍송원)를 지목했다. 홍관장이나 신세계 이명희 회장, 대상 박현주 부회장이 모두 “각 관련 그룹의 비자금을 이용해 미술품을 구입했고, 갤러리서미가 이 비자금으로 구입 대행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삼성측에서는 즉시 <행복한 눈물>을 제외하고 김변호사의 리스트에 있던 다른 미술품의 구매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하지만 <행복한 눈물>의 구매 경위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하는 해명을 해 의혹을 잔뜩 부풀렸다. 처음에는 “홍라희 관장이 개인 돈으로 사들였다”라고 했다가 다시 “이틀 동안 걸어놓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반납했다”라고 정정했다. 그러다 다음날인 11월27일 오전에는 “<행복한 눈물>을 산 적이 없다”라고 재차 정정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 이후 모습을 감추었던 갤러리서미의 홍송원 관장은 11월28일  “리스트에 올라 있는 작품 중 삼성에 판매한 것은 한 점도 없다. <베들레헴 병원>은 개인 고객에게 팔았고, <행복한 눈물>은 홍라희 관장에게 보여드렸지만 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라고 밝혔다.
삼성과 홍송원씨의 해명에서 일치하는 부분은 홍라희 관장이 <행복한 눈물>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홍관장이 이 작품을 사들였는지, 또 김변호사의 폭로대로 이건희 회장의 집에 작품을 걸어놓았는지는 진실을 가려야 할 사안이다.
홍라희 관장의 <행복한 눈물> 소장 여부와 실제 구매 여부가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대로 홍관장이 작품을 구매했다면 대금이 치러졌을 것이고, 그 대금의 출처 또한 조사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김변호사의 변호인인 이덕우 변호사는 “<행복한 눈물>을 사들이면서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아 외환관리법 위반이라든가 문제가 나왔다. 이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구매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실제 홍송원씨는 2003년에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김변호사 쪽에서는 당시 검찰이 삼성 일가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에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홍송원씨에게 1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재수사한다면 <행복한 눈물>의 최종 구매자가 과연 홍라희 관장인지, 구매 대금의 출처가 삼성이었는지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홍송원씨가 작품을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안 하겠다고 말을 바꾸며 혼선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 작품을 누가 보관해왔는지는 중요한 수사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서미, 2005년에 경영 실적 급반전

화랑가에서는 갤러리서미가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 창구로 이용되었다는 의혹에 대해 ‘그랬을 것이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이전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 창구는 가나아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1990년대 들어 홍 라희 관장의 취향대로 삼성가 컬렉션이 방향을 잡으면서 갤러리서미가 급부상하게 되었다는 것이 화랑가의 정설이다. 홍관장이 리히터나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1960~1970년대 서양 미니멀 아트의 컬렉션을 본격화하면서 급부상한 곳이 갤러리서미라는 것이다.
 갤러리서미는 화랑으로 시작했지만 청담동으로 옮겨간 이후 상류층의 가구나 홈인테리어 분야에 관여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홍송원씨는 ‘주식회사 갤러리서미’를 중심으로 ‘주식회사 서미앤투스’ ‘서미아트’ ‘원앤제이갤러리’ 등 일군의 미술그룹을 만들어냈다. 그림 매매 중개를 하는 갤러리서미가 핵심 업종이지만 자본금은 홈인테리어나 가구·식기류를 취급하는 서미앤투스가 훨씬 많다. 갤러리서미의 자본금은 3억원에 불과하나 서미앤투스는 46억원이다. 하지만 갤러리서미는 2002년 11월 설립 이후 2003년 2백82억4천여 만원 매출에 순이익만 4억7천5백57만원을 올렸다가 이듬해인 2004년에는 매출액이 반토막 나 2억여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실적이 나빴던 2004년은 홍송원씨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한참 검찰의 조사를 받던 시절이다.
그후 2005년과 2006년에는 각각 2백19억원, 2백87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특히 순이익은 2005년 2억7천만원에서 2006년 9억4천여 만원으로 급증했다. 자본금의 3배가 넘는 규모를 단기 순이익으로 올린 초우량 기업이 된 것이다.

삼성가와 갤러리서미의 관계는?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맞는다면 갤러리서미의 경영 실적이 2004년 악화되었다가 2005년 급반전한 배경에는 미술품 구매 창구로서 홍라희 관장과의 관계가 작용했다는 추론도 할 수 있다. 보통 경매를 거친 고가의 미술품은 이후 길게는 2~3년에 걸쳐 사후 정산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복한 눈물>이 낙찰된 시점이 2002년 11월이기 때문에 딜러에게 2005년에 커미션이 전달될 수 있다. 
서미앤투스나 갤러리서미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삼성가와의 돈독한 사이가 눈에 띈다. 
서미앤투스는 설립 직후인 2004년 8월 호텔신라로 본점을 이전했다가 두 달 만에 다시 청담동 본사로 이전했다. 또 갤러리서미의 본사로 이용되는 가회동 사옥에 대해서는 지난 2000년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녀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가 5억원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기도 했다. 갤러리서미 설립 이전 가회동 사옥을 지을 때 이명희 회장이 홍송원씨에게 금전적인 편의를 봐줌에 따라 그와 같은 법률적인 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작가가 1960년대 만화 주인공 같은 인물을 내세워 인쇄의 망점까지 확대해 그린 <행복한 눈물>은 2002년 경매에서 낙찰된 이후 5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한국의 재벌 비리 의혹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 흥미를 자아낸다. 홍송원씨가 굳이 공개하지 않는다 해도 <행복한 눈물>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과연 홍송원씨의 주장대로 홍라희 관장에게 보여주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홍관장이 구입해 지난 5년여 동안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사동 화랑가의 한 관계자는 “1백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작품을 5년 동안 딜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국내에서 이런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은 그래서 신빙성을 더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