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무용’, 무대 중앙으로 날다
  • 심정민 (무용평론가) ()
  • 승인 2007.12.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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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만쭈이 등 세계 무대에 두각…강수진 등 한국 무용수도 주목

20세기 내내 무용예술의 주도권을 양분했던 곳은 서유럽과 북미이다. 무용에서 ‘천재’ 혹은 ‘거장’이라는 칭호는 거의 그네들의 자치였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의 지각변동은 대단히 흥미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관점에서는 ‘무용의 변방국가’라 할 수 있는 곳에서부터 경이로운 비약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변동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계 춤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무용계가 불러들이는 해외 단체를 조망해보면 자연스럽게 그 변화 양상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2007년 하반기의 내한 공연들만 하더라도 이탈리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같이 과거에는 관심 대상 밖이었던 국가들의 무용이 풍성하게 소개되었다.

◆ 아프리카 무용, 유럽을 들썩이게 하다

 
아프리카 현대무용은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 대가의 반열에 오른 무용가를 배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무용 페스티벌이나 특집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센세이션에 가까운 반응을 얻어내고 있음은 확연하다.
국내의 세계무용축제에서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예술 무용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빈센트 만쭈이 무용단을 필두로 말리, 세네갈, 콩고에서 온 현대무용단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빈센트 만쭈이 무용단의 초청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빈센트 만쭈이는 지난 10월 열린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서 크게 주목되었다. <비어 있는 영혼>과 <존재의 터널〉, <숨쉬는 껍데기〉 등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그의 춤은 자유로운 놀이 형식을 통해 흑인의 영혼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빈센트 만쭈이는 아프리카 토속춤에서부터 서구의 발레와 현대무용, 인도 전통춤과 발리 민속춤, 거기에다가 중국의 태극권까지 망라하는 말 그대로 ‘아프로-퓨전’ 무용을 펼쳐보였다. 최근의 춤 예술이 기존의 동작 스타일을 해체하고 여러 분야의 움직임을 영입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빈센트 만쭈이의 무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양 무용가의 몸짓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 무용가의 몸짓과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특색을 보인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이러한 특질은 곧 많은 아프리카 무용가들의 개성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현대무용의 현재를 알고 싶다면 12월에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외교통상부가 주최하는 아프리카문화축전의 일환으로 12월20일 LIG 아트홀에서 카메론 페닉스무용단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들 역시 아프리카 춤의 정체성-이를테면 특유의 탄력과 리듬감 그리고 충동성-을 잃지 않으면서 그것을 서구적인 현대무용의 방식으로 그려낼 것이다.

◆ 다양한 문화 융합한 이스라엘 무용

지중해는 흔히 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의 10여 개 국가들로 둘러싸인 지중해 지역에는 서로 다른 독특한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오른편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은 최근 전세계 무용계로부터 대대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올해 9월과 10월에만 하더라도 성남국제무용제에서 키부츠 댄스컴퍼니가, 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인팔 핀토 & 압샬론 폴락 댄스컴퍼니가, 그리고 LG아트센터에서는 바체바 무용단이 초청 공연을 펼친 바 있다.
키부츠 댄스컴퍼니의 안무가 라미 비에르는 <태양이 닿는 곳에>에서 서유럽의 무용 양식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적인 율동성과 아시아적인 감수성까지 아우르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다양한 문화적 특색을 융합하는 방식은 움직임뿐만 아니라 장치나 의상, 음악으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이로써 몽환적이고 기묘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인팔 핀토 & 압샬론 폴락 댄스컴퍼니의 <Shaker>는 마치 크리스마스 시즌에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스노우볼 안의 정취를 옮겨놓은 듯하다. <Shaker>는 무용과 동화, 인형극, 서커스 그리고 연극의 경계를 넘다들며 환상의 세계를 꾸며놓고 있다. 그리고 여러 요소들을 엮어가는 과정에서 안무가와 무용수의 자연스러운 포용력은 돋보인다. 오하드 나하린이 이끄는 바체바 무용단은 <THREE>를 선보였다. 그들은 신체의 자연스러운 굴곡감을 허용하면서도 고도로 치밀하게 움직임을 구성해간다.
이스라엘 무용들은 언뜻 보기에 서유럽의 무용예술과 닮아 있는 듯하지만 다른 독창성을 내비친다. 그것은 각양각색의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에 위치한 무용가들이 유연한 포용력을 발휘하며 자기만의 예술적 개성과 스타일을 확립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탈리아 무용의 ‘고품격’ 쇄신

무용예술의 역사에서 이탈리아 무용가들의 기여는 상당하다. 특히 프랑스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발레의 발전 과정에서 이탈리아 무용가들의 업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탈리아 무용계는 오랜 세월 동안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최근 이러한 이상 현상을 쇄신시키는 무용단이 등장했는데 바로 마우로 비곤제띠가 이끄는 아떼르발레또이다.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과 세계무용축제의 공동 주최로 이루어진 아떼르발레또의 내한 공연은 지난 10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있었다. <바흐 예찬>이나 <로시니 카드>와 같은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아떼르발레또는 음악에 반응하는 고품격의 춤 오케스트라를 실현시킨다. 전자에서 음악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춤의 자태는 감각적이고 조형적이다. 무용수들은 각각 음의 입자들로 작용하면서 소리의 강약, 변화, 느낌, 파장까지도 정교하게 그려낸다. 무대를 압도하는 구도적 빼어남과 집단적 에너지는 깊은 인상으로 남겨진다. 후자에서는 강렬한 리듬에 응답하는 자유로운 춤의 활동성이 강조되어 있다. 춤의 전체적인 그림에서도 정돈된 촘촘함보다는 기이하고 추상적인 모양새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무용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오래도록 서유럽과 북미의 주도했던 무용예술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는 무용가(안무가와 무용수)들을 속속 배출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무용수들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높다. 국민적인 예술가 강수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무용수들은 탄탄한 기본기, 풍부한 표현력, 춤에 대한 열정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 무용계의 약진도 호조를 띠고 있는 것이다. 무용 변방의 화려한 반란은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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