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 ‘윈프리 바람’ 허풍인가, 태풍인가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12.1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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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 지지 연설 힘입어 ‘약진’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 여름 배럭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면서 오바마에게 한 마디 조크를 던졌다. “정치 헌금 몇 푼보다는 내 지지 선언이 더 효과가 있을 거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른 오바마 연방 상원의원(일리노이 주)은 요즘 미국 ‘TV의 퍼스트 레이디’ 윈프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윈프리의 조크는 그냥 조크가 아니었다.
후보 지명전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주 코커스와 뉴햄프셔 주 예비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12월 초 아이오와 주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뉴욕 주)을 28% 대 25%로 앞질렀다. 뉴햄프셔 주에서도 오바마가 약진하고 있다. 아이오와 주에서는 지난 10월 말까지만 해도 클린턴 후보가 49% 대 26%로 오바마를 압도적으로 앞섰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예비선거의 두 번째 관문이자 중대 전환점이 될 사우스 캐럴라이나 주 에서도 오바마(25%)가 클린턴(28%)과 백중세를 보일 정도가 되었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윈프리 바람’이라고 부른다. 오프라 윈프리가 12월 들어 오바마의 아이오와, 사우스 캐럴라이나 및 뉴햄프셔 주 유세에 잇달아 참석해 사람몰이, 표몰이를 해준 덕이다.
이같은 윈프리의 바람몰이에 미국 언론들은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우선 윈프리가 나타나는 오바마 유세장은 항상 최대 인파를 기록한다.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는 1만8천5백명이 몰렸고 시더 래피즈에서는 7천명, 뉴햄프셔의 맨체스터에서는 8천5백명 사우스 캐럴라이나 주 컬럼비아에서는 2만9천명을 기록했다. 이들 숫자는 해당 지역 언론들로부터 ‘지역 정치집회 사상 최대 인파’로 꼽혔다.

 

흑인 후보 유세장에 ‘백색 물결’…미국 언론도 놀라

미국 언론들이 놀라는 것은 이들 유세장에 모여든 인파 가운데 대다수가 백인이라는 점이다. 흑인 후보 선거 유세장에 어떻게 그처럼 많은 백인 청중이 몰려들 수 있느냐고 놀라는 것이다. 유세장에는 오바마의 아내 미셀 오바마가 먼저 연설을 한 뒤 “TV의 퍼스트 레이디, 오프라 윈프리를 소개합니다”라며 마이크를 넘기면 윈프리가 오바마 지지 연설을 했다. 그리고 오바마가 마지막 순서로 등장,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연상하게 하는 열정적인 유세를 펼쳤다. 이들 유세장 연단에 등장한 세 사람은 모두가 흑인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언은 “디모인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는데 그중 많은 청중이 백인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1900년도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 구두가게에서 흑인은 돈을 지불하고 구두를 사기 전까지는 자기 발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미리 신어볼 수도 없었다며 디모인에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술회했다.
윈프리 바람을 두고 미국 정치 분석가들은 물론 대학 교수 등 학계도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남가주 대학(USC)의 역사학 교수 스티븐 로스는 “내가 만약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유명 인사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면 단연코 그 대상은 오프라 윈프리”라고 단언했다. 로스 교수는 윈프리가 개인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를 융합하는 최선의 역할 모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로스 교수는 현재 영화 배우가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저술을 집필 중이다.
윈프리의 오바마 지원 유세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명한다. 힐러리 클린턴 진영에서는 윈프리 바람이 클린턴이 강세를 보인 흑인 지지표와 여성 지지표를 잠식하면서 지지율에 커다란 변동이 생긴 것에 위기감을 갖고 있다. 클린턴 진영은 유권자들이 윈프리에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윈프리 바람은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태풍이 아니라 찻잔 속의 돌풍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클린턴 진영은 윈프리 바람 재우기 작전으로 이번 아이오와 주 유세에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 바브라 스트라이젠드를 끌어들였다. 연예계 명사를 동원해 ‘윈프리 효과’를 누르겠다는 전략이다. 그리고 남편 빌 클린턴의 지원 유세를 강화하고 딸 첼시(27)와 친정어머니 로드햄 여사(88)를 동반했다. 윈프리가 결혼에 실패하고 자녀도 없으며 노인 가족도 없다는 점을 부각해 상대적으로 자신은 정상적이고 안정된 가정 출신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지지율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공감대 자극하는 윈프리의 능력이 오바마 지지도 끌어올려

오바마도 자신보다 윈프리의 인기도가 높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시인한다.
그러나 아이오와 주는 흑인이 전체 주 인구의 2%, 뉴햄프셔 주는 1%에 그쳐 절대 다수가 백인인 이들 주 유권자들이 내년 1월 초 코커스나 예비선거에서 과연 흑인인 오바마에게 표를 던질지는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프라바마(오프라+오바마) 효과’도 내년 정초가 되면 확실하게 판가름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윈프리 효과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 오프라 윈프리가 이번에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이나 의미는 적지 않다. 지금까지 수많은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직접 참여, 후보 지지 유세를 했지만 이번 윈프리 바람처럼 확실한 지각 변동을 만들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윈프리의 파괴력이 윈프리의 유명세 때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절대 다수 미국인들이 윈프리의 이름을 알고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윈프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거나 미모가 뛰어나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프라 윈프리의 인기는 미국민 절대 다수가 윈프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윈프리가 제작하는 TV 대담 프로 <오프라 윈프리 쇼>는 낮시간에 방영되며 매주 미국인 8천5백만명이 시청한다. 현 미국 TV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 시청률을 자랑한다. 이 프로는 삶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힘든 일에 부닥친 사람들을 출연자로 초대해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방청객과 함께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윈프리는 초대 출연자들이 자신의 가슴 아픈 얘기를 털어놓으면 함께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방청객도 함께 아픔을 나눈다. 프로가 진행되면서 출연자도 자신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숨겨둔 사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게 된다. 프로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도 윈프리의 이런 ‘공감대를 자극하는 능력’이 바로 오바마의 지지도를 끌어올린 주요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래서 ‘윈프리 효과’ 대신 ‘오프라 요인(O-Factor)’이라고 부른다.
오프라 윈프리는 1954년 미시시피 주에서 태어나 밀워키의 빈민굴에서 자랐다. 비참한 소녀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된 윈프리는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프로그램 진행으로 이후 30여년 동안 대중적 스타로 군림하며 미국 최고의 방송 진행자가 되었다. 방송인으로서의 성공에는 부와 명예도 함께 따랐다. 윈프리는 현재 재산 14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부자 서열 2백35위에 랭크되어 있다. 윈프리는 지난 100년간 미국 흑인 가운데 최고 부자로 기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포브스> 선정 부자 4백명’ 가운데 유일한 흑인이기도 하다.
윈프리는 잡지 발행인도 겸하고 있다. 그녀 소유의 ‘오프라 북 클럽’ 방송에서 소개하는 책은 미국에서 금방 베스트셀러로 떠오른다. 그녀는 지난 2004년부터 4년 연속 <타임>이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윈프리는 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 4천만 달러를 투입해 고아 등 버려진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윈프리는 은퇴하면 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 주변에서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보는 한국 언론인, 방송인이나 연예인과 윈프리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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