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받은 지구 ‘물의 대반란’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7.12.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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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2000년 이후 태풍·폭우 등 물난리 급증…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야

 
근래 들어 국제 기사에서 자주 접하는 자연 재해와 관련한 뉴스들은 매년 기억에 남을 만한 대참사를 전하고 있다. 2004년에 발생한 서남아시아 쓰나미는 사망 3만8백93명, 부상 1만5천2백56명, 실종 6천38명, 이재민 42만2백59명 등 막대한 인명 피해와 가옥 파손 13만5백39채, 어선 및 어항 파괴, 도로 파손, 농지 침수 등 약 1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2005년 미국을 강타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1천2백9명의 목숨을 빼앗고 약 1백48조원의 경제적인 피해를 입혔다. 국제 적십자사에 따르면 카트리나로 입은 피해액은 2005년 전체 재난 피해액의 78%를 차지할 정도였다.
대재앙 뒤에는 ‘지구 온난화’가 도사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산업화 진행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하면서 생겼다. 지난 11월 발간된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위원회)보고서는 지구 온난화가 초래된 이유로 지난 반세기 동안 인간이 소비하는 화석연료 때문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연 재해의 근본적 원인이 인간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도 지구 온난화의 결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자들은 2007년 9월25일 “2005년의 지구 표면 온도가 과거 1만2천년 동안 가장 높았다”라고 발표했다. 제임스 한센 박사 등에 의하면 지표나 해면의 연간 온도는 20세기 동안 0.8℃ 상승했는데 이 중 1975년 이후의 상승분이 0.6℃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 즉 산업화가 활발히 진행 중인 지역에서 현저한 상승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재해 발생 건수 전년 대비 20% 증가, 사상 최고치 기록

특히 ‘물난리’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 재앙 중 대표적이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0.5℃ 상승하는 동안 동시기의 허리케인이나 사이클론의 규모는 1.5배에서 2배 정도 커졌다고 한다.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는 2007년 9월26일 ‘미국 국립 해양 대기청(NOAA)의 한 과학자가 지구 온난화에 의해서 허리케인이 강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려 하자 상부 기관의 당국자가 발표하지 않게 압력을 가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네이처>의 보도에 따르면 2007년 2월 NOAA에 소속되어 있는 7명의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는 허리케인을 촉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라는 성명안을 작성했다. 허리케인 시기인 6월 이전에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NOAA의 상급 부서인 상무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네이처>는 보도했다.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가 근본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추측이 뒤따랐다. 분명한 것은 지구 온난화와 과학적 인과 관계가 조금씩 맞아떨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MIT의 기상학자인 케리 엠마뉴엘은 NOAA의 연구 결과를 놓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면 온도(SST:sea surface temperatures) 상승이 허리케인에게 주는 영향은 종래 생각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에 의한 물난리는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 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은 지난 12월13일 발간한 ‘세계 재난 보고서(World Disasters Report)’에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자연 재해 발생 건수가 전년에 비해 약 20%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라고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의 재해 발생 건수는 4백27건으로 2004년보다 70%가 증가했다. 과거 10년간(1997~2006년)의 자연 재해 발생 건수는 그 이전 10년 동안(1987~1996년)에 비해 40%나 증가했고 자연 재해에 의한 사망자수는 2배가 늘어나 1백20만명이 되었다. 게다가 동시기의 자연 재해에 의한 이재민 수는 2억3천만명에서 2억7천만명으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이런 수치에 대해 “기후 변동에 따르는 재해가 증가하는 근래의 경향과 일치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주로 물난리는 빈민층이 많은 남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에 집중되었다. 특히 폭우 피해가 극심했다. 지난 6월 인도와 방글라데시, 네팔 등지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해 1천여 명이 숨졌고 3천만여 명이 재산 피해를 입었다. 중국에서도 중남부에 집중호우가 내려 5백여 명이 사망하고 약 1억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특히 지난 11월에 방글라데시에서 또다시 발생한 집중호우로 인해 1만여 명(적십자사 추산)이 사망하고, 6백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생기는 ‘해수면의 상승’도 심각한 문제이다. 저지대 국가에게는 생존의 위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수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최고점 해발이 4m에 불과한데 이미 국토의 상당 부분이 높아진 해수면 때문에 물에 잠긴 상태이다. 하지만 투발루만 이런 문제에 직면한 것은 아니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는 지난 8월 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걱정을 하나 털어놓았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상승되면 싱가포르가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싱가포르의 중심지와 항만, 창이공항 등 많은 지역은 해발 2m 이내의 저지대에 위치해 있다. 리콴유 전 총리는 “해수면 상승에 맞서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2백km 해안을 두르는 제방이었다. 이 방안의 실현을 위해 네덜란드 제방 업체인 델프트에 컨설팅 의뢰를 해놓은 상태였다. 싱가포르는 이처럼 온난화에 따른 바다 수위 상승을 염려해 이미 근본적인 처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도 ‘기후 변화 선도국’ 오명 벗기 위해 애써야

한반도의 물난리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미 온난화의 징조는 보인다. 1912년부터 1970년까지 약 59년 동안 연평균 기온은 0.5℃ 상승했다. 하지만 1971년부터 2005년까지 약 35년 동안은 기온이 1℃ 정도 상승했다. 그 덕분에 우리의 겨울은 줄고 여름은 늘었다. 기상청은 “1920년과 2000년을 비교해보면 겨울은 한 달 정도 짧아졌고 여름은 한 달 정도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2006년 겨울 서울의 평균기온은 영상 1.87℃를 기록했다. 평년보다 2.74℃가 높은 수준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이번 겨울은 왜 이리 안 추운 거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여름에는 폭우가 기승을 부렸다. 2007년 여름 강수량은 역대 최고치에 가까웠다. 서울은 2007년 장마 기간에 무려 9백58.4mm의 비가 내렸는데 이는 1966년 1천31.5mm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강수량이다.
초대형 태풍은 물난리의 결정타이다. 지난 여름에는 제11호 태풍 나리가 1923년 이래 하루 최고 강수량인 420mm라는 ‘물폭탄’을 쏟아부어 그 상처가 아직도 제주도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들어 태풍 세력이 이전보다 커졌다. 문일주 제주대 해양과학부 교수는 ‘지구 온난화와 수퍼 태풍’이라는 연구에서 태풍 강도를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로 해수면 온도 상승을 꼽았다. 조사 결과 한반도 주변의 해수면 온도도 매년 0.02℃씩 상승해 1970년보다 0.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9월에 발생하는 가을 태풍의 경우 북쪽에서 찬 공기가 발달해 남쪽으로 자주 내려오면서 남하한 찬 공기가 고온다습한 태풍과 부딪쳐 많은 양의 비구름을 만들어 한반도 전역에 호우를 뿌리고 있다. 강해지는 바람과 비 때문에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처럼 기후 이변으로 인해 인간의 피해는 국내외에 걸쳐 진행 중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책임도 매우 크다. 한국은 경제 규모 세계 10위, 온실가스 배출량 9위, 석유 소비량 6위의 국가이다. 1990~2004년 세계 주요 국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에서는 104%를 기록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기후 변화의 선도국이지만 오히려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그동안 온실가스 의무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왔다. 기후변화협약 회의의 “자발적으로 참여해달라”라는 요구에도 “우리의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라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왔다. 녹색연합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정부단의 이런 협상 태도를 두고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를 두고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뒤에 숨어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2007년 12월3일부터 14일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발리 로드맵’이 만들어지면서 2009년까지 ‘2013년 이후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 되는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2월18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주재로 기후변화대책위원회를 개최해 기후 변화에 관한 제4차 종합 대책을 심의·확정했다. 이번 종합 대책에는 2013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저탄소 에너지 공급 확대, 원자력 발전 확대, 공공 기관 등의 에너지 소비량 절약, 환경친화형 신산업 분야 육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공범이면서 공동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던 오명을 이번에는 벗을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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