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쓴 식용유 장삿속에 춤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1.0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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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유 등 트랜스 지방 없다며 소비자 현혹…대두유와 차이 없고 값만 비싸

 
지난 1월2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농협유통 하나로클럽의 식용유 판매 코너. 수십 종류의 식용유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 고객들은 이 제품 저 제품을 손에 들고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한 고객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포도씨유를 구입했고, 또 다른 고객은 올리브유를 골랐다. 포도씨유와 올리브유는 콩에서 짜낸 기름인 대두유에 비해 3~4배 비싼 고급 식용유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고급 식용유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광고를 보고 좋을 것 같아서 비싸도 올리브유를 고른다. 특히 트랜스 지방이 문제라고 하니까…”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제품들의 차이점은 잘 모르면서 대두유보다는 올리브유와 같은 고급 식용유가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산다는 것이다. 농협유통 식품·유지 담당 이진선 과장도 “소비자들이 고급 식용유와 대두유의 차이점을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꽤 많다. 샐러드용과 튀김용 식용유를 구분하지 않고 쓴다. 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필요한 때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대두유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식용유 하나 고르는 데도 이것저것 따져야 할 정도로 종류가 많다. 시중에는 유명 업체들이 선보인 식용유 종류만 여덟 가지가 넘는다. 브랜드로 따지면 수십 가지도 넘는다. 몇 년 전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웰빙 바람이 불면서 소비자들은 장바구니에 대두유 대신 고급 식용유를 넣기 시작했다. 농협유통  이과장은 “대두유보다 올리브유 소비가 대세이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11억원어치가 팔렸다. 다른 제품에 비해 판매량이 많은 편이다. 또 포도씨유가 점차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최근 트렌드의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식용유 업체 마케팅에 소비자만 놀아나는 꼴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용유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3천억원을 넘겼다. 이 중 3분의 2가 고급 식용유 시장이다. 2002년 1백9억원이던 고급 식용유 시장은 2006년 2천4백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올리브유가 1천억원으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포도씨유도 8백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에 고무된 업체들은 고급 식용유 마케팅에 전력을 쏟고 있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CJ제일제당은 올리브유·포도씨유·카놀라유(유채씨 기름)·해바라기씨유 등 고급 식용유를 잇달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 회사는 ‘백설’에서 ‘백설유’로 식용유 브랜드까지 바꾸고 ‘트랜스 지방 안심 캠페인’을 벌이는 등 고급 식용유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사조O&F(옛 신동방)·오뚜기·대상·동원F&B 등도 고급 식용유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대두유 시장은 7백억원 규모에 머무른 반면 고급 식용유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고급 식용유에는 트랜스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없고 우리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건강에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식품연구원 식품융·복합연구본부 윤석후 책임연구원은 “본래 우리가 사용하는 식물성 식용유에는 트랜스 지방이 없다. 다 아는 사실을 업체들이 마케팅에 활용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 문은숙 기획처장도 “식물성 식용유에는 콜레스테롤과 트랜스 지방이 없다. 업체들은 고급 식용유에 트랜스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과거 우리가 사용했던 대두유에는 트랜스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이 있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고 있다. 업체들은 고급 식용유 시장을 만들어 매출을 올리려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대두유와 올리브유에는 모두 트랜스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없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마치 대두유보다 올리브유 등 고급 식용유가 월등히 좋은 제품인 양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은 국내 식용유 시장에서 일대 전환점이었다. 대두유가 시장을 이끌던 당시를 전후해서 미국발 ‘트랜스 지방 유해’ 소식이 국내 시장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기름은 동물성과 식물성으로 구분된다. 동물성 기름과 달리 식물성 기름은 불포화지방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몸에 더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버터 대신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마가린을 섭취하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일부 가공 식품에서 좋지 않은 성분, 즉 트랜스 지방이 검출된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식물성 기름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런 인식은 그전까지 우리 식탁을 지켜왔던 대두유로 화살을 돌리게 했다. 마치 대두유에 트랜스 지방이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트랜스 지방은 과자나 빵의 바삭거림과 부드러움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쇼트닝과 같은 기름에 40~50% 함유되어 있다. 또 라면을 가공할 때 사용하는 팜유에도 50%가량의 트랜스 지방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고 라면을 트랜스 지방이 없는 식물성 기름으로 가공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식물성 기름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산화, 즉 변하기 쉬운 식품이므로 라면에 사용할 경우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질 우려가 있다. 아무튼 업체용 기름의 트랜스 지방 불똥이 식용유로 튄 것이다.

미국발 트랜스 지방 소동으로 고급 식용유 바람

업체들은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다. 2005년 5월 치킨전문점 BBQ를 운영하고 있는 제너시스가 가맹점에서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를 조리에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제너시스는 “비만의 원인 중 하나인 트랜스 지방을 없애기 위해 올리브유 가운데서도 최상 등급인 스페인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1천7백50여 개 모든 가맹점에서 사용하기로 했다”라고 했다. 또 “맛과 영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제품은 유해한 트랜스 지방으로 자유로운 올리브유를 사용한 고품격 치킨이 될 것이다”라고 광고했다. 당시 식용유보다 6배 이상 비싼 올리브유를 사용하면서 BBQ 프라이드 치킨 가격은 1만1천원에서 1만3천원으로 인상되었다. 이 마케팅은 적중했고 매출은 30% 이상 증가했다.
다른 식품 업체들도 식용유 대신 올리브유를 사용한 제품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동원F&B는 올리브유·포도씨유·해바라기씨유를 함유한 참치 캔과 올리브유를 발라 구운 김 제품을 선보였다. 오뚜기와 농심 등도 각종 재료를 올리브유로 볶아 넣은 카레·짜장·라면·과자 제품을 판매했다. 던킨도너츠도 지난해부터 트랜스 지방 제로화에 도전장을 냈고, 삼립식품과 파리바게뜨 등도 그 뒤를 따랐다. 호텔들도 지난해부터 트랜스 지방이 낮은 카놀라유·포도씨유로 기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은 트랜스 지방 제로화를 위해 기존에 사용하던 기름 대신 트랜스 지방이 적은 카놀라유로 대체하기로 했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도 트랜스 지방 함량을 0.5% 미만으로 낮춘 CJ제일제당의 ‘트랜스 케어’로 바꾸었다.
고급 식용유의 대명사로 꼽히는 올리브유가 인기를 끈 또 다른 이유는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용유 제조사들도 이 점을 강조한 마케팅을 펼쳐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충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이기택 교수도 “식용유 업체들은 올리브유의 성분을 광고하는데, 이 성분은 다른 식품에도 있기 때문에 굳이 올리브유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부침 요리처럼 적은 양의 기름으로 살짝 요리하는 곳에는 사용할 수 있지만 감자튀김과 같은 튀김 요리에는 오히려 올리브유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사실 올리브유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샐러드 등에 첨가해서 섭취하는 향료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참기름과 유사한 기름이다. 올리브유는 발연점(1백80℃)이 낮아 튀김이나 부침 요리에는 부적합하다. 발연점이란 기름을 가열할 때 연기가 발생하기 시작하는 온도를 말한다. 올리브유로 튀김 요리를 하면 빨리 연기가 발생하는 이유이다. 또 올리브유 특유의 향은 한식 요리에 어울리지 않아 최근에는 올리브유 대신 포도씨유가 인기를 얻고 있다. 발연점도 2백30℃로 높아 튀김이나 부침 요리에 좋기 때문이다. 가격도 올리브유에 비해 싸다.
전문가들 “효능이나 영양가 큰 차이 없어”
유채씨 기름인 카놀라유도 발연점이 2백38℃로 높아 튀김, 부침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카놀라유는 현재 캐나다에서는 식물성 기름의 80%, 일본에서 50%가 사용될 정도로 대표적인 재료로 자리 잡았다. 해바라기씨유도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포화지방산 함량이 낮은 제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고급 식용유에 대해 “성분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업체들의 광고처럼 효능이나 영양가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식품연구원 윤책임연구원은 “예를 들어 해바라기씨유는 지방산 구성에서 다른 식용유와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나 특별히 좋은 성분이 있는 것도, 나쁜 성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대두유의 자리를 차지한 고급 식용유들. 그러나 성분과 효능은 업체들의 광고만큼 ‘화려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과거에 많이 사용해온 대두유·옥수수유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외국산 기름을 수입하기 때문에 가격만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비판도 있다. 농협 하나로클럽 매장에서 판매되는 식용유 가격을 살펴보면, 0.9ℓ 대두유가 2천7백50원인 반면 올리브유는 9천3백원, 포도씨유는 7천1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고급 식용유가 대두유에 비해 3~4배 높은 가격이다.
전문가들은 고급 식용유보다 대두유를, 또 수입품보다는 국산품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소시모 문처장은 “과거 시중에 판매되는 계란을 조사한 결과, 우수한 계란이라고 광고했던 제품과 일반 계란의 영양가 차이는 거의 없었다. 오리려 비싼 계란은 포장을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 신선도가 떨어졌던 결과가 있었다. 식용유도 마찬가지이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쉽게 변하는 제품인 만큼 대용량보다 소용량을 구입하는 것이 신선한 식용유를 맛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충남대 식품공학과 이교수도 “굳이 몇 배씩 비싼 외국 브랜드를 찾을 필요까지는 없다. 꼭 필요하다면 가격이 2배가 넘지 않는 국산 제품을 이용해도 충분하다. 또 대두유나 옥수수유는 물론 올리브유 등 대다수 식용유의 원료가 수입 제품이다. 그렇다면 우리 농산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도 농가에 보탬이 될 것 같다. 현미유가 한 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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