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질주하다 ‘삐끗’ 자빠지다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풋볼위클리> 편집장) ()
  • 승인 2008.01.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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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숙명의 라이벌전에서 패해… 홈무패·홈 득점 행진 ‘뚝’ 호나우지뉴, 레알의 수비 못 뚫고 고전…선수 교체 아쉬움, 새 영웅 부재 등 드러내

지구촌의 축구 열기가 뜨거운 이유들 가운데 ‘라이벌전의 존재’는 특히 두드러진다. 국가 간의 첨예한 라이벌 구도들도 존재하지만 축구팬들을 더욱 자주 들뜨게 만드는 것은 역시 클럽들 간의 치열한 전쟁이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셀틱과 레인저스,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의 경우들이 바로 그러하다. 시즌 일정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팬들은 이들이 맞붙는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라운드 안팎이 ‘이 한 경기’로 인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다. 그리고 경기의 승패는 종종 양팀의 감독과 선수들의 운명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곤 한다.
각기 다른 연원에도 축구 세계의 모든 라이벌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구촌 모든 축구 전쟁들 가운데에서도 전세계를 ‘두 쪽’으로 갈라놓을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의미 깊은 한 판이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카탈루냐에서 펼쳐졌다. ‘엘 클라시코(El Clasico)’라 불리는 그 경기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적지에서의 승리’를 거머쥔 팀은 레알 마드리드였다. 스페인 언론들의 재치 있는 문구를 빌자면, 줄리우 밥티스타의 한 골에 힘입은 레알의 승리는 레알로 하여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게 한 반면, 홈팀 바르셀로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악몽’ 그 자체였다. 바르셀로나는 2006년 2월5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1-3으로 패한 이래 이어가던 리그 ‘홈 무패’ 행진, 2005년 3월1일 에스파뇰과 0-0으로 비긴 이후 이어가던 리그 ‘홈 득점’ 행진과도 결별을 고했다.

 

‘악몽의 패배’ 에 빠진 다섯 가지 이유

모든 상징적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 바르셀로나로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에 승점 7점을 뒤진 채 2008년을 맞이하는 것이 뼈아프다. 소위 ‘판타스틱 4(호나우지뉴, 티에리 앙리, 사무엘 에토, 리오넬 메시)’로 무장했을 뿐 아니라, 야야 투레, 에릭 아비달, 가브리엘 밀리토 등 포지션별 긴요한 영입들, 그리고 보얀 크르키치, 지오바니 도스 산토스와 같은 유망주들과 더불어 출발했던 시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물론 라이벌 레알도 지난 여름 웨슬리 스네이더, 아르옌 로벤, 페페, 가브리엘 에인세 등을 팀에 추가하며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했으나, 전체적인 선수단의 ‘완벽함’의 측면에서 올시즌은 바르셀로나의 것이 되리라는 예상이 좀더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바르셀로나와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유일한 문제는 ‘판타스틱 4’의 일원들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공평하게 기회를 나눠주는 일만 남았을 뿐이라는 관측까지 가능했다.
그러나 다시 ‘엘 클라시코’로 돌아와, 바르셀로나의 패인들을 짚어보는 것은 흥미롭다. 경기 후 스페인 언론들이 레이카르트와 호나우지뉴를 ‘패배의 두 주인공’으로 지목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과장된 측면이 존재하기는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바르셀로나 쪽에 여운을 던지는 아쉬움들의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레이카르트, 호나우지뉴와 연관되는 까닭이다.
첫째, 현지 언론을 비롯해 모두가 지적할 법한 레이카르트의 선발 라인업. 레이카르트는 분명 선발 라인업에서부터 슈스터에 패했다. ‘엘 클라시코’가 열리기 전 언론의 관심은 “레이카르트가 과연 호나우지뉴를 선발로 쓸 것인가? 슈스터가 과연 구티를 선발로 쓸 것인가?”에 집중되었고, 실전에서 레이카르트가 호나우지뉴를 선발로 기용한 반면 슈스터는 구티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승부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마하마두 디아라-밥티스타-스네이더로 구성된 레알의 미드필드는 여느 때보다 조직적이고 견고했으며 특히 밥티스타는 탁월한 경기력으로써 슈스터의 기대에 부응했다. 반면 호나우지뉴는 어렴풋한 천재성의 잔영을 여전히 발산했으되, 승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는 레이카르트 라인업의 더 큰 문제는 호나우지뉴라기보다 ‘데코’였다.

‘메시의 부재’가 최대 패인…강적 연구 따라야

데코는 분명 이 경기 ‘최악의 선수’에 가까웠다. 그는 부상 회복 이후 아직 완벽한 상태에 오르지 못한 것이 역력했다. 사실 데코의 위치에는 최근 훌륭한 플레이를 펼쳐온 아이더 구드욘슨이 존재하기에,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은 데코의 선발 기용을 별로 예상치 못했을 법하다. 하지만 레이카르트는 ‘큰 경기에는 경험 많은 큰 선수’ 논리에 천착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자충수가 되었다.
둘째, 호나우지뉴의 현재. 2005년 11월19일 호나우지뉴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뒤를 이어 레알의 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역사적인 바르셀로나 선수로 등극했다. 만능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조차 호나우지뉴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호나우지뉴는 라모스와 ‘레알의 새로운 수호신’ 페페를 동시에 물리칠 만한 경기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경험이 부족한 보얀과 도스 산토스 대신 호나우지뉴를 선택한 결정에는 일리가 있지만, 호나우지뉴가 과거와는 판이하게 레알의 수비를 궤멸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바르셀로나의 아픔이다.
셋째, 자연스럽지 못한 포지션. 호나우지뉴 선발 기용과 더불어 레이카르트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오른쪽에 위치시키는 방안을 강구했다. 그러나 경기 전체를 놓고 볼 때 ‘바르셀로나 최고의 선수’였던 이니에스타에게도 오른쪽은 그리 자연스러운 영역은 아니었다. 한 차례를 제외하고 그의 최고 플레이들은 주로 왼쪽과 중원에서 펼쳐졌다. 따라서 호나우지뉴의 출격과는 별개로, 레이카르트는 ‘메시 없는 바르셀로나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이니에스타부터 우선 고려하는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나았다. 이니에스타를 왼쪽에 놓고, 호나우지뉴와 에토가 중앙과 오른쪽을 오가며 플레이했으면 어땠을까.
넷째, 선수 교체의 아쉬움. 이니에스타가 오른쪽에서 덜 편안할 뿐더러 데코의 경기 기여도가 극도로 낮았다면, 레이카르트는 좀더 과감하고 빠른 변화를 주었어야 했다. 특히 경기 막판 활발한 공격력을 선보였던 보얀의 투입 시점에 아쉬움이 있다. 구드욘슨의 모습을 끝내 볼 수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보얀은 샤비와 교체할 것이 아니라 호나우지뉴와 맞바꾸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다섯째, ‘새로운 영웅’의 부재. 부상으로 결장해온 앙리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관해 감독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찌되었든 ‘엘 클라시코’에서 앙리가 몸을 푸는 데 그쳤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아쉬움이다. 보얀이나 도스 산토스의 경험 부족이 걱정이었다면 어쩌면 앙리는 ‘이전의 영웅’ 호나우지뉴를 대체할 만한 가장 마음에 드는(?) 자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경기력 저하, 앙리의 부상조차도 누캄프의 ‘진정한 뉴 에이스’ 부재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다. 바르셀로나의 최대 패인은 어쩌면 ‘메시의 부재’로 수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에게, 그리고 (얼마나 오래 지휘봉을 잡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레이카르트에게 이번 ‘엘 클라시코’는 메시가 없는 상황에서 강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영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한 판이었다. 쭦
한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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