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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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계, 이당선인 위한 기도회 등으로 들떠…‘거리 두어야 한다’는 경고 목소리 커져

 
원래는 ‘대통령 당선인 및 국가를 위한 기도회’였다. 그러다가 ‘국민 대화합과 경제 발전을 위한 특별 기도회’로 이름을 바꿨다. 다른 종교인들의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9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가 서울 앰배서더 호텔에서 연 기도회는 시작 전부터 북적였다. 행사장인 그랜드볼룸이 사람들로 넘쳐나 호텔측이 따로 자리를 마련할 정도였다. 한기총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위해 마련한 이날 행사에서는 ‘명비어천가’가 쏟아졌다. 이당선인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소망교회의 장로이다.
한기총 대표회장인 이용규 목사는 “하나님께서 통치권을 강화시켜주시고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주시어 열강이 깜짝 놀라는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주시기를 바란다. 역사의 위업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한국 교회가 지원하고 기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선인에게 성경책을 증정하면서 “장로라는 직분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가 뒤에서 밀고 있으니 당당하게 일하라”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당선인과 초등학교 동창인 한기총 명예회장 지덕 목사는 “대한민국이 마치 술 한 잔 먹은 사람처럼 들떠 있다. 국민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라고 했다.
대통령에 당선한 이후 세 번째로 ‘교회’를 찾은 이당선인은 이날 “종교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개신교 장로가 해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소망을 밝혔다. 참모들은 ‘종교 편향성’ 논란이 일 것을 의식해 이날 행사에 당선인이 참석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당선인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인 1월10일 아침에도 이당선인은 강남 한 호텔에서 열린 ‘기독실업인회’ 등 개신교 모임에 참석했다. 1월16일에는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리는 불교계 신년하례회에도 참석한다.

김영삼 정권 시절의 전철 밟을까 우려하기도

10년 만에 ‘장로 대통령’을 맞은 개신교계 내부가 복잡하다. 한기총 행사처럼 일각에서는 들뜬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기총 일부 인사는 1월2일 열린 신년하례회에서도 “4월9일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상승세를 탈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기도했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추진하는 가칭 ‘사랑실천당’ 창당 작업도 주목된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이에 반대한다는 신문 광고를 내는 등 개신교계 원로들은 거리를 두고 있지만 기독민주복지당(대표 최수환 장로)과 합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개신교계 일각의 정치 세력화 움직임이 갈수록 구체화하는 흐름이다. 전목사는 대선 전 “이명박 후보를 안 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라는 발언으로 입방아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며 경고음을 울리는 목소리가 더 크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당선인이 다니는 소망교회에서 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 교단의 연합체인 한기총이 왜 당선 축하 예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가 신년 설교에서 “대통령 당선인도 소문난 크리스천이고 인수위원장도 소문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두렵다”라고 설교한 것도 개신교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목사의 말은 개신교계와 ‘이명박 정권’이 한 몸이 된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과 걱정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명박 당선인을 필두로 이경숙 인수위원장, 정몽준 의원,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인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 ‘당선인의 복심’으로 평가되는 정두언 의원과 ‘정책통’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 조해진 공보특보 등 ‘이명박 사단’의 핵심 인사 가운데는 개신교 인사들이 많다. 장로인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이끈 김진홍 목사, 성결대 총장을 지낸 김성영 목사 등 인수위에도 개신교 인사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개신교계의 걱정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대한 반추 속에서 나왔다. 충현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1992년 12월28일 한기총이 주최한 ‘당선 축하 조찬 기도회’에 참석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한기총 행사에 참석한 뒤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했다. 묘하게도 이명박 당선인의 이번 행보와 같다.
장로였던 정원식·이영덕 씨를 국무총리에 임명하는 등 개신교계 인사들을 중용했던 김 전 대통령은 성수대교 붕괴와 아들 김현철씨 문제,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초라하게 권좌에서 내려왔다. 지금도 개신교계 인사들 가운데는 그때를 회상하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개신교계는 군측이 군목은 줄이고 군승은 늘리는 바람에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 이번에도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해 개신교계가 발 벗고 나섰던 만큼 김 전 대통령 때처럼 실패한다면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불어올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대운하’ 반대하는 불교계 등과 갈등 소지도 있어

이런 맥락에서 요즘 개신교계에서는 ‘교회가 당선인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라는 말이 유행 중이다. <뉴스엔조이>나 <뉴스파워> 같은 개신교계 인터넷 진보 언론들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통일시대 평화누리 사무국장인 구교형 목사는 “개신교인들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때 쏟아진 한국 교회에 대한 따가운 비판을 의식하고 있다. 개신교인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 대통령을 탄생시켰지만, 다른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정도로 두드러지게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오히려 교회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최근 상황을 분석했다.
<뉴스파워>에서 기자로 일하는 김철영 목사는 “한국 교회는 이명박 당선인이 행동과 국정 철학 속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공동선과 사랑을 구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김진홍 목사도 정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개신교계의 이런 흐름이 계속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김진홍 목사는 어쨌든 인수위에 이름을 올렸다. “뉴라이트 일꾼들이 이명박 정권에 많이 참여하기를 바란다”라는 말에서는 ‘권력에의 의지’가 엿보인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돌출 행동을 해 다른 종교인들을 자극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구교형 목사는 “사학법 개정이나 종교세 문제 등 현안이 여럿 있다.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 교회의 천박스러운 이미지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보았다.
불교계의 움직임도 변수이다. 새만금 살리기 운동이나 북한산 국립공원 관통도로 건설 반대 운동 등 환경 문제에 천착해온 불교계는 이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뚜렷이 하며 이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 종책 모임인 보림회와 금강회는 1월10일 대운하 건설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불교계 언론들은 틈만 나면 ‘종교 편향성’을 지적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불거진 이당선인의  ‘종교 편향 발언’에 상처받은 불교계는 정서상 그와 거리가 멀다. 개신교계나 이명박 당선인이 종교 편향이라고 해석될 만한 언행을 하면 언제든 ‘종교 갈등’이 일어날 만한 불만이 잠재되어 있다. 열쇠는 개신교계나 이당선인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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