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코 앞에 간 특검 ‘안주인’ 홍라희 관장도 겨눴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1.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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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엔지니어링 리베이트 수수 사건 수사 자료 검토하고 미술계 인사들 계좌 조사” 서미·국제 갤러리 관련 자료 확보한 후 홍관장과 거래 관계 등 추적 중

"왜 하필 한남동인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특검 사무실이 마련되자 삼성그룹 내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실제 이번 특검까지 모두 8번에 걸쳐 특검이 출범했지만 그 사무실이 매번 법조타운이 위치한 강남구와 서초구 일색이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에 ‘쌍끌이 특검’으로 함께 출범한 ‘BBK 특검’ 역시 둥지를 강남구 역삼동에 틀었다. 삼성 특검만이 유일하게 한강을 건너온 셈이다. 특히 한남동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자택이 있는 곳이다. 삼성의 ‘청와대’라 불리는 승지원도 역시 한남동에 있다. 이곳은 이회장의 개인 집무실이다. 조준웅 특검이 삼성의 심장부 인근에 특검 사무실을 마련하자 삼성 관계자들은 “무언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라며 찜찜함과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남동에는 또 하나의 삼성 심장부가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승지원이 이회장을 상징한다면 리움은 삼성의 안주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을 상징한다. 특검팀은 마치 한남동에 수사본부를 설치한 이유를 설명이라도 하듯이 출범하자마자 이회장 자택과 승지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리고 그 다음 차례는 리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승지원과 ‘리움’이 있는 한남동에 자리 잡은 특검 사무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 아무개 변호사는 ‘압수수색’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압수수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당연히 필요한 증거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면에는 수사 대상자로 하여금 엄청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다. 아무리 사전에 압수수색을 예상하고 미리 철저하게 대비했다 하더라도 수십명의 수사관들이 샅샅이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증거 인멸에 대해 완벽한 확신을 갖기 어렵다. 또 실제로 일부 중요한 증거 자료들은 반드시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에 사활을 걸게 된다.”
삼성 특검팀은 이런 전가의 보도를 예외 없이 휘둘렀다. 그 효과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국민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고, 삼성을 바짝 긴장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한남동 특검 사무실 주변에는 향후 특검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들이 빼곡하다. 주요 참고인인 김용철 변호사가 몇 차례 조사를 위해 다녀간 것을 비롯해, 숱한 취재진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함께 시민단체들의 단체 방문도 이어진다. 삼성측 변호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비자금 불법 조성, 그리고 경영권 승계 의혹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 수사 줄기에서 일단 특검팀은 비자금 불법 조성 쪽에 먼저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특검팀은 지난 1월17일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차명 계좌 의심 자료들을 토대로 관련자 소환조사에 나섰다. 그런 가운데 최근 특검팀이 추가로 검찰에 또 다른 수사 자료를 요청해 면밀히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2003년 ‘삼성엔지니어링 리베이트 수수 사건’ 수사 자료가 그것이라는 전언이다. 유명 갤러리 관계자 등 미술계 인사들에 대한 계좌 조사가 이미 진행 중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 속에 삼성의 안주인인 홍라희 관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검 의견서에도 ‘비자금 관련 홍관장 소환 조사 필요’ 주장

삼성엔지니어링 사건이란, 2001년 N사의 홍 아무개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에 충남 천안의 공장 신축공사를 맡기면서 리베이트조로 13억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돈이 모두 현금으로 지급된 까닭에 당시 검찰로서는 사실 규명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삼성측에서 먼저 “돈을 준 사실이 있다”라고 자진해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시인했던 당사자가 김용철 변호사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변호사는 “당시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는데, 결국은 홍라희씨를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즉 검찰이 비자금 사용처를 캐기 위해 계속 수사를 확대할 경우 홍관장이 드러날 것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이는 홍사장의 부인 이 아무개씨와 홍관장의 남다른 친분 관계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아름지기’라고 하는 한 비영리 단체의 창립 멤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두 사람 외에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부인 신연균씨와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 등 다수의 삼성가 여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이 비자금으로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를 통해 해외에서 그림을 구매했었다는 것이 김변호사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홍관장이 등장할까 봐 삼성이 알아서 먼저 인정했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처음부터 ‘로열패밀리’에 대한 성역을 허물어뜨리기로 작정한 듯 이회장에게 직접 칼을 겨누었다. 김 아무개 변호사는 “대형 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조준웅 특검으로서는 윗선을 집중 공략하면 아래는 자연히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관측에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이 홍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이다. 특히 홍관장의 경우는 삼성에서 가장 깊숙한 ‘성역’이었다. 삼성이 지금까지 대선 비자금 수사나 에버랜드 편법 상속, 도청 X파일 사건 등 숱한 시련에 봉착했어도 단 한 번도 홍관장이 수사선상에 거론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삼성이 이번 특검의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긴장감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일단 특검팀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 자료들이 현재 수사 방향에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김변호사 측은 지난 1월9일 특검팀에 A4용지 7장 분량의 ‘특검이 반드시 수사하여야 할 사항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문건에는 비자금의 운용 관련 항목에서 홍관장의 소환 조사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목이 나온다.
‘서미, 국제, 현대 갤러리와 삼성과의 거래 내역 전부 및 탈세 여부를 조사하여야 합니다. 특히 위 각 갤러리의 통관 내역, 매출 내역, 세금 신고 내역 등 거래 내역의 실체를 확보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관을 통해 위 각 갤러리들이 통관, 수출, 수입한 거래 전체를 조사해야 합니다. 해외 미술품 거래와 관련하여 소더비 등과 위 각 갤러리와의 거래 내역을 확보해야 하고 위 갤러리들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경우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 대해서는 고가의 그림 매수 자금 출처에 대해 조사하여야 합니다. 특히 핵심 관련자인 홍라희를 소환 조사하여야 합니다. 최근 새로 드러난 사실 중 홍송원이 뉴욕 소재 Gagosian Gallery, C&M Gallery 등으로부터 개인 송금을 통하여 에드 루시아의 <마운틴>(30억원)과 싸이 톰블리의 작품(1천만 달러) 등을 구입한 것으로 보아 경매소가 아닌 갤러리 등을 직접 거래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합니다.’
김변호사는 1월14일에도 특검팀에 서미갤러리 홍대표가 삼성 이건희 일가의 미술품 구매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담은 메모를 제출했다. 이 메모는 홍대표가 2004년 외국에서 미술품을 구입하다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당시 홍대표측 변호사로부터 김변호사가 직접 들은 내용을 적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메모에는 홍대표가 에드루시아의 작품 <마운틴> 등 미술품 두 점을 30억원에 구입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에 앞서 김변호사는 지난해 11월26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이용해 2002~2003년 홍관장과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사돈 박현주 대상그룹 부회장, 올케인 신연균씨가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다고 폭로했다. 그때 미술품 구입 대금으로 해외에 송금된 액수만 6백억원대에 이른다며 송금된 금액이 적혀 있는 관련 작품의 내역서를 공개했다. 그는 함께 내놓은 서미갤러리의 구매 리스트가 삼성가의 것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서미갤러리 대표는 홍관장 심부름하는 개인 집사” 평도 나와

특검팀 주변의 전언에 따르면, 이미 특검팀은 김변호사를 상대로 홍관장과 서미갤러리 홍대표 간의 거래 의혹에 대한 사전 조사를 모두 마쳤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검찰측으로부터는 국제갤러리와 관련된 상당한 양의 수사 자료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는 지난해 12월 수사를 통해 삼성 차명 의심 계좌에서 빠져나온 돈 5백여 억원이 국제갤러리로 흘러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의 삼성 고위 임직원 3~4명 명의의 계좌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현재 거론되는 미술품 거래 비자금 규모만 해도 1천억원이 넘는 셈이다.
특검팀은 국제갤러리 고위 임원들에 대한 계좌 추적 작업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계자들의 본격적인 소환 조사가 곧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또한 무성하다. 이에 대해 윤정석 특검보는 “계좌 추적은 현재 상당한 인력을 동원하고 있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환 일정 등은 수사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확인하기가 곤란하다. 다만 관련자들의 소환 일정을 잡아놓고 예정대로 수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미갤러리의 홍대표와 국제갤러리의 이 아무개 대표는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를 당한 홍대표는 잠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표 역시 김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직후인 11월 초쯤 출국한 이후 지금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사 사장 부인 이씨 역시 일절 언론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
인사동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술 전문가 이 아무개씨는 “서미갤러리의 홍대표는 사실 미술계에 그다지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몇 년 전 한 차례 물의를 일으켜 화랑협회에서 제명 조치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 어떤 경로로 다시 복귀했는지도 의문이다. 전문 ‘아트 딜러’라기보다는 홍관장의 미술품 심부름을 하는 개인 집사에 가깝다는 평을 주변으로부터 들었다. 실제 홍관장이 미니멀아트에 관심이 많았는데, 서미갤러리는 이 분야에 집중적인 전시회를 하면서 성장했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3~4년 전을 기점으로 해서 삼성의 주거래 갤러리가 서미갤러리에서 국제갤러리로 옮겨갔다. 최근에는 국제갤러리와 집중적으로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갤러리가 비록 국내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인 것은 맞지만 최근 들어 여기서 주최한 미술 전시회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뒤에 막강한 스폰서가 작품을 두세 점 사주는 조건으로 전시회를 유치했다는 얘기가 미술계에 파다했다. 그 큰손은 삼성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삼성은 외국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의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작품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는데, 이로 인해 국내 최대 규모인 현대갤러리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용철 변호사는 “홍관장이 삼성 구조본 재무팀에 수시로 연락해 홍송원 대표에게 돈을 지급하도록 지시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 수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면 어떤 식으로든 홍관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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