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8년 만의 결별 보따리는 이미 쌌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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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탈당파, 신당 창당 준비 중…단결·화합 호소 묻혀

진보 진영이 갈림길에 섰다.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어온 진보 정치 세력이 분화와 연대를 통한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진보운동사의 한 획을 그으며 출범한 민노당이 사실상 분당 수순에 들어갔다. 자주파(NL)와 평등파(PD)라는 진보 운동의 양대 진영이 정당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동거에 들어간 지 8년 만에 결별을 맞은 것이다.
민노당 창당을 주도했던 평등파 인사들이 당내 다수파인 자주파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 행태’를 비판하며 탈당한 후 새로운 진보 정당의 깃발을 올리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조승수 전 의원과 김혜경 전 대표, 김형탁 전 대변인 등이 주축이 된 새 진보 정당 결성 모임이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평등파, 자주파의 종북주의 행태 등 비난

2월3일 열린 임시 당대회는 민노당 분화의 기폭제가 되었다. 종북주의 청산 등의 내용을 담은 심상정 비상대책위의 혁신안은 다수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부결되었고, 이후 평등파의 탈당 움직임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서울 지역 총선 후보 및 전·현직 지역위원장 등 17명은 혁신안이 부결되고 이틀이 지난 2월5일 기자회견을 갖고 “더 이상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출마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또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는 새로운 진보 정당을 만들어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인천·대구시당과 경남도당 전·현직 간부 등도 탈당 기자회견을 갖는 등 탈당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영화감독 변영주씨 등도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천영세 의원을 대표 직무대행으로 한 임시 지도 체제가 구성되어 위기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 한 번 무너진 둑을 다시 쌓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천의원은 2월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민노당은 함께 죽느냐, 함께 사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중요 기로에 서 있다. 분당, 분열은 진보 정당 운동의 정도가 아니며 공멸의 길이다”라며 단결과 화합을 호소했다.
그는 또 “오는 2월20일 이전에 중앙위를 개최해 ‘당 위기 수습방안’을 단일 안건으로 상정하고, 이달 말까지 내부를 수습해 늦어도 3월 초에는 총선 준비 체제로 전환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내에서 대중성이 가장 높은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민노당 탈당과 새로운 진보 정당 건설 과정에서 공동 행보에 나서기로 결의해 대규모의 분당 사태는 불가피해졌다. 두 의원이 함께 움직일 경우 임시 당대회 이후 탈당했거나 탈당을 예고하고 있는 평등파가 대거 결합할 가능성이 크다.

 

심상정·노회찬 의원 탈당으로 분당 사태 불가피

민노당 분당 여파가 지지 단체의 분화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진보 단체 간 또는 개별 단체 내부에서 분당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이 조금씩 엇갈리고 있어 향후 치열한 내부 논쟁이 예상된다.
민노당의 최대 지지 기반인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지도부는 배타적 지지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산하 산별 조직 중 금속노조와 사무금융연맹에서는 지지 철회 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빈민연합은 상반된 태도를 보여왔다. 혁신안에 반대해온 전농은 당의 정상화를 위해 뭉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혁신안을 지지해온 전빈련은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이에 따라 새 진보 정당이 창당할 경우 기존 민노당과 새 진보 정당으로 지지 세력이 나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화살은 활시위를 떠나 되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을 겨냥했고 제대로 쏘았는지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보다는 분화와 연대를 통해 재구성될 진보진영이 대안 정치 세력으로서 국민 곁에 자리 잡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민노당과 새롭게 창당할 진보 신당이 경쟁과 협력을 통한 발전적 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의 분화가 단순히 정치 세력의 ‘편 가르기’에 머무를지, ‘21세기 진보’에 걸맞는 진보 진영의 혁신을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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