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 데는 많고 갈 길은 험하고…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풋볼위클리> 편집장) ()
  • 승인 2008.02.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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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허정무호, 두 차례 A매치에서 드러난 문제점 어떻게 해결할까

 
‘허정무호 1기’ 축구국가대표팀이 이번에는 국내파로만 팀을 꾸려 동아시아축구대회(중국 충칭)에서 검증을 받고 있다.
동아시아대회는 4개국 친선대회이기는 하지만 허투루 넘길 수만은 없다. 우리처럼 국내파로 출전하는 중국 대표팀이 ‘타도 공한증(恐韓症)’을 외치고 있는 데다 2월20일 경기를 갖는 북한팀은 오는 3월26일 벌어지는 월드컵 예선 2차전 상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허정무호에 대한 평가도 이번 대회에서 본격화될 것 같다.
일단 지난 2월 초까지 벌어진 두 차례의 경기에서 허정무호 1기의 출항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0 남아공월드컵으로 가는 첫 예선전에서 골 가뭄을 해소했다는 점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향상시켜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드러낸 두 경기였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음은 당연지사이다.
우선 지난 1월30일 칠레와의 평가전. 겨울 휴식기로 인해 선수들의 실전 감각이 매우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맞이했던 경기인 데다 유럽파 선수들이 가세하지 않은 실험적 선수 구성이었음을 충분히 감안해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조한 게임 내용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 기본적으로 우리를 상대했던 칠레는 그들의 대표 1진과는 매우 거리가 먼 팀이었다. 마르셀로 살라스(우니베르시다드 칠레), 마르크 곤살레스(레알 베티스), 움베르토 수아소(몬테레이), 마티 페르난데스(비야레알), 클라우디오 말도나도(페네르바체), 아르투로 비달(레버쿠젠), 클라우디오 브라보(레알 소시에다드)와 같은 선수들이 모두 빠졌다. 방한했던 선수들 중 칠레 A팀의 주전 혹은 주전급에 근접해 있는 선수들까지를 모두 합쳐도 네 명(마누엘 이투라, 곤살로 피에로, 에두아르도 루비오, 곤살로 하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대표팀에도 대표 경력이 일천한 선수들과 실로 오랜만에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이 대거 포진했지만, 칠레 감독 마르셀로 비엘사 역시 우리 못지않게 실험적인 선수단을 꾸렸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한국 대표팀은 칠레와의 경기를 통해 3-5-2, 4-3-3, 4-4-2의 형태를 다양하게 실험하려 했지만, 특히 경기 후 쏟아진 상당수의 비판은 전반전 들고 나왔던 3-5-2 쪽에 집중되었다.
‘3백’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요즈음의 축구에서 ‘4백’이 가장 효율성 높은 시스템으로 인정받고 있음이 사실이기는 해도, 4백을 들고 나오든 3백을 들고 나오든 공간 싸움의 의미가 심대해진 현대 축구에서 경기 중 쉴새없는 유기적인 위치 이동은 필수이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포메이션도 순간순간 변화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순간순간 변하는 포메이션 안 보여 문제

칠레의 측면 공격에 부담을 느낀 한국의 측면 미드필더(윙백)들은 수비 쪽에 치중하며 허리 싸움에 쉽사리 가세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의 중원을 허전하게 만들었으며 가뜩이나 매끄럽지 못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더욱 실종되게끔 했다. 측면 미드필더들이 수비적인 역할에 주력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면, 중앙 수비 한 명을 미드필드로 끌어올리는 후반전 타입의 변화가 전반전 경기 중에 좀더 일찍 나타났으면 좋았을 법하다. 결국 한국은 상대 스타일에 따른 순발력 있는 전술적 움직임을 가져가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후반전에는 기본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나아진 모습의 경기를 치렀지만, 근본적으로 저조했던 컨디션에다 활용 가능한 공격 자원의 부족 현상까지 겹친 경기의 승부를 되돌리기란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벤치와 선수들 모두가 ‘어깨에 힘은 많이 들어갔으되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는’ 경기였다.
그러나 2월6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일전을 통해 대표팀 선수들의 얼굴에 마침내 웃음꽃이 피었다. 남아공으로 향하는 첫 관문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특히나 모처럼 시원한 득점포가 가동되었다는 대목이 골에 목말라온 축구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을 것이다. 또한 이 경기의 대승은 허정무 감독으로 하여금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아시아 대회에 참가해 선수들의 조직력과 경험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 의미가 있다.
대승의 가장 큰 원동력이 ‘프리미어리거 3인방’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의 가세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시즌 각각의 클럽에서 모두 고전 중이기는 해도, 이들은 투르크메니스탄 선수들을 시종일관 당혹스럽게 하는 플레이로써 자신들의 ‘수준’을 입증해 보였다. 이들이 있는 대표팀과 없는 대표팀의 차이가 현격할 수 있다는 것도 이 경기를 통해 다시금 증명되었다.

 

세 선수의 가세는 여러 측면에서 대표팀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첫째, 허정무 감독의 경기 후 인터뷰처럼 이들의 존재는 대표팀의 전체적 ‘중심’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믿고 패스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 요소요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험이 적은 다른 선수들에게는 실로 작지 않은 힘이 된다. 둘째, 칠레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미드필드에서 경기를 풀어줄 수 있는 자원이 증가했다.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박지성의 활약에다 이영표의 빈번한 오버래핑이 더해지며 실종되었던 중원이 살아난 것이다. 셋째, 이들의 가세는 박주영의 활약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박주영 본인의 컨디션이 칠레전보다 올라왔던 덕도 있지만, 박지성과 설기현의 노련한 플레이가 박주영의 경기 관여도를 괄목할 만큼 향상시키는 효과를 낳은 면이 있다.
‘프리미어리거 효과’에 더하여, 벤치의 대응력과 순발력에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우선 투르크메니스탄이 4-5-1로 나올 것을 예상해 이번에는 처음부터 중앙 수비에 두 명을 두는 ‘4백’을 들고 나온 것이 주효했다. 경기 전의 연구가 중요함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또한 의외로 골이 터지지 않던 전반전, 박지성을 중앙에서 왼쪽 측면으로 이동시킨 판단 또한 괜찮았다. 박지성에 쏠릴 수밖에 없는 상대 수비로 인한 중앙 공간 창출의 효과를 기대함과 동시에 중앙에는 김두현을 투입해 패싱력과 중거리 슈팅력의 강화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진 내용과 결과에도 불구하고 투르크메니스탄전은 허정무호에게 앞으로도 여전히 많은 준비와 향상이 필요함을 시사한 의미도 있다. 우선 첫째로, 만약 프리미어리거들의 경기력이 하락하거나 이탈자가 생겼을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반드시 곱씹어보아야 한다. 프리미어리거들이라 해서 언제나 경기력이 좋을 수는 없을뿐더러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극소수 선수들의 유무에 따라 경기력에 큰 차이를 드러내는 팀은 궁극의 강팀이 되기 어렵다는 평범한 진리가 한국 국가대표팀에도 적용됨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도 여전히 드러난 고질적 문제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압도적 승리로써 귀결되기는 했지만, 미드필드와 수비에서 이따금씩 터져나온 실책성 장면들은 그날의 투르크메니스탄보다 더 나은 상대를 만났을 때 치명적인 것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자신 없고 의미 없는 횡패스와 백패스, 그리고 수비 진영에서의 불안한 볼 처리를 줄여야 한다. 또한 칠레전에 비해 그것이 한결 좁혀지기는 했더라도 1선, 2선, 3선 사이의 간격이 적절하게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공격을 1선의 박지성, 박주영, 설기현에게만 일방적으로 맡겨두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이 더욱 뚜렷하다. 이 역시 투르크메니스탄보다 강한 상대와의 대결에서는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다.
투르크메니스탄전의 대승으로 기세가 오른 허정무호가 전통의 라이벌끼리의 대결인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앞선 두 경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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