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개똥이’는 왜 독일 로커가 됐나
  • 김유미 (연극평론가) ()
  • 승인 2008.02.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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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 다룬 어른을 위한 인형극 <베를린 개똥이>

 
<베를린 개똥이>는 1994년 초연된 연희단 거리패의 <산너머 개똥아>를 새롭게 만든 작품이다. <베를린 개똥이>도 연희단 거리패의 작품이지만 인적 구성 면에서 원작의 재구성과 극본·연출·인형 제작·음악을 모두 독일 사람이 맡았기 때문에 문화 상호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산너머 개똥아>에 등장하는 개똥이는 매우 원초적인 우리나라의 설화적 인물인데(아기장수 설화), 이러한 인물을 데리고 서양과 문화적 소통을 한다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매우 한국적인 것은 민족적인 것이고 그러한 각 나라의 고유한 설화는 독일에도 있기 때문에 각 나라의 민담이 겉 모습은 달라도 속 내용은 같듯이 오히려 원초적 수준에서 개똥이란 인물에 대한 공감대는 쉽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여기에 다시 현대적 해석이 가해져야 한다는 점에서 작업이 단순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 작품에서는 그 현대적 해석 부분을 명확히 하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상한점이 명료하다. ‘베를린 개똥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독일의 통일 문제와 연관시켜 풀어내고자 하였으며 다시 그것을 우리의 남북 문제로 확장시키려고 했다. 우리의 전통과 서양의 전통이 만나고 그것이 다시 현대적 의미를 띠어야 하는 과정에서 건너야 할 다리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곳곳에 발목을 잡을 만한 지뢰의 위험이 널려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작품이 원래 전통 연희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순간에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비약이며 놀이이다.

불안정한 조합이 만든 신선함과 낯설음

이 작품은 여러 모로 조합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과 독일의 만남, 개똥이와 베를린 장벽의 만남이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작품 안으로 들어가서 보아도 이러한 이질적인 조합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 작품은 시각적·청각적·촉각적 감각들을 모두 동원해 관객을 붙잡아두려고 한다. 시각적으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스폰지로 만든 인형이다. 어른들의 연극에 인형을 등장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산너머 개똥아>는 어린이연극제에서 공연되었을 정도로 가족극 개념으로도 변화가 가능한 작품이다. 개똥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원시적 순수성이 어떤 연령층에나 호소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똥이가 사회를 풍자하거나 공격하는 수준에 따라 온 가족이 보기에 불편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항상 문제적으로 다가오는 점은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동원되는 장치들이 너무 세서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전통 연희에서 볼 수 있는 남자 주인공(이 작품에서는 미헬, 이승헌 분)을 둘러싼 할미(김미숙 분)와 각시(이준정 분)의 삼각관계가 근간이 되는데 남자 주인공이 젊은 각시와 바람을 피우는 상황, 젊은 각시의 색기 묘사에 너무 심혈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러한 강도가 바로 사회적 비판의 강도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보다 더 과장함으로써 불편함을 느끼게 해야 문제를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 개똥이>에서는 이러한 측면에서의 부정적 효과가 많이 감소되었다. 남녀 간의 사랑과 배반이 막연한 시류 문제가 아니라 통일 독일의 사회문제로 구체화되어 풍자의 날을 세우며 날카롭고도 질펀한 비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한편으로는 이 작품을 관념적이고 딱딱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러한 점에서 스폰지로 만든 인형이라는 소도구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폰지라는 소재가 주는 부드러움 때문에 작품의 결을 정돈해주는 데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을 스폰지 인형이 아닌 실제 배우가 했다면 이 작품은 스타일이 무너진 초점 없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스폰지 인형의 등장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것이 작품의 질감과 강약을 조절해줌으로써 미적인 측면의 바탕을 마련해준 셈이다.
또한, 우리의 영원한 슈퍼맨인 개똥이(석원일 분)는 과연 이 작품에서 어떻게 등장할지 궁금했는데 매우 파격적인 모습이었다는 점에서 해석을 요한다. 이 작품에서의 개똥이는 한국적인 코드를 버리고 로커의 모습으로 등장해 괴성과 힘을 보여준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적 개똥이의 모습도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용마를 모자로 사용해 머리에 쓰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똥이가 귀여워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윗옷은 벗은 채 쫙 붙는 검정 바지에 긴 머리 그리고 용마 모자를 쓴 개똥이는 불안정한 조합임에 틀림없는데 그러한 불안정성이 오히려 작품에 긴장감을 주고 강한 악센트로 기능하도록 했다. 어차피 개똥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지닌 원시적 힘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이 최상이라면 이번 작품에서의 난해한 개똥이는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직 숙성되지 않은 겉절이 같은 알싸한 맛이 난다. 뿐만 아니라 내용물이 잘 섞여 있지도 않아 아직 어떤 맛인지 그 정체를 딱히 알 수도 없다. 그런데 연극에서의 재미와 맛은 오히려 이러한 덜익은 데서 풍겨 나오는 날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아신다면 여러분은 이미 연극쟁이 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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