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녘에서 산문으로 굽이치는 ‘운하 반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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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불교행동’ 출범시키며 대대적인 반대 운동 나서 “개발주의 맞서 생명의 가치·평화의 소중함 지켜낼 것”

 
“경부 운하는 내 가슴을 도끼로 찍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수행 환경을 해치고 문화유산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뭇 생명의 상생과 화합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지난 2월27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한국 불교의 대표 사찰에 마이크가 설치되었고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날 조계사에서는 ‘생명의 강 지키기 불교행동(이하 불교행동) 출범식’이 열렸다. ‘불교행동’에는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대한불교청년회, 불교환경연대, 사찰생태연구소 등 불교계 93개 단체가 참여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불교계 단체들이 이렇게 많이 참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정우식 불교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앞으로도 참가 단체나 사찰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교행동은 이날 출범 선언문에서 “이명박 운하는 환경 재앙, 문화유산 파괴, 식수 대란, 홍수 위험을 촉발하는 대재앙 프로젝트이다. 국민을 거대한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을 국론 분열의 화약고이다. 자손 대대로 국고를 탕진하고 혈세를 짜내는 세금 폭탄이 될 것이다”라며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운하를 건설하는 데 따른 수행 환경 파괴는 한국 불교 1천6백년 최대의 법난이 될 것이며 한국 불교를 생존의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강력한 반대 투쟁에 나서겠다고 공표했다.
‘불교행동’의 태동은 불교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에서 기인한다. 출범식에서 만난 박광서 서강대 교수는 “사패산이나 천성산 터널 문제처럼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된 뒤에야 뛰어들어 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일이 진행되기 전에 행동으로 막아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불교계는 기본적으로 강을 파헤쳐 콘크리트 옹벽을 만드는 계획은 수많은 생명체를 제물로 삼는, 금수강산 실험 계획이라고 본다. 정서상 불교와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인 법응 스님은 “대운하가 만들어지면 경기도 여주에 있는 신륵사가 물에 잠기고 운하로 인해 발생한 안개 때문에 사찰에 있는 문화재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교행동은 앞으로 전국 각 사찰에서 ‘환경법회’를 열고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도보 순례에 적극 동참하는 등 운하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각종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5월21일, 1만여 명 참가하는 불교도 대회 열 계획

날이 풀리면서 조직화하기 시작한 불교계의 대운하 반대 운동은 점차 힘을 얻어가는 흐름이다. 3월7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는 ‘운하 백지화와 생명 평화 발원 기도법회’가 열린다. 불교행동과 종교환경회의 순례단이 주최하는 이날 법회에서는 시인 김지하씨와 법정 스님이 대운하를 비판하는 말을 하고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이 법어를 한다. 운하 반대 운동이 범불교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오는 5월21일 운하 반대 운동이 정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날은 종교인 생명 평화100일 도보 순례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서울에 도착하는 날이다. 불교행동에서는 이날 최소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불교도 대회를 열 계획이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에는 도법·수경·진관 스님 등과 개신교 양재성 목사, 천주교 문정현 신부 등이 참가하고 있는데 대운하를 반대하고 생명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2월12일부터 운하 예정지를 따라 걷고 있다.
3월7일 봉암사 법회와 5월21일 불교도 대회 중간에는 4·9 총선이 있다. 당분간은 국민의 눈과 귀가 총선에 쏠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불교행동에서는 이 기간 동안에 국민의 관심을 어떻게 붙들어놓을까 고심하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 운하 반대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에서 운하 반대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환경을 중시하는 불교계의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사찰에 있는 문화재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강하다. 불교계가 성장·개발주의에 맞서 생명의 가치와 평화의 소중함을 지켜갈 드문 집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도 한 이유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불교계가 느끼는 소외감도 한몫한다고 보여진다. 최근 불교계 언론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불교 소외’를 외치는 보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소망교회를 비롯한 개신교 인맥이 뜨면서 상대적으로 불만이 커졌다. 동국대가 로스쿨 예비 인가에서 떨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대운하 반대 운동’이 불교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환경연대 양재성 목사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자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라며 곧 개신교계에서도 대규모 운하 반대 운동 조직이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충북도내 50여 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운하 백지화 충북도민행동’도 28일 충북도청 정문 앞에서 발족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다. 2월19일 결성된 ‘운하 백지화 국민행동’도 같은 날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에서 집회를 갖고 “운하 건설은 중복 투자와 예산 낭비의 전형이다”라고 주장했다. 전국 곳곳에서 운하 반대 운동이 점점 불붙고 있는 것이다. 국민행동 윤준하 대표는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힘이 붙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운하 반대 운동에 잠재되어 있는 폭발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찬성하는 이들보다 반대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에 있다. <시사저널>이 2월 20일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한다’가 55.2%인 반면 ‘찬성한다’는 30.5%에 머물렀다. 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45.6%인데 반해 찬성한다는 이는 40.9%로 반대가 높았다.
그러나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과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등 운하 추진파들이 대거 청와대에 포진한 사실은 여전히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집권 세력의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2월25일 취임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운하’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국토 구조를 미래 지향적으로 개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운하를 추진하겠다는 완곡한 언급이다. 단 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기 때문에 총선 때 이슈화하는 것을 일단 피하자는 노림수가 있다.
이 때문에 4·9 총선을 내다보고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4·9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운하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조사에 따르면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자의 70.1%가 대운하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전략 가운데 하나로 대운하 문제를 내세우며 ‘집권 세력 견제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되도록이면 대운하 문제가 부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이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대응할 경우 이슈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또한 쉽지 않다는 고민이 있다.
봄날이 다가오면서 ‘운하 반대’ 움직임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새만금·천성산·사패산 등 환경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던 사태 때 스스로 ‘뒷북’을 쳤다고 평가하는 불교·환경 단체들은 이번 운하 건설에서는 기선을 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첫 삽을 뜨는 것 자체를 막는 일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총선이라는 중요한 고비가 있기 때문에 이제 불붙기 시작한 운하 반대 운동은 가속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문경 봉암사, 불교계 운하 반대 운동의 본거지 되나

경북 문경에는 봉암사라는 사찰이 있다. 조계종 유일의 종립선원이다.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문을 열고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사찰이다. 1947년 성철·청담·혜암 스님 등 근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들이 이곳에 모여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라며 일하고 탁발하며 수행했던 ‘봉암사 결사’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불교계의 청정한 수행 의지를 말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이 ‘봉암사 결사’이다. 그만큼 봉암사는 한국 불교에서 정신적인 상징성이 큰 곳이다. 지난해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불교인 1만여 명이 봉암사에 모여 참회와 자정 결의를 했던 일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런 봉암사가 3월7일 문을 연다. 종교인 생명 평화 100일 도보 순례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에게 산문을 개방하는 것이다. 주지 함현 스님은 “대운하 건설로 위기에 처한 국토와 국토의 모든 생명과 국민의 평화로운 삶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생명과 평화의 기도법회를 열기로 했다”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광풍을 생명과 평화의 숨결로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봉암사 결사’의 의미를 오늘날에 되살리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봉암사는 이에 앞서 지난 2월18일 ‘봉암사 대중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합니다’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좀처럼 세상 일에 나서지 않는 수행자들이, 특히 상징성이 큰 봉암사 수행자들이 현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자 불교계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운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일깨운 효과가 대단했다.
봉암사 스님들은 자료에서 ‘살생하지 말라는 것을 계율의 으뜸으로 삼는 불제자로서,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을 것이 분명한 대운하 건설 계획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반(反)생명의 현장을 묵인하는 것은 출가 수행자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해달라’라고 절규했다. 불교계 수행의 본산인 봉암사가 운하 반대 운동의 정신적인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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