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고운 강을 망치려 하다니…”
  • 이은지 기자 lej81@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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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 공약에 반대하는 종교인·환경운동가·예술인 등 20여 명 100일 도보 순례 현장

 
“개발과 성장 논리가 판치는 세상을 성찰할 때가 왔다!” 종교인들이 강을 따라 걷는다.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생명의 근원인 강조차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뒤엎을 수 있다는 개발 중심주의 사고가 팽배해진 사회가 개탄스럽다며 종교인들이 참회에 나선 것이다.
지난 2월12일 불교를 비롯한 네 개 종단의 종교인 10명과 환경운동가, 예술인 등 20여 명은 100일 동안 강을 순례하는 장정에 나섰다. 경기도 김포 애기봉전망대에서 출발한 순례단은 경부 운하 예정지인 김포 하성면의 한강 하구, 낙동강, 영산강을 거쳐 금강에 도착할 계획이다.
출발 15일째인 지난 2월26일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에 있는 섬강에서 순례단을 만났다. 지금까지 1백70km를 걸은 데다 날씨까지 추워 지쳐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표정이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덮인 광활한 대지와 섬강의 경치가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대운하의 경제적 효과가 수십조원이라면 자연의 가치는 수백조원에 달한다는 말의 의미가 실물로 표현되고 있는 듯했다. 눈 때문에 발이 젖어 시렸지만 눈앞에 펼쳐진 설경은 아픔마저 잊게 했다.
여주환경운동연합 의장인 김정권 목사는 “이재오 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대운하 예정지를 둘러보았다는데 빠르게 가면 놓치는 것이 많다. 우리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과 호흡했다면 절대 대운하를 강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며 걷기 예찬론을 펼쳤다.
순례단은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매일 15km를 걷는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느리게 걸을 수 있는 거리이다. 삼보일배처럼 고행을 택하지 않고 행복하게 걷기로 했다. 강과 자연처럼 평화롭게 순례를 하면서
 
내면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순례단은 한목소리로 이러한 성찰의 기회가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말했다. 대운하 공약을 내건 이대통령 덕분이라며 고맙다고까지 했다.

“성장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김민해 목사는 “대운하를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내 안의 과도한 욕망을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감사드린다. 남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다. 이대통령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찰이 모여 욕망을 버리다 보면 관용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로 변화될 것이다”라며 희망을 내비쳤다.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100일 기도를 떠나는 심정이라고도 했다. 김목사는 “100은 돌아선 부처님도 돌아앉게 하는 숫자이다.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날짜인 만큼 이 시간을 통해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정을 100일로 잡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00일간 긴장을 유지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어려움을 자처하기 위해 노숙을 기본으로 한다. 한강시민공원처럼 노숙을 금지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만 절이나 교회에서 잠을 잔다. 이날도 여주 시민이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했지만 일곱 명의 종교인과 두 명의 예술인은 텐트에서 밤을 보냈다.
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인 지관 스님은 “중이 절을 나와 100일 기도를 할 정도면 큰 결심을 하고 나온 것이지 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피곤하고 힘들어도 운하가 강행되는 고통에 비하면 1천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라며 수행인다운 면모를 내비쳤다.
이들의 고행길에는 많은 시민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10여 명에 불과하던 시민이 오후가 지나면서 40명으로 불어났다. 일요일인 2월24일에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동참했다. 순례단은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6년 전에 서울에서 여주로 이사 온 이영학씨는 “어렸을 때 한강이 천국처럼 보였다. 그 느낌을 느끼며 살고 싶어 조용한 여주로 이사왔는데 운하라니 말도 안 된다”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두 명의 딸과 함께 나온 이인석씨도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어 귀농했는데 여기마저 개발된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얘들한테도 운하가 왜 너희들의 문제인지 이야기하면서 동참하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시민도 있었다.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중등 교사 박정은씨는 “환경 파괴에 따른 문제를 피부로 느낀다. 정서 장애가 많은 것도 환경 탓이 크다. 더 이상의 개발은 막아야 한다”라며 동참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순례단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시민들도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강원도 부론면 마을로 들어간 순례단을 향해 한 시민이 “뭣 하러 온 사람들이냐?”라고 퉁명스럽게 묻자 이필완 목사는 “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이 목사는 “강천 갑문이 만들어질 지역이어서 땅값이 많이 오른 상태라 찬성 여론이 높은 것 같다”라고 마을 분위기를 설명했다.
순례단의 걱정은 오히려 일정을 모두 끝낸 5월22일 이후에 닿아 있었다. 총선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운하 공약이 논의되기 시작하면 국론이 찬반으로 분열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경 스님을 비롯한 종교인들은 이러한 국민적 분열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삼보일배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그렇지만 대운하의 경우 새만금이나 천성산처럼 사업이 한참 진행된 것이 아니라 구상 단계인 만큼 반드시 막아낸다는 결의 또한 강했다. 이원규 시인은 “첫 삽을 뜨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업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대운하는 책 한 권 분량의 타당성 조사를 끝낸 공약인 만큼 반대 여론이 일고 본격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면 그 허실이 드러날 것이다. 대운하가 이명박 정권의 자충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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