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 10년은 설계해야 한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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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만든 밑거름이 되었던 포스코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포항제철을 설립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으로부터 포스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어보았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숱한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박정희 정권에서 1960년대 말 방직 기계 몇 대로 가까스로 섬유 산업을 일으켜놓았을 당시 우리가 제철소를 세운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명예회장은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 파트너였던 것 같다. 박명예회장은 중화학 공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해 산업 대국의 기반을 다지려 했던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실현시키기 위해 군화를 신고 직접 현장으로 나섰고, 결국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만들어냈다.

한국 산업 발달사에서 포항제철의 등장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포항제철을 시발점으로 산업 구조를 다각화하며 수출 주도형 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1969년에 세워진 포스코가 지난 4월1일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다. 포스코가 만든 강판은 지금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은 물론 미국·중국·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쓰이고 있다. 이제 명실상부한 글로벌 철강 기업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외국 기업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길 만큼 경쟁력을 키웠다.

<시사저널>은 포스코를 만들고 성장시킨 박태준 명예회장을 서면을 통해 인터뷰했다. 그가 지난 4월4일 일본 철강업계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 방문에 나서, 출국 전에 가까스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결국 포항제철을 세웠고, 세계적인 기업 ‘포스코’로 성장시켰는데 비결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신’이다. 요즘 포스코 창립 40주년을 기념해서 ‘사업이 아니라 사명’이었다는 광고가 나오는데, 그것은 과장이나 말장난을 한 게 아니라 진실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철강은 국가 기간 산업이고, 일관제철소가 없이는 절대 빈곤을 극복하고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경제개발계획을 제대로 성공시킬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일관제철소를 건설할 자본·기술·경험이 전무한 상황이었고. 원료도 없었다. 이렇게 4무(四無)의 악조건 속에서 ‘대일 청구권 자금’에 기대어 포항제철소 1기를 세웠고, 1백3만t의 철강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실패를 해? 오로지 ‘제철 보국’과 ‘우향우’ 정신을 새겨가며 제철소를 만들었다. ‘제철로써 보국하자,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몸을 던지자.’ 내가 그렇게 외쳤고, 그것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되고 사명이 되었다. 제철 보국은 애국적 사명이고 우향우는 민족적 사명이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나에게는 그런 사명의식 이외에 어떤 사심도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평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낌없는 지원과 집념 덕분에 포스코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요지의 말을 자주 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분은 일관제철소가 국가 기간 산업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했다. 그러니 포스코에 대한 생각이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의 지원 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나를 믿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점이다. ‘저 친구는 엉뚱한 생각 따위는 안 한다, 저 친구는 해낼 수 있다.’ 그분은 이런 전폭적인 신뢰를 나에게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가능했지. 그분 리더십의 본질이라….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지만, 나는 빈곤 타파와 경제 부흥에 대한 시대적 소명의식과 확고한 신념이라고 본다. 리더십의 본질은 그런 소명의식과 신념을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힘이지.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의 근대화는 아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제철소를 지을 때 수많은 난관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늘 난관이 있었지만, 초기가 가장 혹독했다. 건설 현장에서 3개월 이상 지연된 공기를 한 달 간의 철야 작업으로 만회했던 때와 80% 공사를 해놓고 부실 공사로 판명나 폭파해버렸던 때의 기억 등이 얼른 떠오르고…. 1970년 4월1일 드디어 우리가 착공식을 하고 나서 딱 한 달 지난 5월2일에 별안간 중국이 ‘저우언라이 4원칙’을 선언했지. 간단하게 말해서 남한이나 타이완과 거래하는 해외 기업들과는 무역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일본 기업들이 경악을 했다. 그때 포스코는 일본에 가서 설비 구매와 기술문제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만약 포스코와 관련된 일본 기업들이 거대한 중국 시장을 의식해 우리와 관계를 끊겠다고 나오면 포스코는 착공하자마자 낭패를 당할 지경에 있었다. 우리 정부도 나섰고, 나도 도쿄로 날아가서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사장을 설득했다. 그래서 거의 2주일 만에 이나야마 사장이 저우언라이 4원칙을 수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때 내 속이 숯덩이가 되었다. 그러나 어떤 위기 앞에서도 생사를 걸고 있었기에 흔들림이 없었고, 흔들림이 없었기에 총체적 상황을 실수 없이 통찰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었다.

포스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5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평생을 포스코에 바치다시피 했는데 어느 때쯤 ‘포스코가 제 궤도에 올라선 것 같다’라고 느꼈는지 궁금하다.

초기에 일본 기술단장 아리가 씨가 일을 성실하게 잘해줬다. 그런데 그 사람은 속으로 ‘포항제철이 잘해야 3백만t, 못하면 2백만t 정도 생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심이 공장 위치 계획도에 들어 있는 것을 알고 내가 버럭 화를 내고는 도로부터 두 배로 넓혀 만들었는데, 나는 포항에서만 8백만t 내지 1천만t을 생산할 작정이었다. 우리 임직원 모두가 첫 쇳물의 생산 감격 속에서 자신감을 얻게 되었지만, 1976년에 2기 2백60만t 체제를 완공했을 때는 궤도에 올라섰고, 1978년에 3기 5백50만t 체제를 완공했을 때 반석에 올라섰다고 본다. 중국에서 근대화를 시작한 덩샤오핑 주석이 1978년 8월 신일본제철소를 방문해서 이나야마 회장에게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중국에도 지어달라”라고 부탁하자, 이나야마 회장이 “그건 안 된다. 제철소는 사람이 짓는 것인데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라고 대답했더니, 덩샤오핑 주석이 “그러면 박태준을 수입하면 되겠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들은 바 있다.

포스코가 세계 유수의 제철업체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위치이고, 또 계속 강점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포스코의 경쟁력이 세계 정상에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이 해마다 확인해주고 있다. 강점을 계속 유지하려면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야 한다. 포스코의 전통에는 미래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과감한 결단도 다 들어 있다.

포스코 창립 당시 공사(公社) 체제를 원했던 박 전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주식회사 체제를 채택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포스코를 공사로 하느냐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하느냐, 이 문제를 놓고 창립 직전에 박정희 대통령과 세 차례나 토론을 했다. 1968년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공사는 국영 기업 형태니까 정부의 재정 지원이나 조세 감면 혜택을 받는 등 장점이 있었지만, 관료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걱정했다. 주식회사는 공사의 장점을 단점으로 안아야 하지만 경영 효율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는 그런 장·단점을 모두 따져봤지만 무엇보다 책임경영의 필요성과 수출 문제를 중시했다. 박대통령은 세 번째 토론에서는 “일본을 보아도 명치 30년 이후 세워진 제철소들은 50년 이내에 적자를 면치 못했다. 자네는 어쩌려고 그러나? 종합제철특별법을 제정하고 단서 조항에 정부 감사 기관이 감사해 어쩔 수 없는 적자는 정부 예산으로 보증한다고 해둬야 자네가 무사할 것 아닌가?”라고 걱정을 했다. 감사한 배려였다. 나는 “그런 단서 조항이 국영 기업 최고 관리자의 책임의식을 희박하게 만들고 적자의 중요한 원인이다. 모든 책임을 맡겨달라”라고 반대했다. 수출 문제는 뭐냐? 나중에는 미국 같은 나라에 수출도 해야 하는데 국영 기업으로 가면 까다로운 규정에 걸리게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점도 말씀을 드렸다. 결국 그분이 “임자한테 졌어”라고 하셨고, 포스코는 처음부터 상법상 주식회사로 출범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대통령 초청 청와대 원로회의에도 참석했는데 새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새 정부는 ‘선진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데,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반 위에서 그것을 넘어 선진화로 나아가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본다. 좋은 방향이다. 선진화가 5년 안에야 되겠는가? 10년, 20년을 설계해야 한다.

조만간 고로 방식의 현대제철소가 완공된다. 국내 제철업계에도 복수 경쟁 체제가 생기게 되는데 현대제철의 등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진의 현대제철소에 가본 적이 없고 스터디도 없어서 평가할 입장은 못된다.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잘 되면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유럽이나 인도, 미국 등에서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 제철 사업자가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전략을 취하는 게 옳다고 보는가, 아니면 조선소 인수 등 인접 업종에 진출해 업종을 다각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는가?

기본적으로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해외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들을 원만하게 성공리에 완수하고 원료의 안정적 공급 체제를 확보해야 한다. 창립 50주년인 2018년에 매출 10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경영 다각화가 필요하다. 현재는 에너지 쪽으로 나가 있다. 경영 다각화는 내가 있을 때부터 추진한 것이다. 광양제철소 준공을 앞두고, 그러니까 25년 만에 2천100만t 체제로 들어서는 것을 앞두고 경영 다각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것인데, 많이 늦어졌다.

철강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장 속도가 무척 빠르다. 중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이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포스코가 계속 앞서 나가리라 보는가?

덩치의 힘이라는 게 막강하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큰 덩치와 작은 덩치가 경쟁을 한다, 이때 작은 덩치가 이기는 방법은 기술력에서 앞서고 동작이 재빨라야 하지 않겠나? 같은 이치다.

최근 대법원이 타이거풀스 사건과 관련해 당시 포스코 경영진에게 유죄 원심 확정 판결을 내렸다. 창립 과정부터 정치적인 외풍 차단에 철저했던 박명예회장 입장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남다른 소견이 있을 듯싶다.

타이거풀스 사건의 속사정은 정치 권력과 관계된 것인데,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직·간접으로 관련된 포스코 경영진이 사과하는 모습과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관련 경영진은 ‘잘못한 게 없다’고 해왔다. 무엇보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이 옳은 판결을 내렸다. 이제라도 그 사람들이 사과하는 모습,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평생 품고 지내는 좌우명이나 신념이 있다면?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이것이 필생의 좌우명이다. 우리 세대의 젊은 시절은 식민지, 전쟁, 폐허, 빈곤으로 점철되었다. 나는 한국전쟁 때 청년 장교로서 사선을 넘나들며 청진 너머까지 북진도 했었다. 단지 운이 좋아서 무사히 살아남았는데…. 번듯한 일류 국가에 살아보는 것이 지금도 내 소원이다.

건강 유지를 위해 평소에 하고 있는 특별한 비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특별한 게 없어서 미안하다. 아, 특별한 게 하나 있다면 집사람의 잔소리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적게 드시오, 마시지 마시오, 이런 잔소리를 잘 듣는 척하는 거지.

파이낸스센터에 사무실도 내고 활동하는데 요즘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눈에 흙이 들어가고 귀신이 되어도 포스코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책도 읽고, 인연이 깊은 사람들과 만나서 세상 걱정도 하고, 그렇게 소일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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