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중 사망 사고 때 늘 ‘프로포폴’이 있었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4.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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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취 사망 원인 조사 중 드러나…최근 성형수술 중 사망과도 관련…수면 내시경 검사 때도 사용해

 
지난 2006년 경찰대학교에 수석 입학한 윤홍장씨(20). 윤씨는 치아 교정을 받기 위해 전신마취를 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윤씨가 턱관절 교정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ㅇ치과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1월9일. 가족들은 윤씨가 수술 전날 잠을 2시간 밖에 못 잤고, 마취 전에 링거를 맞을 때도 현기증이 나서 수술을 미루자고 했으나 병원은 수술을 강행했다고 한다. 윤씨는 전신마취 도중 갑자기 폐경련을 일으켜 근처 강남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지난 3월31일 짧은 생을 마감했다.
강남성모병원이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선행 사인 ‘미상’, 두 번째 사인 ‘저산소증 뇌손상’, 최종 사인 ‘다발성 장기 부전’이다. 사망진단서로 보면 윤씨의 사망 원인은 미스터리다. 가족들은 건강하던 윤씨가 턱관절 수술을 받으려다 사망한 것에 대해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병원의 잘못에 의한 의료 사고가 분명한데도 사인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윤씨의 가정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되다시피 했다.
<시사저널>은 ㅇ치과에서 작성한 윤씨의 챠트 기록을 입수해 사망 단서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취기록지에서 사망 원인을 추정할 만한 단서를 찾았다. 수술 당일 작성한 윤씨의 마취기록지에는 전신마취에 사용한 정맥마취제가 ‘프로포폴’이라고 적혀 있었다. ㅇ치과에서 윤씨에게 프로포폴 12cc를 주사한 후 20분이 지나자 갑자기 혈압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취 전에는 120/70을 유지하던 것이 70/40까지 떨어졌다. 생명이 위급해지자 ㅇ병원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ㅇ치과병원은 업무상 과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치과 치료를 받다가 숨진 것은 윤씨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5년 5월에도 충치 치료를 받던 윤 아무개양(5세)이 숨졌다. 충남 천안의 ㄷ대학 치과병원에서 전신마취 뒤 몸이 차가워져 응급실로 옮겼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다. 병원에서는 전신마취의 위험과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윤양이 숨진 대학의 치과병원은 윤씨가 한동안 치과 치료를 받던 곳이다. 윤씨를 ㅇ치과에 소개해준 것도 ㄷ대학 치과병원 의사였다. <시사저널>은 지난 2000년 이후에 전신마취와 관련한 사망 사고의 원인을 조사해보았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성형수술 중에 발생한 사망 사고에도 프로포폴이 관련되어 있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과 학계에서는 마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병원의 허술한 마취 인력, 빈약한 마취 시스템 등을 꼬집는다. 그러나 정작 수면 마취에 사용한 마취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지난 2월에는 20대 여성이 성형외과에서 턱 수술을 받은 직후 숨졌다. 서울 강남 ㅁ성형외과에서 턱관절 절개 수술을 받은 김 아무개씨(20)가 전신마취를 한 상태에서 수술 직후 숨졌다. 이때 ㅁ병원도 “마취 전 검사를 철저하게 했고, 수술 결과도 좋은 편이다”라면서 사망 원인을 짐작하지 못했다. 성형외과는 성형수술을 위해 먼저 프로포폴을 정맥 주사해서 수면을 유도한 후 수술 부위에 국소마취를 한다. 만약 수면유도가 안 될 때는 더 많은 양을 투여하는데 부작용 위험이 뒤따른다. 성형수술 중에 사망한 사망자들의 증상도 하나같이 비슷했다. 전신마취-호흡곤란·혈압저하·심장마비-중태-사망 순이었다. 프로포폴을 사용한 후 발생하는 전형적인 부작용 증상이다.
전문가들은 성형수술 중 일어나는 사망 사고는 거의 전신마취에 의한 쇼크사라고 판단한다. 성형수술의 경우 과다한 출혈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전신마취로 인한 쇼크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전신마취에 쓰인 마취제가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성형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환자들의 면면을 보면 사각턱 교정, 가슴 성형, 지방 흡입술 등의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심지어 주름 제거 수술, 쌍꺼풀 수술 등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도저히 생명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수술을 받다가도 얼마든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작용 발생시 해독제 없어 ‘죽음의 마취제’로 통해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 자주 이용하는 수면 내시경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면 내시경 검사 때에도 수면 유도제로 ‘프로포폴’을 빈번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수면 내시경을 받다가 사망한 환자들에게 사용한 수면 유도제도 대부분 ‘프로포폴’이었다.
지난 2003년에는 서울 강남의 내과병원에서 위 종양 제거를 위해 수면 내시경 치료를 받던 오 아무개씨(56)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숨졌다. 이 병원에서는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한 것이 사망 원인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 경남 통영에서는 위 수면 내시경을 받던 40대 주부가 호흡 곤란으로 2시간 만에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주부한테 사용한 마취제도 역시 프로포폴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재 일선 병원에서는 수면 유도제로 프로포폴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미다졸람, 케타민 등의 마취제가 있으나 프로포폴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성형외과 의사들에 따르면 성형외과에서 사용하는 수면 마취제로는 프로포폴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개인 병원은 80% 이상 프로포폴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면 내시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프로포폴은 깊은 수면에 빠지면서 빠르게 깨는 특징이 있다. 또 주사 후 10분 정도 지나 깨어날 때 구역질과 두통 등도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다 보니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유치해야 하는 병원에서는 미다졸람보다 프로포폴을 선호하는 편이다. 수면 내시경은 물론 성형외과, 치과, 산부인과 등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프로포폴에는 심각한 부작용과 위험이 뒤따른다. 마취 효과와 치사량 사이의 폭이 아주 좁다. 때문에 적정 사용량을 조금만 초과해도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환자의 호흡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심폐 기능이 나쁘거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혈관 확장이나 쇼크가 올 수 있다.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자, 심한 호흡기 질환자, 폐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고혈압이 있는 사람 등은 가급적 전신마취를 피해야 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포폴에 의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경우 해독제가 없다는 것이다. 미다졸람은 해독약이 있지만 프로포폴은 없다. 그러다 보니 열에 아홉은 사망에 이르는 ‘죽음의 마취제’로 통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마취 사고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소견은 어떨까. ‘프로포폴’이 마취 사고 사망자의 직접 사인인지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전석훈 법의학과장은 “통상적으로 의료 사고는 2~3년 동안 당사자들 간에 분쟁을 한다. 우리가 어떤 의견을 내면 분쟁의 소지가 있고 그에 따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국과수는 이미 프로포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국과수가 학계에 보고한 ‘의료 행위 중 프로포폴 투여와 관련되어 사망한 사건의 부검 예’를 보면 프로포폴 투여와 관련한 4명의 사망자를 부검한 결과 위 내시경 검사 직후 사망(64·66·남자), 성형수술 중 사망(39·여), 임신중절 수술 직후 사망(27·여)했다.
국과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여 사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부검 예를 보고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전신마취 후 발생한 사건에서 프로포폴을 사용했을 경우 치명적인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도 프로포폴을 투여한 후 오한, 고열, 통증을 비롯한 급성열성 증후가 보이면 즉시 패혈증에 대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의료진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일선 병원 의사•간호사 ‘프로포폴 중독’도 심각

한편 일선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들의 프로포폴 중독도 심각하다. 지난 2003년에는 인천에서 20세의 간호사가 프로포폴 중독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 간호사는 링거에 전신마취제를 다량으로 섞은 후 수액 줄을 이용해 자신의 팔에 꼽아 투입되도록 했다. 마취제의 용량이 많아 방바닥에 누운 채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 소재 ㅎ외과에서는 당직 근무 중이던 간호사 ㅂ씨가 프로포폴 등 마취제를 자신의 팔뚝 등에 60여 차례 투약해온 혐의로 불구속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서는 마취과 의사가 프로포폴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동료 의사가 귀띔해주었다. 인터넷 의료 상담 코너에도 마취제 중독을 호소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다. ㅈ씨는 비뇨기과 조무사로 근무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수면 마취제에 중독되었다며 상담을 했다. ㅈ씨에 따르면 “남자친구가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면 마취제로 자신에게 정맥 주사를 놓는다. 수면 마취제를 남용한 후부터는 금방 말한 것조차 기억을 잘 못한다. 지금도 계속 그 마취제를 맞고 싶어한다”라며 마취제 남용이 몸에 이상을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마취과 의사들에 따르면 의사나 간호사들이 마취제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보니 ‘피로 회복’을 위해 사용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한 번 마취제에 맛 들면 심리적인 의존성이 강해져 반복적으로 투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중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포폴을 투약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환각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다만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 지역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수면 클리닉’ ‘수면 센터’ 등에서도 수면 유도제로 ‘프로포폴’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마취제의 오·남용 등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향정신성의약품 품목에는 프로포폴이 빠져 있다. 의료계에서는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면 시술하는 의사는 사용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잠금 장치가 있는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병호 대한마취과학회 홍보이사는 “프로포폴이 위험한 약인 것은 사실이지만 향정신성의약품 지정 등의 공식 의견은 학회 회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다만 약은 의사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약을 얼마나 쓰느냐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의 적절한 처방에 의해 시술되는 것이다. 이것을 규제·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신마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앞서 국과수가 제시한 4건 사례의 공통점은 개인 의원에서 의료 행위가 이루어졌고, 의료 행위를 하는 중에 마취과 의사가 없었으며, 담당 의사가 간호사만 입회시킨 상태에서 의료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고 윤홍장씨가 수술을 받으려고 했던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을 보면 일단 병원 선택이 중요하다. 개인 병원은 병원에 전문 마취의가 상주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때그때 필요할 때에만 부르는 출장 마취를 주로 이용한다. 이런 출장 마취사의 경우 마취 시술한 뒤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아주 위험하다. 가급적 의료진과 의료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놓은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또 전신마취 전에 ‘마취 청약서(마취 동의서)’를 쓰게 되는데 이때 합병증과 후유증 약물 등에 대해 꼼꼼히 물어야 한다. 대다수의 병원은 형식적으로 말해주거나 아예 사인만을 요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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