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 없는 미분양률 ‘공든’ 아파트 무너질라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5.2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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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 악화로 중견 건설사 도산 잇따라…하도급 업체도 ‘휘청’

ⓒ시사저널 황문성
“말그대로 최악이다. 아파트 분양률은 떨어지고 건설업체 부도율은 치솟고 있다.”(건설협회 관계자 ㄱ씨)
“4월에만 11개 건설사가 부도를 냈다. 자고 일어나면 어떤 회사가 무너지고, 또 어떤 회사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현실이다.”(종합건설사 대표 ㅇ씨)

건설업계에 한동안 잠잠했던 ‘괴담’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자금난 악화에 시달리는 중견 건설사들의 ‘부도 도미노’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덩달아 하도급 협력업체들도 속속 문을 닫아 연쇄 부도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부도 업체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6.8% 증가한 26개사로 집계되었다. 최근 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지난 4월의 경우 국내 도급 순위 1백60위대와 1백80위대의 신구건설과 해중건설이 잇달아 부도를 냈다. 4월 한 달간 문들 닫은 업체만 11개사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5%나 증가한 것이다.

조준현 대한건설협회 균형정책실장은 “정부의 최저가 입찰제 확대와 물량 부족에 따른 업계의 출혈 경쟁, 미분양 아파트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방 건설업체의 경우 미분양률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기업 도산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학중 세중코리아 대표도 “최근 부도난 해중건설이나 우정건설의 경우 하도급 업체만 100여 개에 달한다. 종합 건설업체의 부도는 하도급 업체의 자금난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당분간 어려움이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2008년 2월 현재 미분양된 주택은 13만여 호로 지난 1996년 6월(1백30만5백29호) 이후 11년8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분양 주택의 증가 속도가 워낙 빠르고 통계상 드러나지 않은 물량도 적지 않아 미분양률이 알려진 것보다는 두 배 이상 높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눈에 띄는 사실은 수도권 미분양률이 점차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은 미분양 사태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통했다. 지방의 경우 미분양 사태가 속출했지만 일부를 제외한 수도권 아파트 시장의 수급은 비교적 원활한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건설 경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월 수도권의 미분양 주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백50.2%나 급증했다. 특히 경기도 지역의 경우 미분양 증가율이 5백30%대에 이른다”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건설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심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푸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체 대표는 “바로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 신구건설이나 해중건설에 이어 어떤 업체가 부도날 것인가 하는 소문이 실명과 함께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자체적으로 조사한 건설기업 체감경기는 3월과 4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4월의 경우 최근 2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상 봄철에는 체감경기 지수가 상승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수도권에서도 미분양 사태 속출…올해 2백여 곳 부도 추정

한 중견 건설업체 임원은 “그동안 건설업계의 동반 부도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부풀리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체감경기마저 하락하면서 업계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상황은 상장 업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된 건설업체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재무 구조는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경기 침체에도 2007년 상장 건설업체의 매출이나 공사 수입은 전년 대비 10% 안팎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분양 수입은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액수를 기록했다”라고 말했다.

김연구위원은 그 원인으로 건설업체의 부채 증가를 꼽고 있다. 그는 “부채 증가가 이자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이자 비용이 전년 대비 18.7%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5대 상장 건설업체와 나머지 건설업체 간의 양극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서는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는 건설사를 위한 이른바 ‘대주단 자율 협약’을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건설회사에 대한 채권 행사를 금융권이 1년간 유예하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다. 신규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지만 1년간 채권 행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건설사는 자금 압박을 덜 수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미분양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상품인 ‘KB분양도움론’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분양 아파트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건설업체에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이 이번 조치의 목적이다.
그러나 은행권의 이같은 조치들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건설 경기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지원이 없는 채권 유예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분양 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대출도 심사가 강화되면서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건설 사업자들이 찾아가는 곳이 결국은 명동이다. 그러나 명동에서도 이미 국내 건설업체의 어음을 받지 않고 있다. ‘개점 휴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어음을 받아도 10% 이상의 높은 이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건설업체의 자금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지적이다.

한치호 중안인터빌 이사는 “건설업체의 부도가 잇따르면서 어음 자체가 유통되지 않고 있다. 우량 건설업체 또한 신용도가 하락하면서 리파이낸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건설업계의 이같은 악순환이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분양 주택으로 인해 묶여 있는 자금 규모는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설업계가 이 돈을 갚지 못하는 탓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내준 금융권이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PF를 받은 중소 건설업체는 분양 수익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신규 분양이 저조해지면서 이들 부동산 대출의 상환에 차질이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건설공제조합 관계자는 “건설업체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올해 부도 업체만 2백여 곳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시장 상황 조사나 신용평가 시스템 다면화 등의 조치가 불가피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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