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연해주에 대권 씨 뿌리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0: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몽준 의원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연해주 진출에 부쩍 공을 들이는 것을 두고 ‘통일 대통령’을 꿈꾸는 정의원의 대권 프로젝트가 가동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순진리회 제공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해외 식량기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연해주와 같은 지역의 땅을 장기 임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의 노동력도 이용할 수 있고, 운반 거리가 짧기 때문에 북한에 직접 지원할 수도 있다. 쌀값이나 사료값이 너무 올라서 대북 지원을 하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식량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궁극적으로 통일 이후에 대비해 7천만 민족이 먹고살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15일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연해주 프로젝트’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대통령의 ‘연해주’ 발언 이후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관련 파일을 들추어보기 시작했고, 한국농촌공사는 남미농장 이관팀을 확대 개편해 ‘해외농장개발팀’을 발족시켰다. 이미 연해주 현지를 답사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은 연해주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 홈페이지에 올리며 토지 관련 전문 변호사들과 연계해 이곳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법률 제도 등을 소개하고 있다.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얼굴을 보이는 기업인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이대통령이 연해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었다.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은 “이대통령이 남한의 기술과 러시아의 땅,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이 1984년이다”라고 말했다. 이대통령이 쓴 <신화는 없다>라는 책에도 연해주 이야기가 나온다. ‘신고구려 시대의 출발지, 연해주’라는 글에서 이대통령은 “내 경제통일론은 연해주에서 출발해 남북 경협을 지나 동북아경제권으로 귀착된다. 이 경제통일론은 민족의 미래, 한반도의 21세기에 다름 아니다”라고 썼다. 그의 연해주 프로젝트가 단순히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경제통일론’이라는 원대한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대목도 나온다. “나는 북방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연해주를 떠올린다. 소련과 경제 협력을 추진할 때 우선적으로 연해주 지역의 삼림에 관심을 쏟았다. 1989년 10월 연해주 임업생산연합과 현대종합목재가 임산업 합작회사 설립에 관한 합의를 작성했다. 이 사업을 통해 많은 양의 목재가 우리나라와 제3국에 수출되었다. 이 임업 사업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끌던 소련 정부가 외국 기업과 합작한 사업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사례로 기록되었다.”

‘정주영 - 이명박’ 조합에서 ‘이명박 - 정몽준’ 조합으로

ⓒ대순진리회 제공
당시 이대통령은 고 정주영 회장을 모시고 ‘경제 북방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수시로 러시아 일대를 찾았다. 레닌그라드의 알루미늄 제련소 건설, 연해주 임업 합자회사 설립 등이 그런 결과물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연해주 일대 벌목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연해주를 익혔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삼림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정회장이 1992년 대선에 출마하는 쪽으로 관심을 옮기면서 두 사람이 추진했던 ‘경제 북방 정책’은 막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고 정회장은 세상을 떠났고 ‘현대건설 이명박 회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 연해주를 무대로 움직였던 정주영-이명박 조합은 2008년 들어 이명박-정몽준 조합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인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를 이어 실현해가는 형국이다. 북방 진출에 대한 이대통령의 오랜 소망과 대권을 꿈꾸는 정의원의 야심이 연해주를 모태로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정의원이 10.80%의 지분으로 최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은 지난 2월21일 금융감독원에 사업 목적을 추가하는 공시를 했다. ‘농업용 기계 장비 및 관련 부품의 제조·판매·수리업’ ‘국내·외 임업, 산림 사업’ ‘나무병원, 산림토목, 자연휴양림 조성 사업’ ‘국내외 농업, 축산업 등 식량 자원 연구·개발 및 관련 부대 사업’ ‘국내외 식량 자원 생산, 유통, 가공, 판매, 수출 및 영농 사업’ 등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세계 최대의 조선 기업인 현대중공업이 낸 공시는 즉각 정·재계의 관심을 끌었다. 배를 만드는 기업이 식량 생산·유통에 나서겠다는 공시를 했으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당연했다.

확인 결과 현대중공업은 이미 연해주에 진출했다. 전무를 팀장으로 10여 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현대호텔(현대중공업 소유이다)을 베이스캠프 삼아 움직이고 있다. 연해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현대중공업이 연해주에 몇 개 팀을 파견했다고 알고 있다. 주 정부를 접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10개 농장을 임차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주정부에 전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중앙 정부의 권력 구조와 변화와 맞물려 사정 작업이 진행되는 등 정치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변수가 있다. 연해주 주지사도 최근 가택 수색을 당했다. 현대중공업도 이런 상황을 알고 여러 가지 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현대중공업측, 주 정부에 토지 임대 요청했다”

ⓒITAR-TASS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 김무영 총영사는 “현대중공업측에서 주정부에 토지 임대 요청을 했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주 정부가 관련 리스트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아직 현대중공업측이 제공받지는 못한 것으로 안다. 현대중공업이 올해부터 농사를 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토지는 확보하지 못했고 부대 시설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연해주의 경우 대부분 정부로부터 49년 동안 땅을 임차해서 사용하는데 3년 이상 농사를 안 지으면 주 정부가 언제든 회수할 수 있다. 연해주 현지에서는 현대중공업이 15만ha에 달하는 토지를 임차하려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연해주의 한 사업가는 “현대중공업이 한 외국 명예대사의 부인이 소유한 5천ha에 달하는 땅을 구하기 위해 교섭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연해주에 무성하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이 블라디보스토크 앞에 있는 루스키 섬에 36홀 골프장을 짓고 2012년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대형 크루즈선을 제공해 숙박 문제를 해결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연해주 전문가는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를 치르기 위해 5조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손님이 3만5천명이 오는데 숙박 시설은 여인숙을 포함해 1천5백석밖에 안 된다. 현대중공업이 크루즈 여객선을 바다에 띄워 숙박 문제를 해결한다는 얘기가 있다. 발표는 안 되었는데 그렇게 하기로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무영 총영사는 “골프장 얘기는 처음 듣는다. 러시아 정부는 루스키 섬에 호텔과 프레스센터, 컨퍼런스홀 등을 지을 계획이다. 그래도 숙박 시설이 부족하면 선상 호텔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APEC 정상회의가 끝나면 이들 시설을 대학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왜 사업 목적을 추가하면서 느닷없이 연해주에 진출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내용을 알아보겠다”라던 현대중공업 홍보실 관계자는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라고 답변했다. 정의원의 측근은 “현대중공업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용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신 재생 에너지 신규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라는 얘기도 있으나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연해주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분명한 것은 현대중공업이 ‘연해주 식량’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현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의 초점이 땅을 확보하는 데 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한 연해주 전문가는 “현대중공업은 연해주에 기반한 국제 곡물회사를 꿈꾸고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연해주에는 이미 대순진리회가 운영하는 아그로상생농장과 남양알로에농장 그리고 최근에는 삼성 휴대전화 부품 업체인 인탑스가 진출해 있다. 대순진리회의 경우 13만ha에 달하는 땅을 확보했다. 지금 농사를 짓는 것은 3만ha지만 점차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대순진리회 김진원 총무부장은 “러시아인 1천2백명을 고용하고 있다. 축산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공격적으로 땅을 확보하는 인탑스의 경우 50억원 정도를 투자해 1만8천ha 정도 규모의 농장 세 개를 확보했다. 앞으로 부대 시설과 농기계 등을 확보하는 데 6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치권에서는 정몽준 의원과 현대중공업의 관계, 연해주에 진출한 시기, 과거 역사 등을 종합해볼 때 현대중공업의 연해주 진출은 이명박 정권과 무언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확정된 뒤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확정된 뒤 연해주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원이 평소 통일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는 점도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한국-러시아-북한 삼각틀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에 적극 나선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정의원이 이른바 ‘통일 대통령’을 꿈꾸는 대권 프로젝트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아버지인 고 정주영 회장이 개척 의지를 갖고 도전했던 곳이다. 연해주에서 사업을 하는 한 인사는 “현대중공업의 연해주 진출은 ‘이명박판 북방 정책’과 연결되어 있다”라고 단언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재계에서는 정의원의 ‘정주영 이미지’ 마케팅이 화제였다. 현대미포조선소 설립 때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을 그대로 방송한 현대중공업의 광고와 현대건설 인수전에 현대중공업이 뛰어든 것, 정의원이 올 2월 고 정회장의 아호를 딴 ‘아산정책연구원’을 창립한 것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어떻게 보면 현대중공업의 연해주 진출도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연합뉴스

이대통령 발언 이후 한국 기업인 발길 늘어

현대의 한 관계자는 “정회장은 축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마케팅만으로는 정치적으로 성장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모태였던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가의 정통성을 획득하는 데 노력한 뒤 그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을 노린다고 볼 수 있다. 연해주 진출도 그런 측면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라고 분석했다. 물론 현대중공업이 풍부한 자금력이 있기 때문에 굵직한 인수전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아 독자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들어 현대중공업의 움직임을 정의원과 곧바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 오너 체제의 특성상 정의원의 허락 없이 어떤 일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대통령의 ‘연해주 발언’ 이후 연해주에는 한국 기업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김무영 총영사는 “과열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대통령의 언급 이후 관심을 가지고 현지를 둘러보거나 문의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기계 회사인 ㄷ사와 또 다른 ㄷ사, 닭고기 회사인 ㅎ사, 휴대전화 부품 업체인 ㅇ사 등이 요즘 열심히 연해주를 들락거리고 있다. 한 현지 사업가는 “냉각시킬 필요가 있다. 분위기가 과열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가는 “특히 현대중공업이 뛰어들면서 지가를 상승시키는 분위기가 있다. 현지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연해주 진출은 어떤 식으로든 남북 관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추진된 것으로 판단된다. 5년 안에 어떤 결실을 맺을지 알 수 없지만 대권 고지를 향해 뛰는 정몽준 의원의 행보와 관련해 남다르게 주목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환경 속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몽준 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연해주에 진출하면서 이미 대권 행보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