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의 ‘침묵’을 무시하지 마라”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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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교수 / “간경화도 문제지만 간암의 주요 원인은 간염”

ⓒ시사저널 박은숙
간은 몸무게의 2%를 차지해 가장 무거운 장기로 알려져 있다. 표면이 매끈하고 선홍색을 띠지만 경화가 되거나 암에 걸리면 울퉁불퉁하고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 70~80%가 암세포로 덮여도 아무런 증세를 느끼지 못해 이른바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간암은 남성 사망률 1위를 차지할 만큼 남성에게 잘 걸린다. 가장이 40~50대 한창 일할 나이에 간암에 걸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간암은 뾰족한 예방책이 없어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간암 치료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보잘것없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이 부러워하는 정도로 발달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외과 교수는 우리나라 간암 치료 기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간전문의다. 한 해 3백건 이상의 간암 수술을 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15시간 이상 걸리는 고난도의 생체 간 이식수술의 대가여서 세계 의학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교수와 김영삼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고창순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쟁쟁했던 의사들이 간암에 걸려 이교수로부터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것은 의료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교수를 만나 간암의 최신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간 하면 술이 떠오르는데, 간암과 술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술과 간암이 서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식사 때 마시는 반주 정도는 간암과 무관하다는 것이 의학적 소견이다. 그러나 20~30년 동안 음주를 하면 간세포가 손상되고 딱딱해지는 간경화(간경변)로 간다. 간경화는 지혈·합성·해독·면역 등 간 기능을 떨어뜨린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서 간은 회복할 수 없는 정도로 손상되고 심지어 간암으로 가게 된다.
간은 알코올을 해독하기 때문에 술과 무관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간은 하루에 1백60g의 알코올을 분해한다. 소주(2홉) 2병·맥주 4천cc·양주 3분의 2병 정도의 양이다.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이라도 장기간 음주하면 간경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남성 음주량을 기준으로 소주 반 병·맥주 1천cc 정도의 알코올을 계속 섭취한다면 간경화에 걸리게 된다. 알코올 도수가 아무리 낮아도 간경화를 일으킨다. 특히 간염보균자가 폭음하는 것은 간경화·간암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간염 보균자는 간암에 걸릴 가능성이 큰가?
간경화보다 간염이 간암의 주요 원인이다. 간염이 없다면 간암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간염 보균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간암에 걸릴 가능성이 100배 이상 높다. 실제 전체 간암 환자의 90%가 간염 환자다. 특히 B형 간염은 간암 원인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B형 간염은 어릴 때 백신을 접종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대신 C형 간염이 점차 늘고 있다. 동양보다 서양에 많은 C형 간염은 주로 혈액을 통해 감염된다. 수혈·마약 주사·문신 등이 대표적이다. 여성들이 귀를 뚫을 때 불결한 기구를 사용하다가 간염에 감염되기도 한다. 간염 보균자라고 해서 모두 간암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중 20~30%가 간암 환자가 된다. 드문 경우이지만 부패한 땅콩이나 옥수수 등에 피는 아스페르길루스라는 곰팡이에 존재하는 아플라톡신 B1도 간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다.


술잔을 돌리거나 여러 사람이 찌개를 같이 먹으면 간염이 전염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술잔을 돌렸다고 다 간염에 전염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 몸의 피부는 일종의 보호막인데 이 보호막이 찢어지면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다. 따라서 입이나 피부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술잔을 돌리는 행위는 금하는 것이 좋다. 치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면 당연히 이런 행위를 삼가야 한다.


간염이 성관계로는 전염되지 않는가?
성관계와 간염은 무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간염을 앓고 있는 남성과 건강한 여성이 성관계를 해도 문제가 없다. 심지어 임신을 해도 별문제가 없다. 다만, 거친 성행위로 성기 등에 상처가 생긴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간암은 어떤 병이고, 증상은 어떤가?
간암은 크게 원발성과 전이성(또는 속발성)으로 나눌 수 있다. 간암의 90~95%는 원발성 간암이다. 따라서 간암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간세포에 생기는 원발성 암을 의미한다.
간암은 남성의 병이라고 할 만큼 남성이 여성보다 4배 이상 많이 걸린다. 뚜렷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성의 발병률이 낮은 것은 여성호르몬이 간암세포에 저항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남성의 경우 주로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에 많이 걸린다.
간 질환의 큰 문제는 70~80%가 암세포로 뒤덮일 때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간이 간암 직전 단계인 간경화로 갈 때까지 20~30년 걸리지만 그때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라고 해야 가슴이 조금 뻐근할 정도다. 상복부 통증, 복부 팽만, 체중 감소, 심한 피로, 소화 불량 등이 느껴지는데 무심코 지나칠 만한 증상들이다. 증세가 심해지면 황달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간암을 예방할 수 없다는 말인가?
아쉽게도 간암에는 이렇다 할 예방책이 없다. 조기 진료가 최선의 예방책이라면 예방책이다. 또 간암 발병의 주요 원인인 간염에 전염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간염이 간암의 주된 원인인 만큼 자녀를 출생한 지 2개월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B형 간염 예방 백신을 접종시켜야 한다. 성인의 경우는 혈액검사로 B형 간염 여부를 확인한 후 필요에 따라 접종을 하면 된다. 성인이 백신을 접종해도 면역항체가 생기지 않는 경우가 5~10%이므로 백신을 접종했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C형 간염 예방 백신은 현재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검사를 통해 간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데.
혈액에서 AFP(Alpha-Fetoprotein) 즉 ‘알파태아단백’이라는 단백질을 검사한다. 이것은 종양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주는 ‘종양표지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이 종양표지자의 수치를 검사하면 간암 환자 10명 중 8명을 가려낼 수 있다. 나머지 두 명은 초음파·CT(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 등 영상 진단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진단법의 경우 정확도가 높아 다른 암과 달리 간암은 굳이 조직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초음파검사는 1㎝ 정도의 작은 암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정기 검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아 10명 중 8명은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경우에 병원을 찾는다. 강조하는데, 간염 보균자이거나 간경화가 있는 사람은 3개월에 한 번씩, 즉 1년에 4회 정도 정기적으로 검진받을 것을 권한다.


간암 판정을 받으면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간암 치료법으로는 간 절제술, 간암 색전술, 고주파열 치료법, 간 이식술, 알코올 주입술 등이 있다. 간암은 다른 장기의 암과 달리 무조건 암과 장기를 잘라내는 치료를 할 수 없다. 간암 환자의 간은 이미 간 기능이 저하된 상태여서 수술로 간을 너무 많이 절제하면 기능에 문제가 생겨 환자가 수술 도중 쇼크사할 수 있다. 간은 최소한 30% 정도는 남겨두어야 한다. 간 절제술을 할 수 있는 환자가 10명 중 3명뿐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간 이식수술은 조기 간암 치료에 적합하다. 또, 가족력이 있거나 간염 보균자라면 다른 치료법보다 간 이식을 권장한다. 약 0.5cm 크기의 조기 암이 발견된 한 환자는 간암 색전술로 완치된 듯했지만 수술 후 7~8개월 만에 온몸으로 암세포가 전이되었다. 이 환자는 간암 가족력이 있었다. 가족력이 있는 간암이나 유전된 간염은 어차피 유전자 변이가 되어 있는 경우이므로 새로운 간을 이식받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간을 받으면 거부 반응이 우려된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많다.
간은 혈액형만 맞으면 이식이 가능한 장기다. 남녀·인종과도 무관하게 간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간이기 때문에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장기를 이식했을 때보다 간을 이식했을 때의 거부 반응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간 이식을 받은 환자가 거부 반응을 일으켜 사망할 확률은 5% 미만이다. 참고로 신장 이식을 했다가 거부 반응 때문에 사망한 환자의 비율은 20%다. 심한 거부 반응이 의심될 경우 거부 반응 억제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평생 먹어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지만 복용한 지 2년 정도 지나면 먹는 약의 양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큰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간 이식수술을 받으러 중국까지 가는 환자들이 적지 않은데.
최근 고 최요삼 권투선수가 장기를 기증한 것이 화제가 되어 간 기증자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현재 간 이식 환자의 99%가 가족으로부터 간을 받는다. 간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가는 환자들이 있는데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간 이식이 무의미하다. 그런데 중국 병원에서는 심지어 20㎝ 이상 크기의 말기 간암도 떼어내고 간 이식수술을 해준다. 이 경우 몸속을 떠돌던 암세포가 이식된 새 간에 다시 자리를 잡아 대부분 재발한다.


간질 환자의 경우 민간 요법에 매달리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은 민간 요법을 쓰거나 건강 보조 식품, 한약을 함께 복용하는 환자들이 있다. 간 기능이 이미 떨어진 상태라면 권장할 만한 일이 못된다. 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독성이 있는데 간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 식품을 먹고 간이 독성에 다 녹아버린 환자도 있었다.


지방간과 간암과의 관계는 어떤가?
지방간과 간암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비만이 지방간의 주원인인데, 체중을 조절하면 정상으로 회복된다. 단, 간에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되면 간 기능이 나빠지므로 바로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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