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사장 퇴진 싸고 KBS ‘노노 대리전’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8.06.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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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사퇴 마땅”, 직능단체 “공영방송 사수가 먼저”

ⓒ시사저널 임영무
정연주 사장 퇴임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KBS 내부의 노노 갈등이 권력과 반 권력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KBS 노조는 정사장의 퇴임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반면, PD협회와 기자협회 등 내부 직능 단체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크게는 KBS 노조와 직능 단체 간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 조직 내부에서도 의견이 서로 엇갈려 극도의 혼란상을 드러내고 있다.

KBS 노조는 정사장의 퇴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노조측은 현재 정사장의 버티기가 계속되면서 조직 내부가 사분오열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물론 정권 차원의 사장 경질 움직임과 선을 긋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정통성을 잃어버린 정사장으로는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다수 사원의 입장을 강조하며 사장 퇴진을 밀어붙이고 있다.

경영협회, 기술인협회, 기자협회, PD협회 등 직능 단체는 노조와는 달리 정사장 퇴진에 집착하기보다는 언론노조,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미디어 장악을 시도하는 정부의 언론 정책을 견제해나가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KBS 기자협회는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소속 회원 4백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53.9%가 “공영방송 사수 투쟁이 중요한 시기에 정연주 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대답했고, 37.8%는 “정사장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적절하다”라고 대답했다. 8.3%는 응답하지 않았다.

양승동 KBS PD협회장은 “노조가 정연주 사장 퇴임에 힘을 쏟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인다.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도 KBS가 나아갈 방향과 정사장 퇴임을 최우선으로 놓고 있는 노조의 노선에 대해 많은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와 직능 단체 대표들 간에도 몇 차례 대화가 있었다. 조만간 방향을 잡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KBS 노조는 공영방송 KBS의 근간을 흔들고 언론을 장악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시도를 인정하면서도 정사장의 퇴진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사장의 퇴진을 원한다는 점에서는 정부와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승규 KBS 노조위원장은 6월11일 열린 공개 간담회에서 “정연주 사장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지난 4년간 달라지지 않았다. 정사장이 여권의 방송 장악 음모에 대항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KBS의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 반대에 대해서도 “정사장 퇴진 운동이 누구를 차기 사장으로 받기 위한 수순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국민이 원하고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사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사장 퇴진과 낙하산 인사 반대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스카이라이프, YTN, 코바코, 아리랑TV로 이어지는 이명박 대선 캠프 인사들의 낙하산 선임을 노조의 힘만으로 막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KBS 내부 갈등에 보수·진보 진영도 갈라져 따로 ‘지원 사격’
KBS 구성원 간의 갈등은 사내 게시판인 코비스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6월16일 PD협회를 비난하는 글의 문서정보와 IP를 추적한 결과 지은이가 같은 것으로 나왔다는 주장이 코비스에 올라왔다. 이에 KBS 노조는 IP 추적이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는 글을 올린 PD가 문서정보가 동일한 것은 맞지만, IP 추적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해명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지난 6월18일에는 KBS PD 10명이 ‘PD협회 정상화 추진협의회’ 발족 성명을 코비스에 올리며 PD협회 집행부가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다는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양측의 입장이 이렇게 첨예하게 맞서면서 보수 진영에서는 노조측을, 진보 진영에서는 반 노조측을 지원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여의도 KBS 본관 앞에는 지난 6월11일부터 촛불을 들고 이명박 정부의 언론 사유화를 비판하는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촉발된 촛불 집회가 이명박 정부 정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언론 정책을 문제시하는 시위대가 KBS로 향한 것이다. 이들은 ‘KBS에 대한 표적 감사 반대’ ‘정부의 방송 장악 반대’ ‘최시중 방통위장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쪽에는 KBS 노조가 설치한 ‘정연주 사장 퇴진’ 구호가 적힌 만장이 내걸려 있다. 만장을 중심으로 보수 진영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고엽제 피해 전우회 등 우익 단체들은 ‘KBS는 편파 방송을 중단하라’ ‘정연주 사장은 퇴진하라’를 외치며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KBS 노조는 촛불 집회와 관련해 “일부 사내 정치 세력들이 편향된 정보를 제공해 순수한 촛불의 의미를 오도하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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