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생명 끊는 약물의 ‘치명적 유혹’
  • 정철우 (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08.07.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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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쿠르트 투수 리오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 나와 퇴출 ‘충격’

ⓒ연합뉴스


지난해 메이저리그는 약물 파동으로 휘청거렸다. 특히 연말에 발표된 미첼리포트(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메이저리그 법무팀)는 무려 87명의 전·현직 선수들이 약물 복용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살아 있는 전설 로저 클레멘스(전 뉴욕 양키스)는 물론 행크 애런의 통산 홈런 기록을 갈아치운 배리 본즈(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얽힌 의혹도 사실임이 밝혀졌다.

그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 프로야구도 결코 약물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얼마 전, 슬픈 예감은 엄연한 현실일 수 있다는 징조가 가까운 일본에서 터졌다.

지난 6월28일 일본야구기구(NPB) 반도핑특별위원회는 “야쿠르트 스왈로스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35)의 도핑 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검출되었다”라고 발표했다. NPB는 곧바로 리오스에게 1년간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고, 야쿠르트 구단은 리오스를 퇴출시켰다. 리오스는 지난해부터 약물 검사를 실시한 일본 프로야구에서 복용 혐의가 드러난 세 번째 선수다. 소프트뱅크 투수 릭 거톰슨은 지난해 8월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나타내 20일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야수 루이스 곤살레스는 올 초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 1년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뒤 퇴출되었다.

한국 활동 시절도 약물 복용 의심하게 해

리오스는 잘 알려진 대로 한국 무대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던 선수다. 2002년 KIA에 입단한 리오스는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며 A급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5년 두산으로 팀을 옮긴 뒤에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22승을 거두며 1999년 정민태(당시 현대) 이후 8년 만에 꿈의 20승 고지를 점령한 바 있다.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 투수가 된 것이다. 리오스는 한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에 진출해 또 하나의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다.

그런 리오스의 금지 약물 복용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리오스는 약물 적발 이후 “지난해 12월 허리 통증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계)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리오스의 말대로라면 한국 무대 성적은 약물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약물 복용은 3개월 정도가 지나면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리오스의 소변에서 검출된 하이드록시스타노조롤(hydroxystanozorol)은 통증 치료제에서는 검출되지 않는 근육 강화 계열 스테로이드로 밝혀졌다. 따라서 리오스의 변명은 그다지 신빙성이없는 상황이다. 확증은 없지만 리오스가 한국 무대에서도 약물을 복용했을 것이라는 심증은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리오스는 한국에서 활약할 당시 부친상으로 시즌 중 미국을 다녀온 뒤에도 곧바로 마운드에 올라 완봉승을 거두거나 9회까지 1백50km의 최고 구속을 기록하는 놀라운 스테미너를 과시했었다. 또한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는 SK와 몸싸움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모두 약물 복용을 의심하게 할 만한 요소들이었다.

약물 복용은 선수의 기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결국 체내의 면역 능력과 골밀도 등을 떨어뜨려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거짓으로 만들어낸 신화는 야구 팬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 프로야구선수협회 “전수 검사 임하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프로야구계는 약물 복용에 너무 관대했다. 지난해부터 도핑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실시하고 있는 도핑 테스트 방식은 ‘1. 불시에 일제히 실시하며, 2. 대상자는 팀별로 무작위 선출된 3명으로 한다’다.

외견상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3명 안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데다 검사 이후에는 추후 검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 놓고 약물을 복용해도 된다는 뜻이 된다. 또한 소변 검사 방식도 수박 겉핥기식이다. 시료를 선수에게 직접 맡긴 뒤 화장실에서 받아오는 형식이다. 얼마든지 다른 소변을 받거나 이물질을 첨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삼성 포수 진갑용이 도핑 테스트(국제 대회 출전을 위해 실시했음)에서 양성 반응을 보이자 “후배 김상훈이 대표팀에 뽑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변에 이물질을 섞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일부러 적발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반대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변칙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소변을 받는 현장까지 철저한 검사가 이루어지며 불시에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실상 모든 선수들이 대상이 돼 조사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한 번 조사가 끝나면 재조사가 없기 때문에 이후 경기에서는 얼마든지 약물을 복용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포스트시즌이 열린 뒤에는 몇몇 선수들에 대한 약물 복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떤 팀의 경우 약물 공급 브로커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뉴시스


프로야구선수협회는 얼마 전 “필요하다면 전수 검사에 임하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전체 선수들이 도핑 테스트 대상이 되는 것을 수용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전까지는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다”라는 이유로 전 선수 대상 검사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검사 이후 다른 스케줄이 없을 경우 얼마든지 약물에 손을 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철저하고 반복된 조사를 통해 원천적으로 유혹을 제거하는 것이다. 한 프로야구 선수는 “약물 복용은 도덕적으로 매우 나쁜 행동이다. 그러나 약물에 대한 유혹은 꼭 그 선수의 욕망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약한 선수일수록 손을 대기 쉽다. 때문에 철저한 규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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