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배지’를 줄여야 지방의회가 산다
  • 이재희 (화성의정지원센터 원장.행정학 박사) ()
  • 승인 2008.07.22 13: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각종 추문과 뇌물로 구설에 오르는 의원들은 ‘장식 의원’…반성 시스템ᆞ학습 프로그램 만들어라쓴소리
지난 3월, 경기도의회 의원 일부가 미국의 나이키 본사를 방문하던 중 동상의 가슴과 국부에 손을 얹고 사진 촬영을 했다가 망신을 산 적이 있었다. 이들의 미국 방문 목적은 ‘국제 친선교류 확대와 우호 협력 증진’이었다. 5월에는 태국으로 외유성 연수를 간 충주시의회 일부 의원 중 네 명이 현지 여성과 불법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태국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급기야 7월에 이르러서는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에 금품이 난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귀환 의장이 30명이나 되는 같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수표를 돌렸다. 김의장은 지난 4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 동료 시의원 30명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각각 100만원씩 모두 3천만원을 건넨 혐의다. 서울시의회는 1백6명의 의원 가운데 한나라당이 100명을 차지하고 있다. 견제가 없는 일방 독주의 움직임이 결국, 부패로 연결된 것이다.

이 사건은 중앙 정가를 뒤흔들어놓았다. 야당은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이 연루되었다면 “몸통을 밝혀라”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한나라당은 박희태 대표가 사과까지 해야 했다. 탈당 권고, 나아가 제명까지 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추이에 따라 국회의원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기세다. 실제 뇌물을 받은 지방의원들 중에는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받은 경우도 있어 단순한 시나리오만은 아니다.

미국 돌아 태국 찍고 서울 한복판에서 절정 보여줘

신문 기사를 보기조차 민망하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황색언론의 한쪽 구석에서나 볼 수 있는 음습한 추문이 주요 일간지를 장식했다. 미국 돌아 태국 찍고 마침내 서울 한복판에서 절정을 쏘아올린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지방의원들의 추문이 그동안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의정 활동을 하면서 지역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해온 많은 지방의원은 물론, 작고 불편한 일들을 마다하지 않은 일선 공무원들의 가슴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한 아름씩 안겨주고 있다.

왜 해마다 지방의원들의 추문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이들 일부 의원은 주민의 대표자도 정책 전문가도 아닌 그냥 ‘배지 하나’일 뿐, 지방의회가 무엇이며, 의원으로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의원의 유형은 편의상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물론 하나의 유형이 한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향으로 볼 때 그런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폼만 잡는 ‘장식 의원’, 정치적인 도약을 노리는 ‘정치 의원’,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정책 의원’,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원 자리를 유지하는 ‘이권 의원’ 등이다.

정치 의원은 주로 지역 주민의 손을 잡고 함께 돌아간다. 정책 의원은 단체장의 손을 잡고 돌아가고, 이권 의원은 공무원의 손을 잡고 돌아간다. 이들 유형의 지방의원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손’에 잡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는다. 필요한 손을 먼저 잡고 같이 돌아간다.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와 긴밀하게 ‘밀착’한다. 그러나 ‘장식 의원’은 소용돌이 속으로 그냥 빨려들어간다.

이 ‘배지 하나’가 바로 ‘장식 의원’이다. 흔히 이권 의원들이 불미스런 일을 저지를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권 의원은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계산하고 자기를 관리한다. 생각 없는 ‘배지 하나’가 많으면 지방의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지방의회가 갈 길은 분명하다. 생각 없는 의원들의 수가 줄어들도록 해야 한다. 의회가 스스로 그 생각 없는 구성원들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각각 지향점은 다르지만 자기 목표가 분명한 의원들이 많으면 지방의회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연합뉴스
오로지 지역의 발전만 생각하는 정책 의원들만 있다고 그 지역이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단체장과 공무원의 기능이 사라져버린다. 지역 주민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정치 의원만 있어서도 안 된다. 지역 주민 이해의 단순 총합이 그 지역의 발전과 국가의 이해로 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유형의 의원들이 적정한 비율로 존재할 때 의회는 그 기능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다. 의원들은 그 자체로 지역 주민의 이해와 성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원의 출신 성분과 성향이 다양할수록 지역 주민·단체장·공무원 간의 협치(協治)를 매개하는 역할을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생각 없는 의원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일까. 또 어떻게 하면 지방의회가 지방의원들에게 목표 의식을 가지도록 할 수 있을까. 생각 없는 의원들이 사라지지 않는 책임은 정당에 있다. 정당의 이념을 가장 일선에서 구현하고, 그 책임을 분명하게 지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이고 지방의원이다. 정당의 불합리한 간섭이 많아서 제대로 일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당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정당의 개입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은 현재 지방선거를 중앙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당이 제대로 공천을 해야 하고 정당이 자기 당의 지방의원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출마 예정자들을 미리 교육하고 자질을 검증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 당의 이념을 지역 단위에서 정책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이른바 정치꾼들을 마구잡이식으로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큰 둑이라도 작은 구멍으로 인해서 무너지며, 작은 둑이라고 해도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공천하는 정당이 출마 예정자 미리 교육시켜야

지방의회는 지방의원이 지역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길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방의회는 그 자체로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고기잡이배와 같다. 무사히 항구로 돌아오는 길은 지극히 단순하다. 선원의 출신 성분이 다르고, 가진 기술도 다르고, 무슨 고기를 잡아야 할지 생각은 달라도 모두가 ‘생존을 위한 규칙 두 가지’만 지키면 된다. 우선 ‘의원윤리헌장’을 강화해야 한다. 동료 의원들에 대한 제재를 가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의회 스스로가 ‘자경문(自警文)’을 하나씩 세워 돌려가면서 읽고 반성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회 운영비 중 일부를 배정해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 학습 과정의 일환으로 국내외의 선진 행정 현장을 시찰하거나 교육을 받는 것이다. 상임위별로 배정된 예산이라고 아무런 맥락도, 연속성도 없이 일과적으로 나섰다가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지방의원들의 1년 중 회기는 총 1백20일 내외, 3백65일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기왕에 지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섰다면 제대로 일을 해야 한다. 회기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회기를 앞서서 이끌어가는 것이 더 편하고 쉬운 일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회의장을 지키고 앉아 있는 것보다 지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 공연히 공무원들에게 이런저런 자료만 내놓으라고 호통쳐봐야 속으로 무시당하기만 할 뿐 아무런 실익이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