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찌르며 되살아나는 ‘우향우’ 정치
  • 진창수(세종연구소 부소장) ()
  • 승인 2008.07.2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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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일본 꿈꾸는 전후세대가 후쿠다 압박 ‘한국 자극→국제 분쟁 지역화’가 최종 목표
ⓒEPA

이번 일본 정부의 신지도요령 해설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5월 요미우리 신문에 일본 정부가 신학습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자민당 우파 정치인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2012년부터 적용될 중학교 사회 새 지도 요령에 독도에 대해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넣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나 올해 3월에 고시된 일본 정부의 개정 지도요령에서는 독도에 대한 언급이 자제되었다. 이는 2월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면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후쿠다 정부의 배려가 작용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월14일 일본 정부는 지도요령 대신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을 보충하는 것으로 방침을 결정했다. 이는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지도요령 발표 후 독도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해야 한다는 자민당 우파 정치인들과 문부과학성 관료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20%대 중반에 머무르고 있는 후쿠다 총리 내각은 결국 한·일 관계의 악화를 무릅쓰고라도 해설서에 독도 관련 조항을 집어넣는 선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학습지도요령의 해설서는 말 그대로 지도요령을 보충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학습 현장에서 해설서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실질적인구속력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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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우파 정치인들의 등쌀에 독도 내용 집어넣어

일본 민간 출판사들도 학습지도요령과 해설서에 기초해 교과서를 만들기 때문에 이번에 만들어지는 새 해설서는 앞으로 나올 교과서의 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점에서 앞으로도 올해 말로 예상되는 고교 사회과목 지도요령 및 해설서 개정, 2010년과 2011년 채택 예정인 초등 및 중학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도 일본 우익 그룹은 한 발짝 더 나아간 내용을 집어넣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1952년 이후 매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왔지만, 본격적으로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고 시도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즉, 1996년 자민당의 총선 공약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라는 내용이 나타나 면서부터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도에는 일본 외무성이 발행하는 외교청서에 ‘독도 고유 영토설’을 명기했다. 그 뒤에는 매년 독도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쟁을 본격적으로 일으켰다. 2004년 우리측이 독도 우표를 발행하자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나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라고 했고, 외무성 홈페이지에 일본 영토임을 강하게 명기했다. 우익 단체의 독도 상륙 기도도 있었으며, 특히 2005년 ‘시마네현 고시’ 100주년을 기화로 시마네현이 ‘독도의 날’을 제정하면서 외교적 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2006년에는 일본측의 독도 주변 수로 측량 시도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외교적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일본의 이러한 일련의 독도 도발은 일본 정치인들의 세대 교체와도 관련되어 있다. 현재 일본 정치권에서는 전후세대가 떠오르고 있으며, 이들 전후세대는 일본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고,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일본의 ‘전전세대’들 중에서 극우 인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동아시아 관계의 특수한 측면을 이해해 갈등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현재의 전후세대 정치인들은 일본이 언제까지 과거사 사과와 배상 요구에 끌려다녀야 하느냐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어 일본 국민의 민족주의적 정서에 부응하는 강경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토 문제에서도 전후세대는 전전세대와 달리 타협적인 정책보다는 우파적인 강경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이들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장기적인 협조 관계에서 국익을 찾기보다는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우선시하고 있다. 전후세대 정치가들은 지금까지 일본의 외교는 관용과 인내를 가지고 있어 잘못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아베 전 총리로 대표되는 이들은 ‘강한 일본의 탄생’을 원하고 있다. 특히 아베는 총리가 되면서 ‘전후 체제의 탈피’를 주장함으로써 전후세대 정치가의 주장을 대표하기도 했다. 그는 1955년 자민당 탄생 이유를 “첫째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었고, 둘째 점령 시대에 만들어진 국가의 기본 틀을 다시 일본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 ‘진정한 독립’을 회복하는 것이었으며, 전자는 실현되었지만, 후자는 실현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스스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DNA를 물려받았다고 호언하는 아베 신조는 특히 이 ‘진정한 독립’을 실현하는 것이 외조부의 꿈이었다고 말하며 스스로의 정권에서 이를 실현하겠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일본 전후 정치사에서 본다면 아베 총리 이전의 고이즈미 정권이 자민당 체제의 해체를 주도한 정권이었다면, 아베는 일본의 전후 체제에 안녕을 고하는 정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강한 일본’을 바라는 국민 정서를 이용해 전후 금기시되었던 유사 법제의 제정이나 헌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아베 전 총리는 전후 평화주의의 정신을 담은 교전권 등을 금지한 헌법의 전면 개정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절차법인 국민투표법 마련에 주력할 방침이었다.

또한, 해외에서의 무력 행사를 의미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허용되도록 정부의 헌법 해석을 고쳐 재무장을 통한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자 했다. 그리고 아베는 외교에서 ‘주장하는 외교’를 제창하고, 애국주의 교육 강화를 모색하면서 전후 정치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또한 일본이 역사 인식이나 영토 문제에서도 기존의 수동적인 자세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국익을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의 주장은 전후세대 정치인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우파 정치가들은 이번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하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전후 일본의 바로 잡기’라는 생각에서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정치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정치권에서 역사 진보 세력(예를 들면 사회당)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다. 특히 1994년 사회당의 무라야마 정권이 몰락한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우파 정치인들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우파 성향의 전후세대 정치인들이 자신의 주장이 정당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통용된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예로 종군위안부 문제에서 이들은 미국 의회에 몰려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다가 국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이것을 ‘로비 실패’로 치부하며 반성조차 하지 않는 추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지도요령 및 해설서뿐 아니라 교과서 검정 때도 독도 문제를 확대시키려는 일본 우익 그룹들의 작업이 치밀하게 전개되는 데 문제가 있다. 이번 해설서의 발단도 2005년 3월부터 정부 내에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당시 문부과학상은 국회 답변 과정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고 지도요령에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당시 후소샤 교과서 개정을 주도했던 우익 단체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이 문제는 이번 지도요령 개정 작업 때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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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침체에 대한 반발로 민족주의 살아나

이처럼 정치권 내에서 우파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1990년대에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나타난 일본 사회의 변화는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이전과 달리 자신감의 상실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본 사회 내에서는 일본 경제의 침체에 대한 패배감의 반작용으로 강한 일본을 재건해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인 열망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정치에 대해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국민의 열망과 희망은 일본의 자유화와 개혁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방향과 일본의 정체성 확립을 주장하는 우익 세력의 새로운 역사 해석에 동조하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본 국민은 우익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주장을 감정적으로 인정하는 모순된 경향을 나타냈다. 그것은 이번의 해설서 문제에서도 “일본의 영토를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현재 일본 국민은 일본 사회의 내부적인 변화로 인해 이전과 달리 국제 사회의 일본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예로 일반 국민이 동아시아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받는 것에 대한 회의와 불만의 분출을 들 수 있다. 즉, 이전 일본 국민의 수동적이고 침묵적인 자세에서 ‘일본은 도대체 몇 번이나 사과해야 하나’라는 적극적인 방어 자세로 변화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일본 사회에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이며, 식민지 지배자로서 반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정착되었다. 또한 이에 대해 일본 국민이 나름대로 한국이나 중국에 반성과 사죄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대 총리가 한국·중국에 거듭 사죄를 했음에도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부족하다고 비난함에 따라 일본 국민 사이에는 한국과 중국에 게 ‘적당히 해라’라는 식의 반감이 확대되었다. 특히 후소샤의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를 내정 간섭이라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일본 국민의 비율이 높아졌다.

이러한 일본의 변화 속에서 불거진 이번 해설서 문제는 현재 한·일 관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시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한·일 간의 정책 라인이 원활히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신지도요령 해설서 문제는 지난 5월의 요미우리 신문 공개 이후 7월14일까지 한·일 간에 타협할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그 결과는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에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의 대일 정책 라인, 유력 정치인에만 집중되어 문제

또한 한국에 협조적인 후쿠다 총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파 정치인들의 끊임없는 압력이 일본 정부의 분위기를 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의 대일 정책 라인이 약화됨으로써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를 실어 무엇이 나쁘냐’라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 이전처럼 일본 정치권 내에서 파벌 영수의 영향력이 강력했다면 한국의 대일 정책 라인은 효과적으로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자민당 내의 파벌보다는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개별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대일 정책 라인은 일본 파벌 영수와 유력 정치가에 집중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일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앞으로 한국이 합리적인 한·일 관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개별 정치인들과의 교류를 더욱더 활성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대중 외교(Public Diplomacy)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의 대일 전략을 합리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2005년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이후 노무현 정부는 ‘외교 전쟁도 불사하겠다’라는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한국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일본 국민은 독도가 한·일 간의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게다가 일본 우파들의 의도대로 국제 분쟁화를 부추기는 측면조차 나타났다. 이 점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는 감정적이고 적극적인 대응만이 합리적인 해결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합리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는 일본 우파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것이 시급하다.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한·일 간에 쟁점이 되면 될수록 일본 우파들의 영향력은 더욱더 확대될 것이다. 일본 우파의 움직임에 한국이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독도가 국제적인 분쟁 지역화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이 점을 한국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이 전면적으로 대응해서 해결되는 문제라면 독도 문제는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고,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대일 강경 정책으로 해결되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대일 정책의 기조를 새롭게 정비하고 그 틀 속에서 독도 영유권을 공고화하기 위한 국제적인 여론 환기와 실질적인 자료 축적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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