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ᆞ여권 핵 심부도 알고 있었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08.1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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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인사 ‘국방부 이권 청탁 수뢰’ 사건, <시사저널> 보도 전부터 ‘알 만한 사람 다 알아’
▲ 한나라당 유한열 상임고문은 국방부 이권 청탁과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지난 8월11일 구속되었다. ⓒ시사저널 임영무

<시사저널>이 지난 호(제982호)에 특종 보도한 ‘한나라당 유한열 상임고문 군납 이권 청탁 사건’의 파장은 컸다. KBS·MBC·SBS·YTN 등 방송사들이 인용 보도했고 중앙일보·한겨레를 비롯한 인쇄 매체들도 <시사저널> 취재로 이 사건이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데일리서프라이즈·뷰스앤뉴스 등 인터넷 매체들은 <시사저널>이 보도한 전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언론 전문지 <미디어오늘>도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정치권은 더 시끄러웠다. 야당들은 일제히 ‘김옥희 사건’에 이어 또 다른 비리 게이트가 터졌다며 특검을 통해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유한열 사건은 여당 고위층과 청와대 수석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다. 정부·여당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집안 청소부터 잘하라”라는 논평을 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한 점 의혹 없이 모든 부패의 연결 고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맹형규 수석과 공성진 최고위원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했다.

야당들, “특검 통해 비리 밝혀야” 한목소리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이 사건을 수사 의뢰한 사람이 맹형규 정무수석이기에 한 점 걸릴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김귀환 서울시의회의장의 돈 살포 파문에 이어 대통령의 처형인 김옥희씨가 공천 청탁 명목으로 30억원을 받은 사건도 있었는데, 거기에 이어 최고위원과 정무수석이 관련된 사건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자 한나라당은 지난 8월12일 유한열 상임고문을 제명 처분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8월8일 시작되었다. 전날인 7일 오후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난 맹형규 수석측에서 보도 이후 파장을 염려해 8일 오전 검찰에 전격적으로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은 이미 이와 관련한 첩보와 자료를 입수하고 내용을 따져보고 있던 상태였다. 검찰은 <시사저널>이 관련자들의 진술서와 각서, 돈이 입금된 통장 내역 등을 입수한 것과 비슷한 시점인 8월 초쯤 관련 서류들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맹수석이 수사를 의뢰하기 며칠 전에 이미 검찰은 관련 자료를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단순히 내용의 신빙성을 따져보기 위해 시간을 끌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수사 착수를 미뤄두고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8월15일 현재 유한열 전 상임고문을 구속하고 돈을 준 통신업체 사장 이 아무개씨를 조사했다. 맹수석도 수사를 의뢰하면서 자진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전담 체포조를 가동해 돈을 받은 나머지 공범 세 명을 체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이 잡혀야 이 사건의 전체 그림이 그려지고 돈의 흐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청와대 인사를 통해서 일을 성사시키겠다”라고 말한 이도 있기 때문에 행정관급이라도 청와대 인사가 직접 움직인 사실이 드러난다면 사건의 파장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또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공성진 최고위원측과 유 전 고문 간에 10여 차례 전화를 주고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공최고위원은 조만간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 전 고문은 “공의원은 이번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다”라고 감싸고 있다. 하지만 보좌관이 직접 국방부 차관실에 찾아가는 등의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공최고위원을 석연찮게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사건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는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일은 여권 내부에도 미묘한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이 사건을 고리로) 누군가 정치적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 반드시 밝혀내 응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 이번 사건을 외부로 흘린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관계자는 맹수석 측에서 ‘수사 의뢰’한 내용은  두 가지라고 답했다. “사건의 실체를 철저히 조사해 달라는 것과 음해 세력의 실체를 밝혀달라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건에 대한 조사와 달리 ‘음해 세력’을 밝히는 부분은 검찰이 나서기도 어려울뿐더러 밝혀내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런 자세를 취한 것에서 보듯 맹수석측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격앙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 특종 보도한 한나라당 인사 군납 이권 청탁 기사.

여권 관계자, “이 사건 외부로 흘린 세력 여권 내부에 있어”

국방부가 추진하는 광대역통합전산망 사업에 참여를 희망했던 통신업체 사장 이 아무개씨는 사업 참여가 무산되자 유 전 고문 등에게 로비 명목으로 준 돈 6억원을 돌려받게 해달라며 3월 하순 공최고위원과 맹수석측에 관련 자료를 보냈다. 그러나 변화가 없자 이번에는 여권 핵심부에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 7월의 일이다. 이 때문에 <시사저널> 보도가 있기 전에 이미 한나라당과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의 알만한 위치에 있는 인사들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신업체 사장 이씨가 작성한) 진술서가 내게도 왔었는데 청와대에 넘겼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앞서 이 여권의 관계자가 내심 염두에 둔 ‘음해 세력’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유한열 사건’을 계기로 여권 내부의 보이지 않는 파열음이 더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여권 내부에서는 맹수석이 취임한 이후 맹형규-홍준표 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다. 여권 내 정무 라인의 파트너로 누구보다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할 두 사람이 과거의 개인적인 앙금 때문에 갈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맞붙은 두 사람은 당시 원색적인 비난을 주고받으며 치고받은 적이 있다. “공천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라고 한쪽에서 공격하면 다른 쪽에서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라고 공격해 서로 감정을 상하면서 사과하는 소동을 벌여 당내에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도를 넘었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외부에서 오세훈 시장이 영입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최종 경선에서 맹수석이 2위, 홍대표가 3위를 했었다.

홍대표가 합의했던 ‘장관 인사청문회’를 청와대가 튼 것 등이 두 사람 갈등설의 대표적인 경우로 거론된다. 원 구성 문제에서도 청와대는 홍대표가 너무 양보하는 것 같다고 보는 반면, 홍대표는 “원 구성은 청와대와 조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8·15를 기해 이루어진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의견 차를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정무 사령탑인 홍준표-맹형규 갈등에 이어 ‘유한열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진다면 여권은 그야말로 내부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적인 춘추전국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친이명박-친박근혜 갈등, 친이계 내부의 이상득-정두언 갈등, 당·청 정무 라인인 홍준표-맹형규 갈등에 이어 또 다른 축이 하나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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