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를 두고 주최측과 경찰측의 참가자 집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 것과는 비할 바도 못되는 숫자의 괴리이고, 한편으로 우리의 조선 시대에 율곡 이이가 주창했다는 ‘10만 양병설’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허세의 기록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한 가지 확고 부동한 사실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이 세계에서 으뜸 가는 인구 대국이라는 점이다.
인구 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위용은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여지없이 노출되었다. 개막식과 페막식에서의 집단 퍼포먼스는 그 절정이었다. 2008명의 고수, 365명의 무용수 등 숫자로 의미 부여된 인간 군상들의 집단 포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누구의 말마따나 그야말로 ‘수천 억원을 들여 지은 한 권의 거대한 역사책’이고 ‘과거의 역사를 불러내는 초혼의 제의’였다. 그리고 그것은 전세계인을 관객으로 한 ‘중화 부활’의 대형 쇼케이스이기도 했다.
열전을 치르고 막을 내린 올림픽에 대해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지만, 베이징의 이번 ‘커밍아웃’이 중국의 처지에서 세계를 향해 도약할 한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TV 화면에 비친 중국인들의 상기된 얼굴 표정과 달뜬 목소리에서 그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한때 자신의 나라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굳게 믿었던 중국인들이 이처럼 차오르는 자신감을 분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감과 우월주의의 경계를 가볍게 무너뜨릴 때 나타날 부작용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그 주체가 세계의 공장이자 블랙홀이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들이 세계를 향해 정도를 벗어난 호루라기를 계속 불어대는 한 영원히 강대국의 문턱에 올라설 수 없음을 일찍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내에 반한(反韓) 또는 혐한(嫌韓) 정서가 퍼져가고 있다는 소식은 예사롭지 않다. 그 원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좀더 냉철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감정에 이끌리는 대응은 금물이다.
좋든 싫든 중국은 우리의 머리맡에 놓인 거대한 선반과도 같다. 그 위에 너무 많은 것이 실려 무너지면 우리는 다칠 것이고, 반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쌍아두고 알뜰하게 꺼내 쓰면 더없이 유익한 물건이 될 것이다. 그 선반을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렸다. 올림픽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그 실체와 행로를 가늠하기 어려운 초대형 ‘미확인 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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