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도와라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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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1인과 전문의에게서 듣는 ‘죽음에 대한 성찰’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이레 펴냄폴린 첸 지음 / 박완범 옮김 / 공존 펴냄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죽었다. 고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어느 수업에서였던가. 귀납법을 설명하면서 든 예문이 그랬다. 쉽고 재미있는 예문이라 생각하던 학생들조차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가 거슬렸다. ‘참인 명제’라는 이것을 곱씹을수록 ‘거짓’이기를 바라는 반항심이 커져갔다.

학생들은 성장하면서 조부모의 임종을 겪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음을 접하면서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모두 죽는다’라는 데에는 미래형이라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죽음에 대한 사유를 제대로 해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유는커녕 살아가는 동안 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여겼다. 오늘 이 순간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시간이라는 식으로 현재에 충실하기만을 강요했다. 어제 죽어간 사람을 돌아볼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적극 연구하고 토론하며 극복하고자 애쓰는 것 같다. 이것은 학계와 의료계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관심 분야다. ‘죽음학’은 최근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영향력 때문이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그녀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저서 <인생수업>은 2006년 ‘네티즌이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전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했던 그녀에게는, 이미 30여 년 전에 죽음에 대한 연구의 첫 결실로 펴낸 책이 있었다. <죽음과 죽어감>이다.

‘죽음의 5단계’ 최초 소개한 죽음학 연구의 고전

1965년 가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시카고 신학교의 학생들로부터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도울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시한부 환자들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심리 상태와 욕구를 이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어가는 환자들과 인터뷰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편견에 맞서며 환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세미나를 1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비공식 세미나는 점점 그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의학생과 신학생들 사이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 계명대 동산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한 여성 환자가 봉사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기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죽음과 죽어감>은 전세계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주목을 받았고, 그녀는 ‘죽음’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었다. 그녀가 죽어가는 이들과의 수많은 대화를 통해 얻은 메시지는 어떻게 죽는가가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 죽음에 대해 미리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겪는 심경의 변화를 상징화한 ‘죽음의 5단계(부정과 고립-분노-협상-우울-수용)’는 <죽음과 죽어감>에 소개되어 지금까지 줄곧 죽음을 앞둔 환자 자신뿐 아니라 시한부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 의사 및 간호사, 그리고 그 환자들 곁에서 도움을 주는 성직자들과 호스피스 봉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고전’과 함께 최근 출간된 간 이식 전문 외과의사의 에세이가 눈길을 끈다. 의사가 영혼의 치유사로 거듭나면서 쓴 <나도 이별이 서툴다>는 죽음에 대처하는 현대 의료와 인간적 감정 간의 불편한 관계를 다룬 사려 깊은 에세이다. 이 책은 의사가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를 순항할 수 있게 도울 방법을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5년간 죽음을 접한 생생한 경험을 모은 이 책에는 의사들이 어떻게 죽음에 단련되는지, 왜 죽음을 앞둔 환자를 외면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의사와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죽음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저자 폴린 첸은 “우리 가운데 90% 이상이 만성 질환으로 죽는 사회에서 의사는 생명의 마지막 파수꾼이고, 죽음을 맞는 복잡다단한 과정 내내 가망 없는 환자와 그의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한다. 또한 대부분의 환자와 그의 가족도 의사가 곁에서 위로해주고 필요한 역할을 다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일을 제대로 해내는 의사는 거의 없다”라고 토로했다.

폴린 첸은 “우리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품위 있는 죽음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더 나은 ‘임종 보살핌’을 펼치기를 바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함을 지켜주는 ‘사랑’의 실천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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