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기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8.09.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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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돌입…한국, 전통 강호 이란ㆍ사우디 및 ‘복병’ 북한과 일전 앞둬

▲ 한국이 최종 예선 첫 경기에서 상대할 북한과의 지난 6월 예선 경기 때 모습. ⓒ뉴시스

올림픽의 시간이 가고 월드컵이 온다. 2010 FIFA 남아공월드컵 최종 예선의 한국 대표팀 첫 경기가 9월10일 중국 상하이에서 펼쳐진다. 상대는 올해에만 우리와 세 차례 무승부를 기록한 북한. 여덟 차례의 최종 예선 경기가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 첫 라운드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수준이라 할 만하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시피, 이번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죽음의 조’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 거의 틀림없다. 우리가 속해 있는 B조(한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아랍에미리트)뿐 아니라, A조(호주, 일본, 바레인,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또한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호주가 아시아 예선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고, ‘외국인 귀화 파워’의 도움을 얻고 있는 카타르에다, 바레인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력도 여느 때보다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라는 전통의 세 강호가 한데 모인 B조에서는 특히 북한이 누구에게도 쉽사리 꺾이지 않는 능력을 3차 예선을 통해 확인시켜놓은 상황. 결국 이번 최종 예선은 모든 팀들에게 매 경기 어려운 승부를 제공하게 될 공산이 크며, 따라서 첫 경기에서의 상쾌한 출발은 필수적이다.

우리의 일정을 고려할 때 첫 경기의 중요성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2008년에 치러야 할 예선 경기는 모두 셋. 이 가운데 1라운드와 2라운드(10월15일 홈)가 북한, 아랍에미리트를 상대하는 경기다. 이것이 지나고 나면 11월19일 ‘1위 후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경기로써 올해를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 2월에는 역시 껄끄러운 이란 원정에 나선다. 이러한 일정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우리로서는 제3지역 상하이에서 펼쳐지는 북한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홈경기에서 ‘2연승’의 목표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을 상대하는 원정 2연전의 부담이 경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팀 북한의 일정을 감안할 때에도 첫 경기에서의 승리가 더욱 절실해진다. 9월5일 요르단과의 평가전 이후 상하이로 이동하는 우리 대표팀과는 달리, 북한은 한국 시간으로 9월7일 오전 아부다비에서 아랍에미리트와의 최종 예선 첫 라운드를 치른 다음 우리와 격돌하게 된다. 앞 경기의 밀도와 중요성, 중동 원정으로부터의 이동이라는 측면 등을 고려하면, 이번 남북 대결은 우리 쪽에 어드밴티지가 있는 경기인 셈이다.

첫 경기 북한전 앞두고 대표팀 명단에 큰 변화

어찌 되었든 첫 단추를 아주 잘 끼워야만 하는 북한전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은 ‘적잖이 변화를 준’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특히 공격 쪽에 포진하는 선수들의 면면이 대폭 물갈이되었다. 박지성과 설기현이 각각의 상황을 감안해 차출로부터 제외되었고, 부상 회복이 늦어지는 염기훈을 비롯해, 박주영, 안정환, 고기구 등이 선발되지 않은 반면, 조재진, 이천수, 서동현, 신영록, 최성국 등이 새로이 공격 라인을 이끌게 되었다. 수비진에도 그간 부름을 받지 못했던 김진규의 발탁이 눈에 띈다. 기성용, 이호와 같은 미드필더들도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이른바 ‘프리미어리거’들 중에서는 김두현만 이름을 올렸다.

우선 박지성과 설기현, 그리고 이영표를 제외한 것은 어쩔 수 없으면서도 합당한 판단이다. 지난 3차 예선 기간 중 무릎 부상이 도졌던 박지성은 8월29일 현재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리그 스타트를 끊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등의 부상과 더불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영입이 늦춰지는 통에 전력 누수를 빚고 있는 맨유의 초반 상황이 박지성에게 ‘호기’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박지성 자신의 그라운드 복귀가 늦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 여름 이적 시장의 종료와 더불어 더욱 어려운 팀 내 경쟁에 직면하게 될 박지성의 제외는 여러 모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한편, 팀의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면서 ‘풀럼 최후의 도전’에 나선 설기현, 도르트문트로 이제 막 팀을 옮긴 처지의 이영표 또한 배려하지 않기가 어려운 상황. 이런 때에는 부르지 않아야 다음에 부르기가 용이해지는 데다, 현실적으로 박지성과 이영표의 경기 감각은 떨어져 있을 공산이 크다.

박주영의 제외 역시 합당하게 설명될 여지가 충분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팀 공격의 중심으로 나름의 활약을 펼쳐보인 박주영이지만, 계속되는 부담 속에 컨디션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같은 이적설에까지 휩싸여 있는 박주영은 (뛰는 장소가 어디이든지 간에) 우선 리그에서부터 경기력을 끌어올림으로써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쉬어가는 흐름이 박주영 자신에게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최근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뛸 월드컵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면서 이천수(맨 오른쪽)와 조재진(오른쪽) 선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시스 ⓒ연합뉴스

‘돌아온’ 이천수와 조재진의 활약 기대

반면, 정말로 귀중한 기회를 얻는 이들이 있다. 첫머리에 언급될 만한 선수는 역시 이천수. 떨어졌던 몸 상태를 언제쯤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궁금했던 이천수는 대표 선발에 결정적 의미가 있었던 9월27일 컵대회에서 멋진 골을 터뜨리며 ‘돌아온 이천수’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예상보다 빠른 활약, 예상보다 빠른 대표팀 발탁이기는 하지만, 박지성을 부르지 못한 허정무 감독의 입장에서는 이천수의 재능이 반드시 필요했을 공산이 크다. 물론 올 시즌 K리그에서 꾸준히 맹활약을 펼쳐온 최성국, 이청용, 이근호가 존재하는 까닭에, 이천수 역시도 경쟁을 피하기란 어려울 듯하다.

이천수와 더불어 “나, 죽지 않았다”를 외쳐야 하는 또 다른 인물은 조재진이다. 조재진은 대표팀의 난제 중 하나인 ‘원톱 공격수’로 활약해야 할 의무를 지닌 사나이. 조재진 자신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원톱으로서의 능력에 여러 가지 한계를 지녔다”라는 비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효율적인 움직임은 물론, 측면 공격수들, 중앙 미드필더들과의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에 많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물론 이 포지션에서도 K리그와 올림픽 대표 등을 통해 좋은 상태를 유지해온 서동현과 신영록이 조재진과의 불꽃 튀는 경합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벌어졌던 북한과의 3차 예선 두 경기가 모두 ‘0-0 무승부’로 귀결되었음을 감안하면 이천수와 조재진을 비롯해, 위에 언급된 공격 자원들과 김두현의 활약은 필수적이다. 최소한 조 3위를 확보해 남아공으로 가는 ‘막차’를 노릴 법한 북한은 우리와의 경기에서 적어도 1점의 승점을 획득하려는 태도로 나올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비력 강한 북한을 상대하는 허정무 감독이 현재 컨디션이 가장 좋은 공격수들을 선발하는 데에 신경을 쓴 것도 자연스럽다.

물론 수비의 중요성 또한 간과될 수 없다. 홍영조, 문인국, 정대세에 의한 역습 전술이 나름의 위력을 지니고 있는 북한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수비에서의 한 차례의 실수는 이 경기는 물론 최종 예선 전체의 흐름을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나타났던 수비수들의 ‘엉킴’과 ‘쏠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홍영조, 문인국이 ‘측면 흔들기’에 매우 능한 선수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어찌 되었든 허정무 감독은 이정수, 곽태휘 등을 가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올림픽 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춰온 강민수-김진규 카드에 기대를 거는 인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북한전은 ‘죽음의 조’에서 첫 발을 내딛는 중차대한 경기다. 3차 예선에서의 불만족스러운 경기력, 기술위원회 총사퇴에다 베이징올림픽 조별 리그 탈락의 아쉬움이 더해졌던 한국 축구에 이번에는 시원한 낭보가 전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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