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뇌세포 지키는 게 ‘약’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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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나이 많은 여성일수록 걸릴 확률 높아…혈관성 치매는 고혈압이 가장 위험쓴소리

치매의 원인은 수없이 많지만 알츠하이머(alzheimer’s)와 뇌혈관 질환이 대표적인 치매 원인으로 꼽힌다.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치매는 전체 치매의 80~90%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감염성 질환, 대사성 질환, 내분비 질환, 중독성 질환, 파킨슨병, 수두증, 간질 등이다.

알츠하이머는 보통 65세 이상의 노인 10명 중 0.5명, 80세 이상의 노인 10명 중 4명꼴로 발생하는 노인성 치매다. 이 질환은 나이가 많을수록 많이 걸리며 여성이거나 유전인자가 있는 경우 걸릴 확률이 높다. 학력이 높거나 지적 수준을 많이 요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에 덜 걸린다고 보고되어 있다. 건강한 뇌세포가 서서히 죽어서 생기는 치매인데 아직도 그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유전자 이상으로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β-amyloid)가 뇌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조기에 발견하더라도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다만 약물로 증세를 완화하거나 병의 진행 속도를 둔화시킬 뿐이다. 1999년 AN-1792라는 합성 아밀로이드로 만든 백신이 개발되었다. 일종의 면역요법 약물인데, 이 백신의 경우 베타 아밀로이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정상 뇌세포도 공격하는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아리셉트(aricept), 엑셀론(exelon), 레미닐(reminyl) 등 항콜린제(anticholinergic)가 대표적이다. 항콜린제는 중추신경계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을 억제해, 인지 기능의 향상에 부분적으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요실금 치료로 항콜린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오히려 인지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확실한 치료법 없어 약물로 증세 완화시키는 정도

관절염 환자에게 치매가 비교적 드물게 발병하는 데에서 착안해 개발한 비스테로이드성 항소염제도 있다.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세포를 죽일 때 염증을 유발하는데,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소견이다.

알츠하이머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 걸려 여성 호르몬에 대한 역학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마다 결과가 다르고 부작용도 나타나 아직은 의학계에서 이견이 분분하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질환이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심장병, 흡연, 비만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이 중에서 고혈압이 가장 위험하다. 큰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 반신 불수, 언어 장애 등 눈에 띄는 장애가 나타난다.

하지만 매우 작은 혈관이 손상되면 손상된 뇌세포의 양이 매우 적어 눈에 띄지 않고, 이런 손상이 누적되면서 결국 치매에 이르는 것이다.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도 가능한 만큼 평소에 혈압 조절, 혈당 유지, 금연, 콜레스테롤 조절 등으로 예방해야 한다. 혈관성 치매 환자는 아스피린이나 티크로피딘 같은 항혈소판제를 투여받는다. 뇌 경동맥이 좁아져 있는 경우는 수술로 치료한다.

이 밖에 알츠하이머나 혈관성과는 다르게 치매 증상을 보이는 질환들이 있다. 대표적인 질환이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이다. 이 뇌질환 환자 중 30~40% 정도는 말기에 치매 증상을 나타낸다. 파킨슨병은 몸과 팔, 다리가 굳고 동작이 둔해지거나 가만히 있을 때 손이 떨리는 증상을 보인다.

루이소 치매(diffuse lewy body dementia)는 망가지는 뇌세포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인 루이소가 뇌간 등에 침착하는 질환으로 헛것이 보이는 환시 증상이 나타난다.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유전성 치매인 헌팅턴병(huntington’s disease)은 젊은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얼굴이나 팔 등이 저절로 움직이는 무도증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크루이츠펠트-제이야콥병(creutzfeldt- jakob disease)은 매우 드문 질환이나 치명적인 뇌질환으로 프라이온(prion)이라는 단백질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억력 장애와 함께 시야 장애나 행동 장애가 나타난다. 결국은 혼수 상태까지 이른다.

뇌수두증은 흔하지 않은 질환으로 뇌 안을 흐르고 있는 뇌척수액의 흐름이 막히고 뇌실에 뇌척수액이 점차 고여서 발생한다. 이 질환은 뇌막염이나 뇌염, 두부 손상 등의 후유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뇌척수액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만드는 간단한 수술로 완치할 수 있다.


▲ 강만구씨는 자신을 보살펴준 가족들이 치매 극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시사저널 박은숙

전주에서 포도 농사를 하는 강만구씨(58ㆍ가명)는 치매가 찾아왔던 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9년 전 자신은 정상적으로 사는 것 같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건망증이 심해졌고 무엇을 잊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강씨는 “당시 화물차를 운전했는데 매일 주차하던 곳에 주차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차를 두고 다음 날 주차한 곳을 기억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도시락 용기를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늘었다. 집에 와서도 예전과 달리 말수가 적어지고 멍하게 지내기가 일쑤였다”라며 당시 증상을 설명했다.

강씨는 자신의 증세를 자각하지 못했다. 부인 최경미씨가 남편의 증세를 지켜보다 참다못해 병원에 갈 것을 권했다. 부인 최씨는 “남편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고 화를 내면서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행동이 예전과 다르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건망증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서 동네 개인 의원을 찾았다. 아직 치매에 걸릴 나이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개인 병원에서 잘 모르겠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해서 종합병원으로 갔다. 종합병원에서는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이라고 진단했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혈관을 뚫는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았고 그 후 2년 동안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그러나 증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인 최씨는 “한 참 일할 나이에 멀쩡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보처럼 행동하니….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시키는 것은 했지만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일은 없었다. 같이 죽자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무슨 병인지 알아보자는 심산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라고 당시 절박했던 심경을 전했다.

강씨의 진료를 담당한 나덕렬 신경과 교수는 뇌경색에 의한 경도 인지장애로 진단했다. 혈관성 치매의 초기단계다. 입원한 뒤 10일 동안 상담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해 뇌 기능을 살려냈다. 퇴원 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 꾸준히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강씨는 일상생활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강씨는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술과 담배를 달고 살았다. 식사도 육식 위주로 했고 고혈압도 있었다. 나교수의 말에 따라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고기도 거의 먹지 않는다. 대신 매일 운동을 한다. 비가 와도 수 Km를 걷거나 뛰면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라며 활짝 웃었다.

강씨는 예전처럼 화물 운반 일은 하지 않지만 직접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포도밭 농사일도 예전보다 더욱 꼼꼼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씨는 “치매는 가족이 치료하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치매 환자가 생기면 방치하지 않는가. 돈이 있는 가정은 치매 환자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도 한다. 치매는 그렇게 하면 결코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가족의 사랑 덕분에 치매를 고칠 수 있었다. 계속 말을 시켜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도록 했고, 무슨 일이든 같이 하자고 손을 잡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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