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밥에 그 나물’에 입이 물렸나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09.0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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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 다른 음식점들에 밀려 손님 발길 ‘뚝’…“특화시키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 한동안 잘 나가던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갈 만한 음식점이 많아진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기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매장을 줄이고 메뉴를 차별화하지 않으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시사저널 김찬미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일까. 미국에서 베니건스가 파산하고 스타벅스가 점포를 축소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국내 대표적인 패밀리 레스토랑의 매출액이 일제히 뒷걸음치는 등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1988년 코코스의 개점으로 막이 열린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 시대가 20년 만에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영업을 하는 조성현씨(34)는 “맛도 없고 메뉴도 똑같아서 3~4년 전부터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여자친구와 밥을 먹으러 어디로 갈까 고민하면 패밀리 레스토랑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지금은 갈 곳이 많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회사원인 김정규씨(26)는 “대학생이었지만 할인 카드가 많아서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통신사 할인이 축소되고 음식도 패스트푸드같이 여겨져 점점 안 가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한때 패밀리 레스토랑의 충성스런 고객이었던 젊은 층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외면하는 현상은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신흥 데이트 코스인 삼청동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 군데도 없다. 대신 탁자 3~4개가 전부이고, 메뉴도 그날의 요리가 전부인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퓨전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트렌드가 기업형 대규모 매장에서 소규모 가내수공업형 전문가 매장으로 바뀐 셈이다.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장 전망에 대해 세종대 조리외식경영학과 이애주 교수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성장기는 끝났다”라고 단언했다. 정체기로 들어서면서 모든 브랜드가 동반 성장하는 시대가 끝나고 옥석이 가려지는 시대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다.

값 내리고, 점포 늘리고, 브랜드 바꾸고 ‘아우성’

이교수는 “정체기에 접어들게 되면 같은 브랜드로 점포를 늘리는 방법과 새로운 브랜드로 공략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하나의 브랜드가 모든 메뉴를 선보였던 과거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가격 경쟁으로 가는 것은 극약 처방이자 가장 마지막에 하는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교수의 말처럼 지금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이라는 극약 처방을 쓰는 업체(TGI프라이데이)가 있는가 하면, 같은 브랜드로점포를 늘려 100호점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체인점이 등장하고(아웃백스테이크), 새로운 브랜드로 점포를 늘리는(썬앳푸드나 아모제) 등 다양한 방식의 생존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TGI프라이데이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박기석씨는 “빕스가 웰빙을 컨셉트로 잡고 아웃백이 스테이크에 초점을 맞췄다면,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컨셉트를 잡았다”라고 소개했다. TGI프라이데이는 지난 3월부터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우며 저가 메뉴를 잇달아 출시했지만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마이너스 성장했다. 한 매장당 좌석 수가 2백석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보니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서는 월매출이 평균 2억~2억5천만원 정도는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월매출 1억5천만원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도록 규모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라며 마이너스 성장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매장 몸집 줄이기에 나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외식산업학과 고재윤 교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과거에는 규모의 경쟁으로 갔다면 이제는 슬림화로 비용을 줄이고 메뉴의 차별화를 꾀해야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탓에 올해 하반기에 양적 확대는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 1위인 빕스도 하반기에는 경남 진주와 전북 완주, 2곳에만 매장을 새로 개설할 계획이다. TGI프라이데이도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매장은 무조건 계약을 연장시키지 않고 실적에 따라 정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웃백도 101호점을 낸 이후 당분간은 추가로 매장을 늘릴 계획이 없다.

대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셰프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변화를 꾀해 고객을 확보하기로 했다. 아웃백은 일정 기간에만 판매하는 한정메뉴로 인기를 끌었던 경험을 살려 올 가을, 겨울에도 계절 한정 메뉴를 선보일 계획이다. 빕스는 고가 메뉴와 함께 샐러드바 이용 가격에 1~2천원만 더하면 음식을 시킬 수 있는 중저가 메뉴를 출시할 예정이다. TGI프라이데이는 차별화된 소스인 잭다니엘 소스로 신메뉴를 내놓을 계획이다. 베니건스와 토니로마스는 패스트푸드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셰프가 직접 요리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하지만 이런 단순 처방으로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실망한 고객들을 되찾아올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종대 호텔관광대학 조리외식경영학과 김영갑 교수는 “가격 인하나 웰빙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셰프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눈요기에 불과하다. 지금은 패밀리 레스토랑이 고객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이며,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의 식당인지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라며 대대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틈새 시장을 뚫는 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김교수는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대중화되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고급화로 나가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대중 식당의 단가인 1만원과 패밀리 레스토랑의 단가 2만~2만5천원 사이의 틈새 시장을 노려 새로운 이미지의 외식 사업을 펼치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김찬미

고급도 아니고 싸구려도 아닌 어중간한 음식점의 한계

고유가와 경기 침체로 중산층이 무너진 것 또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하반기 전망을 어둡게 한다. 백석문화대 외식산업학부 김대철 교수는 “중산층의 붕괴로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격 할인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외식 소비자들이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는 것이 아닌 만큼 고집스럽게 차별화된 맛을 이어가며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조언대로 하나의 메뉴를 특화시켜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어 성공한 브랜드로 썬앳푸드가 운영하는 ‘매드포 갈릭’을 들 수 있다. 썬앳푸드 관계자는 “기존의 패밀리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명명하지 않고 ‘매드포 갈릭’으로만 칭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베니건스&마켓오도 스테이크의 고급화를 외치며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기존 패밀리 레스토랑의 면모를 탈피해 새로운 출구를 찾는 업소들을 가리켜 전문 용어로 업스케일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이런 흐름은 국민소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김영갑 교수의 설명이다. 김교수는 “국민소득이 1만 달러일 때 패밀리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지만 2만 달러에 가까워지면 고급스러움과 독특함을 내세우는 업스케일 레스토랑이 주목을 받는다.

이와 함께 독특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테마 레스토랑도 곳곳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올해 하반기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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