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도 <삼국지>에 꽂혔다
  • 조 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8.09.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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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 전 열어…책ᆞ민화 등 다양한 유물과 자료 모아

한네티즌이 ‘선사 이래 최고 베스트셀러’라고 일컬어지는 성경을 추격하는 책이 있으면 싹부터 자르겠다는 요량인지, 최근 다음 아고라의 자유토론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삼국지>는 절반 정도는 허풍이다’라는 제목으로, “하지만 <성경>은 100% 진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므로 역사 전쟁 소설 <삼국지>와는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댓글이 아우성을 쳤다.

▲ 진수의 , ,,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시사저널 박은숙
“<삼국지> 보고 지대한 영향 받은 사람들 많다”라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특정 종교인들의 어설픈 논쟁이라 할지라도 <삼국지>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지 눈치 챌 수 있는 대목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한국인에게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9월23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막한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 특별전이다. 오는 11월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조선 중기 무렵 유입된 <삼국지연의>가 어떻게 우리 문화에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관련 유물과 자료들을 선별해 모은 것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중국의 진수(陳壽, 233~297년)가 쓴 <삼국지>에 서술된 위·촉·오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온 이야기들을 중국 원나라 말엽 나관중(羅貫中, 1330?~1400년)이 장회소설(章回小說 : 내용이 긴 이야기를 여러 회로 나누어 서술한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장편 소설이다. 현대인들이 주로 보고 듣고 말하는 <삼국지> 또한 정사(正史)로 통하는 진수의 <삼국지>가 아니라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이다.


동묘의 <삼국지도> 등 조선 시대 ‘열풍’ 엿볼 수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이번 전시에 앞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에는 서울의 동묘를 비롯해 많은 <삼국지> 관련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중에서 동묘에 보관되어 있던 <삼국지도(三國志圖)> 9점이 10년 전 서울역사박물관에 이관되었다. 이 그림들을 보존 처리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한 번 공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m가 넘는 대형 그림들을 보여주자는 것이 첫 번째 취지였고, 이왕 전시를 하려면 우리나라에 있는 <삼국지> 관련 자료 전체를 모아보자는 것이 두 번째 취지였다”라고 밝혔다.


<우리의 삼국지 이야기> 특별전은 크게 5개의 방으로 구성했는데, 우선 ‘<삼국지>의 유입과 유행’ 방에서 조선 시대에 이미 <삼국지>가 목판본·필사본 등으로 발행되어 한반도 전역에서 유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화 속 <삼국지>’ 방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삼국지>의 내용을 그린 민화 <삼국지도>들을 전시하고 있다. 17세기의 <삼국지도>는‘삼고초려’의 고사를 그린 <삼고초려도>가 다수였다. 18~19세기 이후 중인층이 성장하면서 그림의 수요가 증가해 ‘삼고초려’ 외에도 ‘도원결의’ ‘장판교전투’ ‘적벽대전’ 등의 내용을 묘사한 병풍 형태의 <삼국지도>가 유행했다. 이번 전시를 안내하고 있는 학예연구사 서주영씨는 “<삼국지> 유행을 증명하는 듯 한석봉의 글씨에도 제갈량에 대해 쓴 것이 있어 전시했다. 고대소설 <옥단춘전>을 보면 <삼국지도>가 방 안을 장식했다는 등 당시 <삼국지>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모태가 된 ‘동묘와 <삼국지도>’ 방에서는 동묘에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관된 대형 <삼국지도>를 만날 수 있다. <삼국지>의 주요 장면들을 묘사한 궁중화풍의 그림들로, 9점의 각 화폭에는 제액 형식으로 제목을 적어 그림의 내용을 알기 쉽게 했다. 이 그림들은 중국에서 유입되었던 판본의 삽화와 비교해보면 그 삽화를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국가에서 건립하고 의례를 주관했던 동묘의 작품이라는 점과 궁중회화 특유의 세밀한 필치와 묘사,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궁중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학예연구사 서씨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라 할 이 그림들은 소장처가 명확하고, 수준 높은 궁중화풍의 <삼국지도>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삼국지>와 관련한 것을 하나 둘쯤은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는 비중 있는 문화 콘텐츠로서 책 외에 만화·영화·게임 등 여러 종류의 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변형되어왔으며, 남녀노소를 모두 아우르는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대중문화 속 <삼국지>’ 방에서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필사본에 이어 방각본 소설이 등장하면서 늘어나는 독자들의 수요를 맞추고, 민화·판소리의 형태로 조선 시대 문화 속에 자리 잡았던 <삼국지>는 근대에 들어와 딱지본과 신문 연재소설의 형태로 등장했다. 학예연구사 서씨는 “자료를 모으다 보니 책자와 자료가 너무 방대해 추리느라 애를 먹었다. 영상물도 의외로 많아 놀랐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책과 그림 외의 자료들은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해 조회해볼 수 있도록 했다. 신문 연재소설 자료를 정리하던 중 한용운 선생이 1939년 11월1일부터 1940년 8월1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삼국지>가 있어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했다”라고 말했다.

우리 문화 속 여러 형태의 <삼국지>와 조우

‘대중문화 속 <삼국지>’ 방에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출간된 방기환의 <단권 완역 삼국지>와 1954년에 나온 최영해의 <완역 삼국지> 시리즈, 국내 만화 <삼국지>의 효시라 할 만한 1953년 작 김용환의 만화 <코주부 삼국지> 등이 있어 전쟁도 <삼국지>의 인기를 꺼뜨리지 못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1979년 장편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고우영 만화 삼국지>의 원본 그림과 책, 영화 대본을 따로 전시해 중장년층을 추억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고우영 화백은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만화 <삼국지>를 그려내던 시대에 그 한계를 넘어 어른들이 보기에 알맞은 풍자 가득한 작품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전시장에서는 신문 연재소설 등 옛 자료를 검색하거나 다양한 를 골라 읽을 수도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관람객 전태준(45·서울시 강북구 삼양동)씨는 “30년 전 중학생이었던 나를 <삼국지>의 매력에 빠지게 한 다섯 권짜리 책을 만날 수 있나 하는 기대를 하고 왔다. 그 책은 볼 수 없지만 아버지가 보았음직한 책 등 다른 자료들과 우리나라에서 <삼국지>가 가지는 의미를 알게 되어 유익했다”라며 흐뭇해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배려해 무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삼국지> 속의 고사성어’ 방에서 교사 혹은 부모·친구와 함께 <삼국지> 속 영웅들과 사진 촬영도 하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전시된 각종 그림들을 보면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도원결의’하는 의형제를 만나고 싶거나 ‘읍참마속’의 예리한 칼날 아래로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싶거든, 가을 나들이를 경희궁 옆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예약해두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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