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직사포’ 착잡한 민주당
  • 양정대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08.10.0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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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에 당혹 “정치 전면에 나서는 이유가 뭔가” 비난도

▲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4 남북 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노 무현 전 대통령이 최근 정치 현안에 대한 발언을 부쩍 늘려가면서 민주당 내부의 기류가 꽤나 복잡해졌다. 7·6 전당대회 이후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던 당내 세력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호(好)·불호(不好)까지 겹치면서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입장 표명’에 나선 소재는 10·4 선언 계승 문제와 민주당의 호남당화 논란 등 크게 두 가지이다. 그런데 노 전대통령의 날선 비판이 향하고 있는 각각의 대상은 현실 정치의 양대 축이다. 그리고 형식은 예전처럼 도발적이고 대결 지향적이다. 민주당 내부가 들썩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10월1일 ‘10·4 남북 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에서 작심한 듯 이명박 정부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실용적·실무적 내용인데 이명박 정부가 존중하지 않고 있다”라거나 “1년쯤 지나면 잎이 더 피고 가지와 열매가 무성하길 바랐는데 나무가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라는 등의 비판과 서운함에 그치지 않았다. “(현 정부가) 관계 복원을 위해 허겁지겁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모습이 초조해 보인다. 전임 사장이 계약하면 후임 사장이 이행해왔는데 국가 CEO는 안 그래도 되는 줄 미처 몰랐다”라는 힐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현재 모습에 대한 지적에서도 비슷한 비판과 비난이 교차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설한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을 통해 “호남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호남이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다”라며 선거구제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래야 정치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전국 정당화가 가능해진다는 이전 주장과 맥이 닿아 있는 얘기이다. 거기에 “땅 짚고 헤엄치기를 바라는 호남의 선량들, 호남표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수도권의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라는 비난을 빼놓지 않았다.

“호남표로 국회의원 되겠다는 사람들이 민주당 망치고 있다”

민주당 내부의 반응은 예상된 그대로이다. 친노(親盧) 인사들은 하나 같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조언이다”라고 옹호한다. 하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전직 대통령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거나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라는 등 고개를 젓는 쪽이다. 일부는 아예 “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배은망덕한 말씀이다”(박지원 의원)라며 노 전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같은 반응 속에 ‘가치’와 ‘감정’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이후의 정치 행로 속에서 켜켜이 쌓여진 감정적 앙금이 여전하다. 옳은 얘기도 노 전 대통령이 하면 거부감부터 갖게 되는 것 같고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표현 자체도 이를 부추긴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10·4 선언을 적극 옹호하며 이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적극 비판하지만, 6·15 공동선언 기념식과는 달리 현역 의원들조차 행사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 1주년 기념식 행사를 두고 ‘친노 진영의 단합대회’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이다.

호남당화 논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시절부터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지역주의 해소는 민주당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이를 환기시킬 때면 매번 사단이 났다.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도 그랬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다.

지난달 9월18일 여의도 당사 현판식을 전후해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거는 문제로 일부 지도부 사이에 설전이 벌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당내 평가가 보기에 따라 극과 극인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정치인들의 ‘계산’이 숨어 있음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들어 민주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복잡한 정치적 흐름도 노 전 대통령 발언의 갈등적인 요소를 증폭시키고 있다. 당내 진보 개혁 진영이 ‘민주연대’(가칭)를 만들고, 친노 인사들이 잇따라 소(小)진지를 구축하면서 정세균 체제가 다소 흔들리는 듯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천정배 의원, 이미경 사무총장 등이 주축이 된 민주연대는 지난 9월30일 50여 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발기인 대회를 가졌다. 민주당의 야당성 회복과 진보 개혁 진영의 사회적 발언권 확보를 목표로 내걸고 본격적인 정파(政派) 활동을 선언한 이들은 “정세균 체제의 조력자이자 비판자가 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은 영수회담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해 당내 주류·비주류 간 갈등의 소지가 적지 않은 마당이다.

친노 진영 신당 추진설도 끊이지 않아

친노 진영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해찬 전총리를 중심으로 한 노장 그룹이 ‘(재)광장’을 중심으로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병준·성경륭 전 정책 실장 등 학자 그룹은 ‘미래발전연구원’을 만들어 이론적 토대 구축에 나섰고, 안희정 최고위원과 백원우 의원 등 386 그룹은 제도권 진출 창구가 될 ‘더 좋은 민주주의연구소’ 출범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지향을 민주당의 세력 확장으로 명료하게 밝힌 민주연대와 달리 친노 진영의 좌표는 불투명하다. “조직적으로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다”(호남의 한 초선 의원)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신당(新黨) 추진설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영남 민주화 진영의 독자 세력화를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상황은 가변적일 수 있다. 18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후 이 전 총리가 신당 창당을 구체적으로 모색했지만, ‘좌(左)희정’이 최고위원이 되면서 보류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호남당화 발언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된 셈이다.

이같은 상황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노 전 대통령이 지향하는 가치가 과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것인지, 노 전 대통령이 혹시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것은 아닌지, 정말로 뭔가 사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이다.

대표적인 것이 ‘가치 정치’ 논란이다. 한때 친노 진영의 선봉에 섰던 한 386 정치인은 “노 전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한 것이 ‘가치의 정치’였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이를 내팽개쳤다. 노 전 대통령이 지금의 민주당에 대해 호남당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하려면 본인이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지고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연대 소속의 한 재선 의원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꽉 막혔다”라고 했다. 지지층의 외면을 자초한 계기가 된 대북 송금 특검, 국민적 반대 여론을 외면한 채 강행된 이라크 파병, 진보 개혁 진영과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졸속 추진 등을 예로 든 그는 “노 전 대통령은 말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보수의 논리를 좇아간 대표적인 정치인이다”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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