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식3찬’에서 왜 ‘냄새’가 났을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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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조합·축협 관계자 조직적으로 개입해 군 검수 체계 허점 이용…사병들만 ‘찜찜한 밥’

▲ 냉동 닭을 납품한 도계 공장에서 정육 작업을 하고 있다.

▲ 냉동 닭을 해동한 뒤 누런 부유물이 또오른 모습.

“아니, 군대가 무슨 쓰레기 처리장도 아니고, 군인들이 개·돼지도 아닌데 이런 것을 먹으라고 했단 말이야.” 지난 10월7일 저녁 8시쯤 서울 마포에 있는 한 음식점이 소란스러웠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그중 김 아무개씨가 제법 큰소리로 군대 내 먹을거리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날 언론에 보도된 ‘동물에게 먹여야 할 사료용 닭이 군 장병들의 식탁에 올라갔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김씨는 지난 4월에 외아들을 군대에 보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고, 동석했던 이들은 한참 동안 군대의 보급 체계를 비난했다. 개나 돼지가 먹는 닭을 군대 간 자식들이 먹었다고 생각하니 부모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시사저널>은 군납 비리가 발생한 강원도 춘천의 도계 공장에서 냉동 닭을 정육하는 미공개 사진을 다량 입수했다. 사진에 드러난 도계 후 작업 과정을 보면 충격적이다. 냉동 닭을 해동한 후 물에 담가놓은 상태를 보면 누런 부유물들이 기계 안에 꽉 들어차 있었다. 사진상으로 보아도 역겹고 금방 구역질이 나올 듯하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춘천지방검찰청 형사2부(부장검사 김성렬)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정육 작업 당시에도 냉동 닭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 그것을 물에 빨아 정육 작업을 했다”라고 한다. 이 닭들은 강원 고성과 홍천 지역 50여 개 군부대에 납품되었다. 군부대 취사병이 조리 과정에서 썩은 닭을 발견해 폐기 처분하기도 했다.


이때까지 납품받은 생닭 대부분은 이미 급식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냉동 닭 1천6백70상자가 군부대에 납품된 것을 감안하면 최소 수천 명의 장병들이 썩은 닭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군 검수 체계의 허점을 이용한 도계업체인 영농조합 관계자와 군부대와 직접 납품 계약을 체결한 축협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

▲  검수관 도장.             ▲ 위조된 도장. ⓒ춘천지방검찰청 제공

<시사저널>은 춘천지검의 협조를 받아 축산물 군납의 문제점과 농·수·축산물의 군납 유통 체계의 구조적인 허점을 추적했다. 취재 결과 현행 농수축산물 유통 과정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축산물의 경우 지금까지 군에 납품된 상당수가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변질된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축산물 군납 비리가 강원도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군납 축산업자들 사이에는 불법 유통 관행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군납 농가들, 선급금 받고 닭 키우다 값 오르면 ‘바꿔치기’


특히 충격적인 것은 ‘매취’라는 수법이다. 보통 군납 농가들은 군납 계약상의 계획 생산 약정에 따라 병아리 값, 사료 값 등을 선급금으로 받아 닭을 키운 후 이를 군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군납 농가들은 시중의 닭값이 비쌀 때는 군납용 닭을 시판으로 돌리고, 이후 군납시에는 도계장에 의뢰해 출처가 불분명한 닭을 군납용으로 둔갑시켰다.

도계업자들도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기는 마찬가지이다. 농가가 도계를 의뢰한 생닭을 빼돌려 시중에 유통하고, 냉동 창고에 보관하던 출처 분명의 오래된 냉동 닭을 가공해 납품하는 방법으로 닭을 바꿔치기했다. 이 과정에서 도계업자 등은 축협의 계량 증명서까지 위조했다.

양계 농가가 축협의 지시에 따라 생닭을 출하할 경우에는 도계장에 가기 전에 계량 증명 업소에서 출하량을 계량한 후 계량 증명서를 축협에 제출해야 한다. 축협은 이것을 통해 지정된 물량이 출하되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관행상 도계장에서 계량증명서를 축협에 발송하고, 축협도 계량 증명서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계량 증명서를 장기간 위조한다고 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방법으로 축산 농가나 도계업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매취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축협 군납 담당 직원들의 묵인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군납 농가-도계업자-축협 등이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군 검수관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개연성이 크다.


군 검수관, 냉동 닭과 생닭 구분 못해

군 검수 과정도 허점투성이이다. 닭의 군납 과정을 보면 농가가 도계·가공업체에 도계를 의뢰하면 해당 군부대에서는 이를 검수해야 한다. 하지만 검수 과정은 극히 형식적이었다.

양계 농가는 평균 저녁 10시 무렵부터 생닭의 출하 작업을 시작하고, 생닭이 도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3~4시 무렵이다. 도계장에서는 인부들이 출근한 후에 도계 작업을 실시하고 있어서 군 검수관은 도계 작업 중간부터 오후 3~4시까지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다.

즉, 군 검수관이 원거리 출장을 통해 검수하기 때문에 도계·가공의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도계장에서 1일 도계·가공할 수 있는 양은 정육 15kg 상자 기준으로 30~50상자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검수관은 도계하는 첫날 몇 시간만 지켜보고 있다가 육가공이 완료되는 3~4일 후 다시 방문해서 날인을 한다.
도계장에서는 이런 점을 악용하고 있다. 창고에 보관된 오래된 냉동육을 검수관이 첫날 검수한 생닭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 군 검수관의 자질과 검수 절차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현재 군 검수관은 현장 경험이 부족한 수의사들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 보니 검수관 대다수가 육안으로는 오래된 냉동 닭과 생닭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군 검수관이 검수만 제대로 해도 축산물 군납 비리는 사전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군 검수관은 생계 운송 차량의 소독 실시 기록부, 도계장 소속 수의사의 생계 검사 대장, 도축 신청서 등 관련 서류를 확인해 계량 증명서에 기재된 출하 농가의 양계 수(출하량)와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도계장에서 제출하는 계량 증명서만을 확인하기 때문에 부정 여부를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눈 뜬 장님’이나 다를 바 없다.

▲ 한 육군 부대 사병 식당에서 군인들이 배식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군부대와 직접 계약자인 축협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축협은 계획 생산품인 닭고기에 대해 군납 농가의 닭 생육 실태를 수시 점검해야 한다. 현행 군납 계약에 의하면 축협은 농가별 계획 생산 계획서에 의한 생산 준비, 사육 도계 및 가공, 포장, 재고 관리 등의 전과정에 대해 확인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다. 축협 내부 규정상 매월 군납 농가의 닭 생육 실태를 점검하도록 되어 있으나 농가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행 군납 계약 약관을 보면 계약 물량을 납품하지 못할 경우 미납량의 30%를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올해처럼 AI(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인해 닭이 집단 폐사할 경우 계획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는 수가 있어 매취 납품을 묵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행정관청의 감독도 엉터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영농조합은 허가받은 도계장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기존 도계장의 명의만 빌려 편법적으로 운영했다. 축협은 허가받은 도계장과 도계·가공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또 도계장에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수의사도 형식상 등재하였을 뿐이고 실제로는 근무하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영업개시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폐수정화시설을 가동하지 않고 폐수를 무단방류하기까지 했다.

국방부는 이번 군납 비리의 책임을 물어 기존 강원도 고성축협에서 하던 축산물 군납을 인제축협으로 변경했다. 고성축협의 한 간부는 “우리가 조직적으로 군납 비리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특별히 할 말이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이처럼 그동안 간간히 터진 군대 내의 식중독 사건은 이유가 있었다. 폐기 처분해야 할 식품이 브로커와 납품업자들 또는 군 관계자들의 유착 관계를 통해 장병들의 식탁에 올라갔다.

군 검수 체계는 극히 형식적이고 허술했다. 이번에 강원도 춘천에서 터진 ‘군 부식용 닭고기 납품 비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국 군부대에서는 지금도 이와 유사한 군납 비리가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춘천지검 형사2부 관계자는 “이번 냉동 닭 사건을 수사한 결과, 군 급식용 축산물 납품 체계와 관련된 각종 비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매취 관행은 특정 지역이나 축협에 국한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도 우리 군의 전투력과 직결되는 식품 군납 비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군납 식품은 크게 국방부 조달본부 및 육해공군 군수사령부의 중앙 조달과 부대 인근에서 공급받는 부대 조달로 구분된다. 중앙 조달품은 항목별로 공인된 시험 기관에서 위생검사를 한 뒤 납품되는 방식이다. 닭고기, 돼지고기, 배추, 마늘, 콩나물 등 신선도가 생명인 부식류는 해당 부대가 부대 인근의 단위 조합이나 농가와 계약을 맺고 조달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부터 현행 농·수·축산물의 계획 생산 체제를 폐지하려고 했으나 군납 농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백지화했다. 그동안 군에 공급되는 부식류는 1970년도부터 특정 지역 농어민과 계약을 맺고 생산해왔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 중간 수집상이 시중에서 값싼 저급품을 구매해 납품하는 등의 폐단이 많았다. 또, 군납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군납 농가, 유통업자, 군 관계자 등의 유착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의 계획 생산 제도를 폐지하고 농·수협 중앙회와 직거래 형태로 제도를 개선하려고 했던 것이다.

군납 농가들이 많은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 주민들은 “현재 군부대와 지역 농협 그리고 농가가 자율적인 계약으로 이행해온 농산물 군납 제도를 국방부 조달본부와 농·수협중앙회 유통센터로 일원화할 경우 대기업 농산물회사의 군납 시장 독점과 수입 농산물의 납품 등으로 영세 농가와 소상공인들의 몰락을 초래한다”라며 반대했다.

국방부 “수의 계약보다 공개 입찰 늘리겠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중앙 조달 품목의 60%가 수의 계약으로 이루어졌다. 국방부 공보과 관계자는 “국방부 차원에서도 투명한 군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식류 납품도 수의 계약보다는 공개 입찰을 늘려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수도권 군 부대 3곳에 김치를 납품하고 있는 선농식품 윤세용 사장은 “군대에 납품하는 제품은 공개 입찰해야 한다. 수의계약을 공개 입찰로 전환하고, 식품 안전이 검증된 업체를 통해서만 납품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각종 비리를 막을 수 있고, 군 장병들에게 좋은 식품이나 물건을 제공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군납 비리는 엄밀히 따져서 전방 철책이 뚫린 것보다 더 심각하다. 국가 안보의 최일선에 있는 군인들이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 처분해야 할 식품을 먹고, 저질의 군수품을 보급받는다면 군의 사기 저하는 물론 전투력에도 큰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다.

관행처럼 자리 잡은 군납 비리의 뒷면에는 허술한 관리 감독이 있다. 생산자-조합-유통업자-브로커-군 관계자 등이 비리의 사슬로 얽혀 있는 것도 문제이다. 국방부의 조달 부문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과 검수 체계의 개선 등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회 국방위원회 안규백 위원(민주당)은 “육군이 보유한 식품검사장비(세균검사장비) 보유율은 20% 미만이다.

올해 국방부가 5월까지 식검장비를 통합 조달 방식으로 보급을 완료하려고 했으나, 국방부 업무를 위임받은 육군과 군수사령부의 방만한 행정 때문에 보급이 지체되고 있다. 현재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군단급 조차도 겨우 3~4% 정도만 음식 재료를 검사하고 있다. 군단급 이하의 부대까지 폭넓게 검사할 수 있는 식검 장비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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