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도 부리고 경찰도 왔다갔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8.10.1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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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 첫 국감에 나타난 진풍경들

▲ 18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예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위는 10월6일 오전 감사원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 현장. ⓒ시사저널 이종현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10월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한국산업단지공단 국정감사에서 피감 기관 임원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난동을 부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최철국 의원이 “산단공 동남지역본부에서 거액을 횡령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책임자인 이 아무개 동남지역본부장을 서울지역본부장으로 영전했다”라고 지적한 후 화장실에 가자 당사자인 이본부장이 따라와 담뱃갑을 던지고 라이터를 깨뜨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국감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정장선 위원장은 “국감 도중 의원의 질의에 대해 따라 나가 행패를 부리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지적하면서 감사를 중단했다. 이본부장이 현행범으로 영등포경찰서에 체포되고, 공단이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이사장과 부이사장이 사표를 내고,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이 찾아와 사과를 했지만 국감은 재개되지 못한 채 추후로 연기되었다.

18대 국회 첫 국감이 예전에 볼 수 없던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출발은 산뜻했다. 국정감사 첫날 의원들의 국감장 출석률은 100%였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감 중인 김일윤·이한정 의원 등을 제외한 모든 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상임위에 참석했다.

시위 막겠다며 국감장에 경찰 배치한 것은 이례적

특히 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비롯한 중진 의원들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17대 국회에서는 중진 의원들의 모습을 국감장에서 보는 일이 드물었다. 참석하더라도 잠시 자리를 지켰다가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8대 첫 국감은 달랐다. 평소 공식 회의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박근혜 의원도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장에 참석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을 상대로 멜라민 분유 파동과 관련한 질의에 나섰다. 하지만 국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초반의 기대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여기저기서 ‘황당 사고’가 터져나왔다. 벌써부터 파행을 거듭하는 상임위도 적지 않다. ‘산단공 임원 난동’이 있었던 10월9일 오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감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경찰 배치가 화근이었다. 이날 국감이 열린 회의장 앞에는 YTN 노조원 등의 시위에 대비해 4명의 전·의경이 배치되었고 건물 주변도 경찰이 지켜 서 있었다.

최시중 위원장의 업무보고 도중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국감은 중단되었다. 가뜩이나 ‘공안 정국’에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라 반발은 더욱 거셌다. 서갑원 의원은 “군사 정권을 방불케 하는 편파 국감으로서 신성한 국감장에 경찰이 동원되어 국감을 해야 할지 자괴감이 들고 분노를 느낀다”라고 비판했고, 천정배 의원은 “대한민국이 유신 국회도 아니고 말이지…”라며 불쾌해했다.

국감장 앞에서 펼쳐지는 시위 풍경은 낯설지 않다. YTN 노조와 같은 집단 시위도 있지만,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손팻말을 든 1인 시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피감 기관에 대한 불만을 전달하기에 국감만큼 효과적인 시기와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시위를 막겠다며 국감장에 경찰 병력이 배치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 8명은 이날 오후 한승수 국무총리를 방문해 항의의 뜻을 전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여·야가 뒤바뀌면서 공수 교대가 이루어진 만큼 국감에 임하는 각 당의 자세도 달라졌다. 지난 10년간 정부 정책에 날을 세웠던 한나라당은 정부를 보호해야 할 상황에 놓였고, 반대로 민주당은 제1 야당으로서 정부의 국정 운영 구석구석을 파헤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소속 의원들은 이같은 상황 변화에 따른 역할을 대체적으로 잘 소화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일부 경제 정책과 보건 정책에 대해서는,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정부 출범 후 첫 국감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여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폭로 국감’이 아닌 ‘정책 국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좋은 평가도

김성식 의원은 10월7일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경제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는 재정 여력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감세는 하되 그 폭과 시기는 조정해야 한다”라며 정부의 감세안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김의원은 전날 국감에서도 “현 경제팀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정책 혼선과 신뢰 위기를 초래했다”라고 비판해 강만수 장관과 설전을 펼쳤다.

멜라민 파동으로 불거진 식품 안전 문제에서도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신상진 의원은 “식품 정책 일원화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지 않은 것 같다. 식약청으로 일원화하겠다는 의지 표명을 당정에서 했는데, 장관은 각 부처가 협의해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라며 동료 의원이기도 한 전재희 장관을 질타했다.

문광위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정현 의원은 10월6일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서 위원장 옆 단상에 서서 유인촌 장관에게 질의했다. 피감 기관장이 가운데 앉고 여·야가 마주앉는 자리 배치가 말싸움을 잦게 하는 한편, 국회를 경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비판에 따른 행동으로 보인다. 이에 유장관도 발언대에 서서 답변을 했다.

▲ 10월9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들이 방송통신위원회 정문을 지키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예전과 달리 ‘폭로 국감’이 아닌 ‘정책 국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좋은 평가도 있다. 국감장에서 걸핏하면 터져나오는 폭로성 질의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관료 및 전문가 출신 의원들이 정책 대결을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정책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쟁의 소지가 있는 정치 현안은 가급적 삼가는 모습이다. 이는 피감 기관이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의원들의 질타에 묵묵부답 고개만 숙이던 피감 기관장의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쉽지 않아졌다. 전반적으로 ‘할 말은 한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과거 행태를 반복하는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다. 10월8일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서울대 국감은 전날 열렸던 서울시교육청 국감에서 논란이 된 공정택 교육감의 선거자금 문제를 놓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면서 정작 서울대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공교육감에 대한 추가 국감 실시 여부에 대해 여전히 입장 차이가 커 향후 예정된 교과위 국감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이날 국감을 준비한 서울대의 ‘의원님 모시기’ 행태도 구설에 올랐다. 교과위 소속 의원 명단과 함께 해당 의원이 즐겨 마시는 차 종류와 제공 시기 등이 자세히 적혀 있는 문서가 국감장에서 발견되자 “그렇게까지 해서 의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느냐”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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