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른 부시 반기는 오바마 화난 매케인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10.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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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반응, 기대 반 의심 반

▲ 션 매코맥 미국 국무부 대변인(오른쪽)이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왼쪽은 대북 특사인 성 김 국장. ⓒAP연합

미국 국무부가 지난 10월1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방’시켜주던 순간 워싱턴 DC의 국무부 내 기자회견장에서는 잇달아 폭소가 터졌다. 곤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에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한 직후, 공식 발표를 바로 앞두고 열린 대변인 정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어떤 색깔로 서명했습니까?” 느닷없는 색깔론은 회견장을 일순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시침을 뚝 떼고 노련하게 대답했다. “보통 검정색 잉크로 서명하는 것으로 압니다.” 기자가 되물었다. “연필이 아니고요?” 회견장에는 다시 폭소가 터졌다.

이번 북한과 미국의 합의는 앞길만 험한 것이 아니고 지난 몇 주간도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미국의 대북 핵협상 책임자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성 김 국장은 평양을 방문해 북한측으로부터 핵불능화 지속과 이행을 약속받고 테러지원국 불명예를 벗겨주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 도출에도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 6월 영변 원자로를 폭파하면서 핵불능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북한은 미국 정부가 테러지원국 삭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핵사찰단을 추방하고 핵개발 재개를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서해에서 공대지 미사일 실험까지 하는 등 미국에 대한 압박을 계속했다. 부시의 공화당 정부는 오는 11월4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게 북한이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일단 북한측의 요구를 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북한이 계속 소란을 피울 경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앞세워 부시 행정부를 몰아세우고 있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공격이 북핵 문제까지 더해져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부시는 물론 매케인에게도 이롭지 못하다.

“공화당 정권 재창출 위해 서둘러 둔 무리수 평가도”

미국은 그보다 힐 차관보의 평양 협상 직후 이어진 한국과 일본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대북한 강경 자세를 풀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미국이 가는 길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낮은 국민 지지도가 살아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 마당에 북한 문제에서마저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상황은 이명박 정부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유명환 외교부장관과 ‘고통스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그만큼 한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본을 설득하는 데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라이스 장관이 일본 외상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무려 40분 이상이 걸렸다.

미국 정부가 북한을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에서 제외해준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받은 것은 북·미 핵검증 양해각서이다. 이 외교 문서는 북한이 지금까지 거부하던 한국과 일본의 핵사찰단 참가 수용 추가 등 검증 절차를 위한 다섯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북한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고 핵검증을 성실히 받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 약속은 검증 이행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남겨두고 있어 부시 행정부가 너무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매케인 대통령 후보마저 비판적이다. 그는 “잘한 협상인지 좀더 두고 보아야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 북한 핵검증 협상과 북한의 테러리스트 국가 명단 삭제에 대해 지지와 환영을 표시한 것은 오바마 후보가 유일하다시피 하다. 오바마는 공식 논평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조치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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