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을 대로 곪은 직불금 이미 다 알고 있었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8.10.28 14: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년부터 국회 등에서 공론화…정부·정치권·언론 ‘부적절한 공생’


ⓒ시사저널 이종현

이제 시간 문제이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직불금을 타간 사람들의 이름이 파일 속에서 튀어나와 화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감사원 관계자들은 이미 명단을 분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다수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명단은 ‘판도라의 상자’라고 불릴 정도로 폭발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농민을 비롯한 국민의 분노가 이들에게 쏟아질 것이고 직불금의 환수는 물론,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 후속 조치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누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정치적인 파괴력도 상당할 수 있다.

지난 10월20일 여야가 ‘쌀 소득 보전 직불금 불법 수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하는 등 ‘직불금 사태’가 정국의 핫이슈로 떠올랐지만 사실 이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뿌리가 깊다. 제도를 손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모두들 손을 놓고 있다가 느닷없이 부산해졌다. 공무원·정치권·언론·전문직 인사 등은 이 문제에 관한 한 거대한 공생 관계를 이루며 경작자에게 가야 할 국민 혈세를 가로챘다. 또한 농지를 ‘농사짓는 땅’이 아니라 ‘돈 버는 땅’으로 보는 투기 심리가 오늘의 직불금 사태를 불러온 심리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직불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배금(拜金)주의’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직불금의 뿌리는 논농업직불제(2001~04년)와 쌀소득보전제(2003~05년)이다. 정부는 쌀시장을 개방하면서 줄어드는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이 두 제도를 개편해 2005년 ‘쌀소득보전직불제’를 만들었다. 3년마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 바꾸는 목표 가격과 산지 쌀값의 차액 가운데 85%를 논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 법인에게 정부가 직접 돈을 주는 제도이다.

DJ 정권 때 여론조사까지 실시

‘직불제’ 자체는 1997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처음 도입되었다. 경영 이양 직불제였다. 김대중 정부는 전임 김영삼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철폐하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참여하면서 농심이 들끓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농심을 달랬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농촌에 87조원을 들여 농업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실제 농가 소득은 늘지 않고 오히려 농민들의 빚이 늘어나는 역효과를 낳았다.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불필요한 농기계를 구입하는 등 도덕적인 해이가 만연되면서 농촌 경제는 피폐해졌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이 ‘농어촌구조개선 사업’에 실제 투·융자된 돈이 65조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가에 직접 돈을 주는 직불제로 정책을 바꿔 2013년에는 농업 예산의 22.9%인 3조4천100억원까지 직불 예산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친환경·고품질 농산물에 대한 선별 투자와 친환경농업직불제, 지역 개발 사업 등을 확대하는 데 1백19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이명박 정부의 농정 정책도 크게 보아 노무현 정부가 짜놓은 이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쌀 소득 직불제, 경관 보전 직불제 등 다섯 가지 직불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최근 논란의 핵이 된 쌀 소득 직불제가 전체 직불 예산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바와 같이 직불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지금 갑론을박 중인 직불금 문제의 뿌리는 8년 전 논농업직불제가 시행되면서 이미 잉태되었다. 당시에도 드러났던 문제에 대해 제도를 보완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것이다.

김대중 정권 당시인 2001년, 민주당의 정장선 의원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전국의 농민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설문 내용을 입수해 살펴보니 ‘임차 논에 대한 직접 지불금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항목이 있었다. 농민들의 대답이 의미심장했다.

“전액을 본인이 갖는다”라고 답한 사람은 31.5%에 불과했다. “땅 주인과 나눠 갖거나 전액을 땅 주인이 갖는다”라고 답한 사람이 26.6%에 달했다.

농민들은 “논농업직불제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금액이 적어서 실효가 없을 것이다”라고 답한 사람이 43.4%로 가장 많았다. 당시는 1ha당 25만원 남짓 지불될 때였다. 하지만 “직불금을 주인이 가져갈 것이다”라고 답한 농민도 2.9%가 나왔다. 이때부터 이미 눈 밝은 농민들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비경작자의 직불금 수령’이 문제가 될 것임을 눈치 챘던 셈이다. 당시 정의원은 이 조사 결과에 바탕해 “직불금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만큼 엄정한 집행이 요구된다”라고 주장했다. 정의원의 한 측근은 “지금 나오는 직불금의 문제점이 그때부터 제기되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권오을 의원이 ‘중복 수령 가능성’을 거론하며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1년 9월10일 농림부 국정감사에서 “농림부 자료를 바탕으로 직불금을 신청한 전국의 농민들을 무작위로 추출해 조사한 결과 10%가 중복으로 신청했다. 기본적으로 농민들이 양심적으로 해주어야 하지만 시행하는 부처에서 사전에 분명하게 체크해 (잘못된 것을) 다 잡아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권 전 의원의 지적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최근까지도 마을 이장이 허위로 서류를 꾸며 직불금을 탔다가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남 창녕군의 한 이장이 본인과 부인, 가까운 이웃 명의로 마을 내 휴경지와 다른 사람의 경작지를 마치 자신이 농사를 지은 것처럼 가짜로 임차계약서를 꾸며 1백80만원의 직불금을 타냈다. 일부 지주들이 직불금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그러나 정의원이나 권 전 의원처럼 일찍부터 직불제와 관련해 국고가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갈 가능성을 염려한 국회의원은 많지 않았다. 대다수 의원들은 제도적인 보완보다는 “농민에게 돈을 더 줘라”라고 주장했다.

2001년 국감에서도 지적받아

2001년 9월27일 국정감사 때의 풍경이다.

▲ 농림수산식품부의 쌀 직불 상황실이 부당 신청 사례 신고 전화 등으로 분주하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해 농림부 예산 심의 때 무조건 금년 예산에는 직불제를 두 배 이상 올리겠다, ha당 50만원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농민들은 지금 50만원은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한나라당 박희태 의원) “예결위원회에서 어떻게든 50만원을 채우겠다고 해야지 왜 이렇게 나약한가.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것 아닌가.”(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지금 ha당 20만원, 25만원 주고 있는데 생색내기용 정책 아니냐는 농민들이 많다. 50만원 이상을 꼭 해낼 만한 정책적인 의지가 있는 것인지 답변해 달라.”(민주당 문석호 의원)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여당인 한나라당이 “직불금 문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책임이다”라며 마치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이 공격하는 모양을 취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인수위에도 보고되었다”라며 ‘이명박 정권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은 더욱 볼썽사납다. 기본적으로 직불금제의 골격을 만들고 시행해온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1년 9월27일 농림부 국정감사 당시 김동태 농림부장관의 답변은 지금 상황에 대입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직불금은 실제 농사짓는 농업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치하겠다. 농지원부 등 공적 장부가 없는 임차농의 경우도 마을 대표 확인 등의 간편한 방식을 통해서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직불금을 줄 때까지 실제 경작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서 부적격자가 지원받는 일이 없도록 계속 확인해나가겠다.” 2001년 답변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정부는 사안을 정확히 알면서도 지금껏 문제가 커져가는 것을 팔짱끼고 바라보고 있었다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논농업직불제’의 문제는 고스란히 ‘쌀농업보전직불금제’로 옮겨갔다. 문제 인식은 같았지만 해결책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9월10일 한국마사회 강당에서 있은 ‘쌀소득보전직불제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에서 당시 권은오 농림부 농가소득안정추진단장은 이렇게 발표했다.

‘직불금 수령자 중 상당수가 비농업인으로 추정되고 실제 농업인 중 일부는 직불금을 수령하지 못하고 있다’ ‘지급 상한을 설정하지 않아 소득이 많은 기업농에 대한 직불금이 지나치게 많아져 형평성 문제가 발생했다’ ‘마을 대표가 확인해주는 농지 이용 및 경작 확인서가 허위 또는 상호 밀약하여 발급되는 사례도 일어났다’ ‘농지법상의 규제 회피 및 양도세 감면 혜택을 목적으로 비농업인이 실경작자로 신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 당시의 문제 의식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최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도입된 지 3년이 된 쌀소득보전직불제는 실제 경작자가 직불금을 받도록 설계되었으나 지주가 직불금을 받는 사례가 있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를 질타했다.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직불제 시행 초기부터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은 정부의 지도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페털티를 주게 되면 부당 지급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탁명구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사무총장) “쌀소득보전직불제가 2년 정도 시행되면서 개선안이 제시된 것은 결국, 정부의 행정력 미흡에서 야기된 문제이다.”(홍준근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
그렇다면 사태가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 정부와 정치권만의 탓일까.

정치 공방 벗어나 실질적 보완책 마련해야

농림부는 2005년 직불제를 도입하면서 쌀소득보전직불제 부당신청신고센터를 설치·운영했다. 그런데 신고된 건수가 2005년도에 15건, 2006년 10월까지 6건에 불과했다. 농민들이 잘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고를 할 경우 계약을 해지당할 것을 염려한 임차농들이 신고를 꺼렸기 때문이다. 일부 임차농과 임대농들은 직불금을 논 임대료와 바꿨다. 직불금을 농사를 안 짓는 지주가 가져가는 대신 임차농의 임대료를 그만큼 삭감해주는 식이었다. 임차농과 임대농이 서로 눈 감는 관계였지만 국민 세금이 엉뚱하게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언론계에서는 직불금을 타간 비경작자 가운데 언론인이 94명에 달한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비경작자의 직업을 분류했을 때 여섯 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4백63명이다. 앞으로 옥석이 가려지겠지만 언론계에서는 잘못된 제도를 비판하고 바로잡아야 할 언론이 오히려 공생 관계에 가담했다며 철저한 후속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떡고물을 나눠 먹는 데 같이 가담했으니 비판적인 기사가 보도될 리 없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언론인 명단을 공개하는 데 합의해 앞으로 언론계에도 태풍이 불게 생겼다.

이처럼 직불금 문제는 우리 사회의 허술한 사전 예방·검증 체계와 ‘공짜 돈’을 먹는다는 공짜·투기 심리 그리고 정치권의 대중 영합주의가 버무려져 곪아 터진 사건이다. 여야는 국정조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개선책을 모색한다는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전·현 정권 간 정치 공방으로 흐를 조짐이 보인다. 실제 경작자에게 혜택이 가도록 시급히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연합뉴스
지난해 감사원이 직불금과 관련해 감사를 하고서도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감사원이 농림부에 “감사 결과 자료를 국회에 주지 마라”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감사원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정부 기관이 자료를 공개하는 것까지 적극적으로 막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감사원이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까지 거부하면서 감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직불금 감사와 관련해 감사원에 대한 의혹이 더 커질 전망이다.

다음은 국회 속기록에 나와 있는 지난해 11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 때 민주당 한광원 의원과 농림부 최도일 식량정책국장의 문답 내용이다.

한광원 의원 : 직불금을 부당으로 신청한 사례가 많다. 지난 4월 감사원에서 직불금에 대한 특별 감사를 벌였는데 농림부가 왜 자료를 안 내고 있는가?

최도일 국장 : 감사원에 문의를 했다. ‘위원들께서 이렇게 요청이 있는데 제출을 해야 되겠다’ 하니까 감사원 얘기가 ‘대외비이기 때문에 감사원 허락을 받지 않으면 주지 말아라’ 그래서 사실은 못 드리고 있다.
권오을 위원장 : 빨리 제출하세요.

최도일 국장 : 저희는 또 감사원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어 가지고···.

권오을 위원장 : 아니, 농림부가 감사원 하위 단체예요? 감사원 지시를 받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을 가지고 얘기를 해야지.

한광원 의원 : 감사원이 무슨 국회보다도 상급 기관인지 이해가 안 된다. 큰 감사까지 해놓고서 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것인가?

한광원 전 의원은 현재 해외에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전 의원의 측근은 “농림부는 마지막까지 감사 자료를 주지 않았다. 막판에 요약본 형태의 자료를 받았는데 거대 영농법인에 직불금이 지불된 실태가 들어 있었다. 농림부가 자체적으로 만든 자료로 특별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근 나온 비경작자 현황 등에 대해서는 당시 자료에 들어 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