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은 버려도 ‘보험’은 포기 못해
  • 정혜원 (메디컬투데이 기자) ()
  • 승인 2008.11.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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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상실 해외 교포들의 건강보험 이용 백태

3개월치 건강보험료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에 살면서도 3개월치 보험료만 선납하면 한국의 싸고 질 좋은 건강보험 혜택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반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도 3개월치 건강보험료를 못내면 그 혜택이 곧 중단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평생 보험료를 잘 내다가도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져서 3개월만 못 내면 보험 혜택을 끊는 한없이 매정한 정부가, 정작 해외 교포들에게는 3개월치만 내면 덥석 혜택을 주고 있다. 최근 정부는 비난 여론에 몰려 건강보험 혜택을 끊는 기준을 3개월 체납에서 ‘6개월 체납’으로 늘렸다. 그러나 여전히 자국민에게 엄격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은 국적 상실자와 해외 교포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기만 하다.

3개월치만 내면 한국 들어와 싸게 치료받아

 제도로 인한 특혜 시비는 이뿐만이 아니다. 피부양자 자격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의 경우 국적 상실에 따른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국적을 상실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건강보험 제도권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현 정부 초기 보건복지가족부 김성이 전 장관의 경우 미국 국적을 취득한 딸이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재되어 국내 건강보험 혜택을 누려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성 논란이 일었다.

이는 김 전 장관의 사과로 마무리되었지만 국적 상실자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 유지에 대한 절차상의 문제가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한나라당 유일호 의원이 국정감사를 통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 8월까지 국적 상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보험 급여를 수급한 사람은 1천5백91명에 이른다.

국적 상실 이후에도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해 보험 급여를 수급한 1천5백91명은 총 2억4천3백61만원의 보험 급여액을 사용했으며, 이들은 1만1천6백54건의 진료를 받아왔다. 또한, 국적 상실 후 1년 이상 보험급여 혜택을 적용받은 수혜자도 2백94명에 이르고, 10년 이상 보험 급여 혜택을 적용받은 경우도 11명이나 된다.

이는 국적 상실에 따른 건강보험 자격 상실을 관리하는 총체적 제도의 부실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부정 수급의 문제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현행 국적법에 따르면 국적 상실은 외국 국적을 취득함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이를 법무부에 신고함으로써 국적 상실의 절차가 시작된다. 문제는 국적 상실에 따른 절차가 100% ‘신고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건강보험 자격 상실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분명 국적 상실에 관한 제도적 허점이 있다. 건강보험 자격의 경우 스스로 신고하고 주민등록상 거주지에 가서 주민등록 말소를 한 후 건강보험공단에 자격 상실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은 몇 년에 걸쳐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즉 국적 상실을 신고하더라도 행정 기관 간의 정보 연계가 없어, 법무부에 신고해도 행정안전부나 건강보험공단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 기관의 경우 보험 자격 확인 의무가 없기 때문에 국적 상실자의 급여를 청구하더라도 건강보험공단이 이를 적발할 수 없다는 점은 부당 이득에 대한 환수조차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의원은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여타 보육 서비스 등과 같은 제도는 본인의 필요에 따라 신고제로 운영해도 되지만 부정 수급의 우려가 있는 건강보험 자격 유지와 같은 국적 상실에 따른 절차는 신고제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내국인에게만 엄격한 잣대 “형평성 어긋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재외 국민의 건강보험 적용과 국적 상실자의 건강보험 자격 유지는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재외 국민이라 해도 3개월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일한 제도 이용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2005년 재외 국민 중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받은 사람은 1만4천5백49명으로 74억7천8백99만원의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으로 진료를 받았으며, 2006년에는 2만72명에게 1백5억7천9백43만원의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이 사용되었다. 2007년에는 1만9천6백66명의 재외 국민이 1백40억6천4백83만원의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을 사용했고, 2003년 이후 총 7만5천4백82명이 4백12억1천6백42만원의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으로 진료를 받았다.

문제는 이들이 사용하는 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이 과연 적절하느냐 하는 점이다.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2007년 국내 지역 가입자 중 25%에 이르는 2백6만 세대가 보험료 체납으로 인해 건강보험 자격이 중지되는 현실에서 3개월치 보험료만 납부한 재외 국민에게 국내 가입자와 동일한 혜택을 주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잣대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해도 3개월치 보험료를 체납하면 자격을 상실하는 국내 가입자와 장기간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다가 3개월치 보험료만 납부하면 국내 가입자와 동일한 자격을 갖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미국 영주권자 A씨의 경우 2007년 뇌출혈로 국내에 입국해 12개월 동안 국내 의료 기관에서 치료받으며 납부한 건강보험료는 총 58만1천9백원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금액은 6천3백25만원. 2007년 공단 부담금 상위 100명이 사용한 건강보험 재정만도 21억2천만원에 이른다. 이는 1인당 평균 2천1백20만원으로 고액 중증 질환을 치료할 때 상대적으로 병원비 부담이 적은 국내를 찾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재외 국민의 현 거주지를 살펴보면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 영주권을 둔 재외 국민이 전체 수의 82%에 달한다. 이 중 ‘식코’로 대변되는 미국식 의료보험을 이용해야 하는 미국 영주권자는 약 50%를 차지하며, 이들이 혜택받은 건강보험공단 부담금도 60%에 이르는 83억7천6백만원이다. 손의원은 “미국이나 캐나다의 의료비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국가의 영주권을 취득한 재외 국민이 국내에서 과다한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보험소비자협회 김미숙 회장은 “우리 국민이 정부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이 기본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외 국민의 경우 국적을 포기하고 국민의 기본 의무인 납세·병역·교육·근로의 의무도 저버렸는데 그들은 3개월치 보험료 납부로 건강보험 자격 유지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김미숙 회장은 특히 “정부가 3개월치 보험료 납부를 기준으로 하던 것을 2007년 말 이후 1개월치 보험료 납부로 변경했다가 특혜 시비가 일자 3개월치로 다시 조정한 것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라며 현 제도의 맹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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