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곪은 땅 태안은 아직 울고 있다
  • 태안·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1.25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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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유출 사고 1년 현지 르포 “기름때 놔두고 청정 해역 축제라니…”

▲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태배 지역 혼합 개펄에서 11월18일 주민들이 방제 작업을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왼쪽 웅덩이에 기름이 고여 있다.

옛모습 찾은 태안으로 오세요.’ 충남 태안군은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지난해 12월7일 대한민국을 검게 뒤덮었던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만이었다. ‘유류 유출 사고 한 돌, 다시 태어난 서해안’이라는 주제로 충남도는 12월5일부터 이틀간 ‘자원봉사자 한마당 보은 행사’를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과 보령시 대천 해수욕장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시커먼 기름때가 밀려왔던 서해안을 1년 만에 ‘청정 해역’으로 바꾼 1백30만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자리라고는 하나 ‘축제’ ‘축하공연’ ‘페스티벌’ 등의 문구가 난무하는 태안에는 아직도 주민들의 자조와 울분이 여전하다. 더군다나 얼마 전 충남도가 약 8백억원을 들여 태안에 ‘기름 유출 극복 전시관’을 만들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11월18일 기자는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때마침 회관 안은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지급되지 않은 지난 3~6월 방제작업 인건비 청구에 대한 확인 작업이 한창이었다. 명단이 일부 삭제되었다느니, 자신의 이름이 빠져 있다느니 하는 일부 주민들의 고성이 들리기도 했다. 의항2리의 한 60대 주민은 “지난봄에 한 방제작업비를 이제야 청구하는 것이다. 이조차도 빨라야 내년 2~3월께에나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정부의 늑장 대응은 늘 이런 식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의항2리와 3리 그리고 인근의 소근리와 신두리 등은 기름 유출 사고 때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거의 대부분이 굴양식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들은 1년째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 심각한 것은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다. 의항2구 어촌계장 이충경씨는 “혹시 오면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이곳 어촌에서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데, 도청과 군청에서는 청정 해역 운운하며 축제를 한다고 난리이다. 정부에서도 방제작업을 모두 끝내버렸다. 물론 서해안과 태안의 기름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는 차원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부의 곪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이제 포기하고 감추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주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개펄에 굴과 총알고동이 일부 서식하고 있으나 주변에 기름이 잔뜩 묻어 있어 사실상 폐사 상태에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완전 방제, 완전 보상이다”

이계장의 안내를 받아서 가본 태배 지역에서는 아직도 일부 주민들에 의해 기름때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거기에는 여전히 시커먼 기름이 흘러나왔다. 개펄 주변의 방제작업은 아예 손도 못 대는 형편이라고 했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 밟으면 발자국이 패인 개펄에서 기름이 올라와 고였다. 그는 “정부의 방제작업은 끝났기 때문에 이 작업은 환경보건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작은 규모로 하고 있다. 그나마도 7~8일 정도면 끝난다”라고 말했다. 사고 1주년 행사 전에 모두 끝낸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한 주민은 “정부가 외지 사람들을 향한 홍보 차원에서 모든 것을 감추려고만 드니 큰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완전 방제, 완전 보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어촌 구석은 외면하고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해수욕장 부근 바위만 그동안 열심히 닦아왔다”라고 불평했다.

▲ 충남 태안군 의항3구 어촌계장 이완섭씨(왼쪽)와 의항2구 어촌계장 이충경씨가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의항3리 주민 이완섭씨는 태안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굴 양식으로 생활했다. 그런 이씨에게 기름 유출 사고는 한마디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시커먼 굴 양식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다른 곳에서 굴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굴을 놓을 바다가 없다. 여기 앞바다에 나가보라.

아직 기름이 떠다니는데 어디에다 굴을 놓나.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방제작업만 열심히 쫓아다니는 것이다. 일당 6만~7만원은 받으니까 당장 생활은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삶의 대책이다. 굴 양식장을 되살려야 한다고 요구하면 일단 방제작업에 먼저 나오라고 한다. 그나마 방제작업도 이제 끝났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한숨을 지었다.

서산·태안 환경연합의 이평주 사무국장은 “개펄은 파면 팔수록 밑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작업을 해도 기름이 더 밑으로 내려간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히 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시간이 유일한 방법인가. 그러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예전으로 복구될까’라고 물어오는데, 그 역시도 전문가들이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라고 전했다.

만리포 등 관광지는 어촌과는 또 조금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태안의 기름때 이미지를 벗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만리포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희열씨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그래도 이제 좀 낫다. 방제작업도 만리포를 비롯해서 이런 관광지 주변에 집중적으로 했기 때문에 바닷가도 꽤 깨끗해진 편이다. 지난여름에도 서울 등 기업과 단체에서 일부러 찾아주신 분들이 많아 그럭저럭 유지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년에 비해 30~40% 정도 매출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진짜 막막한 이들은 의항리 등에서 맨손 어업에 종사하던 어민들이다. 그래도 우리같이 장사를 하거나 배를 갖고 인근 해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이들은 나은 편이다. 정부의 지원도 그런 면에서 차등을 두어야 한다”라고 걱정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부 지급된 생계지원비나 방제비 등은 그런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지급되었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오히려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었다. 이씨는 “정부에서 주는 생계지원비나 방제비라고 해봐야 수십, 수백만 원 정도여서 큰 실익이 안 된다. 문제는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측으로부터 받아야 할 피해 보상금인데, 지금 그들이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도 크게 기대할 바가 못 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현재 마을 이장을 겸하고 있는 이씨는 주민들의 ‘반(反) 삼성’ 정서가 상당하다고 전한다. “삼성 기업측에서 와서 일사일촌을 맺자고도 하고, 자매결연을 맺자고도 한다.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다. 다 거절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도움을 받아낼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받아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 전체의 정서가 그렇지 않다. ‘치사하게 그깟 쌀 한 가마니, 선물 한 보따리 안 받고 말겠다’는 것이다. 피해민대책연합회 말에 따르면 앞으로 지리한 법정 싸움이 될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태안군 유류피해민대책연합회 전상덕 사무차장은 “현재 주민들이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창구는 크게 세 가지이다. 정부가 지급하는 생계지원비가 있고, IOPC(국제유류오염비상기금)를 대신해서 정부가 선지급하는 방제비가 있다. 그리고 각 지자체별로 거두어들인 성금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실질적으로 주민에게 별 도움이 못 된다”라고 지적했다. 생계지원비는 이미 지급되었다고 한다. 가구당 많게는 3백만원에서 적게는 60만원 정도의 수준이다. 방제비는 내년 3월께까지 모두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IOPC가 책정한 피해 보상 예산은 약 6천2백여 억원이다. 피해민대책연합회측은 터무니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충 잡아도 2조원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책정된 대로 진행될 경우 가구당 많이 돌아가봐야 100만원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가구도 많은데 몇백만 원 수준의 피해보상금은 해도 너무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국민 성금으로 현재 지자체에서 보관하고 있는 금액도 3백40여 억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거리가 끊긴 주민들 위해 정부가 방제작업 나서야 한다”

▲ 충남 태안군 의항2리 주민들이 방제 인건비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결국 남는 것은 삼성측이 내놓을 피해보상금뿐이다. 주민들은 “법정에서도 밝혀졌듯이 삼성중공업이 가해자로 판명났다. 그런 만큼 삼성중공업에서 납득할 만한 조치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측은 묵묵부답이다. 전사무차장은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IOPC에 모든 것을 일임한 채 정부는 완전히 뒤로 빠진 채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각 지역별로 운영하고 있는 피해민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모두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에 맞서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경비도 모두 주민들의 갹출에 의해 충당하고 있었다. 

서산·태안 환경연합의 이평주 사무국장은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방제작업을 더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당장 일거리가 끊긴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국가 재산을 회복시키는 것 아닌가. 당장 관광지만 집중적으로 하고 개펄 같은 그늘진 곳과 도서 지역은 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관광지도 지난여름 휴가철이 되자 일단 대충 눈가림으로 덮어놓았는데, 그 뒤에 제대로 후속 처리를 하지도 않고 있다. 개펄 역시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연구·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방안을 내놓고 주민들에게 정확한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도 그에 맞춰 삶의 계획을 짤 것이 아닌가”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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